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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 ADHD 꼬리표 붙이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지음, 조응주 옮김 / 민들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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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라던가, '우리 아이는 너무 산만하고 정신이 없어서 걱정이예요' 하는말들을 하는 엄마들이 많이 있다. 이런 말에는 부모말 잘 듣고, 얌전하게 자기 일 하고, 진득하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그런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묻어 있다. 물론 가만히 있지 않고 산만한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더 많이 혼나고, 학습 성취도 떨어지고, 이런 저런 문제를 많이 일으킬거라는 걱정도 담겨 있다.
그러면서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학습지 풀고 책 읽는 다른 집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걱정이 앞서는 부모들은 혹시 우리 아이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가 있는게 아닐까 염려하기도 한다. 이제 이 낮설고 어려운 병명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듣는 말이 되어 버렸다.

아이를 이해하기 힘들고,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때 그 원인을 신경화학적인 것에서 찾는 것은 사실 제일 간단한 해결법이다.
내 아이가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고 가만 있지 못하는 것이 뇌에 있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부족한 탓이라서 '라탈린'이라는 약을 복용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가. 실제로 이 약을 투여하면 날뛰던 아이들도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게 되고, 진정 상태가 된다. 정신없이 산만한 아이때문에 고민하던 부모라면 대번에 환영할만한 일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교육및 의료 당국에서 책상에 앉아 진득하게 배우는 것을 힘들어 하거나 자신의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아이들에게 ADHD 진단을 내리고 의무적으로 '라탈린'을 복용하게 하고 있다. 부모가 라탈린 투약을 거부하면 아동보호국에 아동학대로 신고가 된다고 한다.  라탈린으로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라탈린의 효과를 보충할 혈압약 '클로니딘'을 추가로 복용하게 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심지어 라탈린이라는 약은 강남같은 곳에서 '공부 잘 하게 하는 약'으로 일부 학무모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일들은 과연 무엇일까.

근 며칠동안 '민들레 출판사'에서 나온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붙들고 살았다.
책 장마다 수없이 밑줄을 그어가며 책에 빠져 공감하고 읽어 내렸던, 오랜만에 만난 너무 소중한 책이었다.
이 책은 미국에서 '프리 스쿨'이라는 독특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당국에서 ADHD 판정을 내린 아이들을 약물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교육하고 키워 온 경험들을 담고 있다. 그녀가 프리스쿨에서 만난 아이들은 미국 사회가 약물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낙인 찍은 아이들이다.
산만하고, 충동적이고,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고, 방해하고, 공격하고, 파괴하는 이런 아이들은  교사 하나가 20여명 이상의 아이들을 통제해야 하는 제도권 교육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골치거리가 된다.
이런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교사는 교육 당국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교육 당국은 아이에게 ADHD 판정을 내려 약물을 복용할것을 강제한다. 날뛰던 아이가 약을 먹으면서 조용해지면 교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럭저럭 교사의 지시를 따라오고 통제가 되는 나머지 아이들과 학교 수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과연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애초부터 정말로 문제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였을까. 약으로 그 아이의 문제 행동만 없애면 정말 되는 것일까? 정말 그 약물이 그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일까.

어떤 일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손쉽고 빠른 해결책을 원하게 된다. 크리스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결핍'되었을때 그 원인이 단 한가지라고 보는 기계적 사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우리가 걱정해야할  '장애'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기계적 사고에 의하면 아이들의 결핍은 뇌의 화학적 불균형 때문이고 이런 불균형은 유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때문에 미국에서만 한 해에 수백만의 아이들이
의학적 장애가 있다고 분류되어 독한 신경화학계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크리스는 아이들에게 투여되는 약물이 장기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동시에 약물요법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안 아이의 삶에서 찾아야 하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더 큰 위험에 빠지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특정한 신경전달 물질이 아닌,  '진정한 관심'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에 힘들어하거나 감정조절을 못하는 수백만명의 아이들은 유전적 장애가 있어 약물요법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처지에서 자신만의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다. 그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서 그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믿어주는 사람들과 자신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다.
크리스가 운영하고 있는 '프리스쿨'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꼬리표를 달고 약물을 처방하는 것을 거부한다. 프리스쿨은 아이가 집중하고 싶어할때에 집중하고 싶어하는 대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아이가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서 배울 의욕이 없는 아이에게는 어떠한 배움도 강요하지 않는 방법으로 아이로 하여금 내면의 에너지를 조금씩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30년 동안 프리스쿨을 운영한 크리스의 경험속에서 'ADHD'는 유전적 결함이 아니라 배움에 자신을 투자할 준비도 의지도 능력도 없는데 공부를 강요당해서 생기는 결과다. 아이들은 다 자기만의 발달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빠르고, 어떤 아이들은 늦다.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시간에 발달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제도화된 교육 시스템은 모든 아이들을 같은 시간에 같은 방식을 통해 같이 발달할 것을 주문한다. 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아이들은 '문제아'가 되버린다.
예전에 아이들이 다니던 서당을 생각해보자.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나이에 입학하고 졸업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글 공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부모는 서당에 아이를 맡기고 아이는 아이의 실력이나 재능만큼 자신의 배움을 앞서간다. 일정한 나이가 되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몇달만에 천자문을 떼고, 어떤 아이들은 몇 년만에 그 과정을 마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대로 배웠다.

오늘날 우리들의 아이들의 삶에는 가슴뛰는 모험도 없고, 마음껏 탐험할 자연도 없다. 안전한 골목이나 공터도 없고 아니 그보다도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며 자신의 흥미와 재미를 스스로 찾아낼 그런 기회조차 없다.
세상은 점점 더 어린 아이들에게 일찍 읽기와 쓰기를 배울것을 강요하고 있다. 아이가 학교나 유치원에 다니는 시간, 등 하교 하고 숙제하는 시간,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고 학원에 다니는 시간, 텔레비젼을 보고 게임을 하는 모든 시간을 다 빼고 나서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탐색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성찰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이런 시간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의 시간을 최대한 간섭하고, 프로그래밍하는데 매달린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이다.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온갖 프로그램을 통해 길러진다. 이런 프로그램에 들지 못하는 아이들은 점점더 방치되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행동반경은 점점 좁아지고 어른들이 개입하는 프로그램과 상업적인 시설들의 확장속에서 모든 것들이 패키지로 아이들에게 제공된다.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내면에서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하나 제 마음대로 펼치고, 뒹굴고, 시도하고, 발산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 넘치는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배울 수 있을까. 더구나 점점 더 부모들의 육아 스타일은 아이들의 세계를 통제하고
개입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부언가 해내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욕구와 리듬을 스스로 관리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는 모험과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 프로그래밍된 유전기와 자기절제력을 상실한 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급증하는 현상 간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확신한다. 
아이들의 거칠고 산만하고 공격적인 행동은 일종의 조난신호, 즉 도움이 필요하고 자기를 구원해달라는 요청이다. 욕구불만과 정서불안의 표출이지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 에쉬턴 워너는 자신의 저서에서 모든 아이에게 창조적 분출구와 파괴적 분출구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창조적 분출구가 충분히 열려져 있지 않으면 아이의 에너지는 파괴적 분출구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제도권 교육은 아이들의 창조성을 표출할 수 있는 시간들이 계속 정규 과정에서 밀어내고 있다. 국, 영, 수만 강조되는 교육은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체육등의 활동을 점점 더 축소하거나 없애고 있다. 오직 주요과목의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해 하고 있지 않은가. 상위 5%의 아이들을 위해서 나머지 95%가 희생되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서로를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고, 이탈하고,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거듭 말한다. 아이가 보이는 모든 행동은 아이의 표현임을 말이다. 아이는 가만히 있지 않는 것으로, 반항하거나 파괴하고, 남을 괴롭히고,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부모와 사회에게 말을 하고 있다.
그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쉽게 약물을 먹이는 방법을 택한 미국 사회는 점점더 심해지는 청소년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고, 해결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노력이 따르는 것을 거부한 대가로 더 심한 문제에 마딱뜨리는 어리석음을 이젠 우리가 따르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는 부모와의 건강한 유대감조차 이 시대의 산업화된 출산환경은 아기가 태어나자 마자 의료진의 손에 옮겨져 일사불란한 처치를 겪고 신생아실에 격리되는 것으로 막고 있다. 이런 시스템으로 많은 엄마들이 아기와의 유대감 형성에 두번째로 중요한 모유수유에 실패하고 있다. 육아보다 경제적 활동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자 마자 시설에 맡겨져 충분한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너무 어린 나이에 각종 단체와 프로그램속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탐험하고 탐색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 가해지는 불행한 폭력이다. 이런 환경속에서 아이들의 에너지는 늘 갇혀있다. 그 에너지가 행동으로 감정으로 분출하는 것 조차 장애로 여기고 약물을 투여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사회, 우리가 진정 염려해야 하는 것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가하고 있는 이런 폭력들이다.

문제의 원인을 아이 하나에게 돌려버리는 해결은 참 쉽다.
그렇게 하면 거기에 얽혀있는 우리 어른의 책임도 면할 수 있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보다 적응하는 아이들이 더 많지 않은가. 그러니까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문제라고 보면 마음 편하다. 그 아이들만 해결하면 되니까..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쉽지 않지만 아이들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작은것 하나라도 어른의 개입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사회가 손 쉬운 방법으로 우리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고 하면 최선을 다해 막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노력 해야 한다.
당신의 아이가 얌전하고 반듯하게 자라는 아이라도 이 책은 유용하다. ADHD 증세가 없다 하더라도, 그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부모라도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정말이지 돈이 있다면 모든 부모들의 손에 한권씩 들려주고 싶을 만큼 많은 지혜와 통찰이 들어 있는 책이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야 할 일곱살이지만 여전히 쓰기와 셈하기에는 관심없고 종일 뒹굴거리며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는 필규를 보면서 가끔 생겼던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데 이 책에서 큰 용기와 배움을 얻었다.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거나, 답답하고, 걱정되는 모든 부모들에게 크리스와 그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장은 커다란 감동과 배움으로 다가갈 것이다.
늘 좋은 책을 만드는 "민들레"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런 책이 진정한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하는 상업화된 출판계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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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입은 곤충 세계의 최강자! 장수풍뎅이 VS 사슴벌레 (동영상 CD 1장 포함)
이수영 글 사진 / 글송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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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좋지만, 동영상을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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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 미아! O.S.T.
아바 (Abba) 작곡 / 유니버설(Universal)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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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감동이 그대로 살아있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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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뮤지컬 & 퍼포먼스 : 대형 앨범패키지 (8disc)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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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에 비해 얻는 즐거움이 크다. 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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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터키편, End of Pacific Series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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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월이 어렵다고들 해도 어김없이 휴가철은 온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이젠 어지간한 곳이 아니면 특이한 여행지 축에도 못 끼고,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면 넘쳐나는 여행기 속에서 쉽게 손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책은 특별하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한 여행이라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는 고작 36개월을 갓 넘긴 어린 아이다. 그렇게 어린 아이와 엄마가 단 둘이 한달간 터키를 배낭 여행 한다.
그 나이라면 아직도 떼 쓰고, 변덕도 심하고, 보살펴야 하는 일들도 많은 어린 아인데, 그 아이를 동무삼아 여행을 떠난 엄마라니..
여섯살, 두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나는 낮선 환경에서 아이의 요구를 감당하고, 그 요구에 맞는 보살핌을 적절하게 제공해 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지라 우선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는 퍽이나 궁굼했다.
과연 이 두 사람은 어떤 여행을 했을까..
 
두 사람의 여행은 내가 기대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했지만,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어린 아이와 함께 간 만큼 아이때문에 쉽게 변하는 일정들과, 계획들이 생겨나고, 아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과 만남들도 이어지면서 여행은 애초에 지은이가 생각했던 무늬에서 벗어나 훨씬 더 다채롭고 풍부한 빛과 색깔로 채워진다.
그 과정을 함께 따라가는 일은 재미있으면서도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아이를 고유한 개성과 인격과 기호를 가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터키가 가진 풍부한 매력과 더불어 끄덕끄덕 깊은 깨달음 마저 안겨준다. 때로는 '아 - '하고 나직막히 감탄의 탄식이 이어지기도 한다.
 
여행을 목마르게 그리워 했던 엄마는 그토록 와보고 싶던 터키에서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다. 그러나 그녀 곁에는 아침과 저녁 기분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너무나 다른 어린 아들이 있다. 아들은 유명한 모스크를 앞에 두고 모스크 앞의 꽃밭에서 놀자고 조르고, 벼르고 찾아간 유적지에서도 친구들이 없어서 심심하다며 떼를 쓴다.
특별할 것도 없는 골목에서 나타난 고양이에게 끌려 한참을 그곳에서 놀다가 일어나기도 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터키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한나절을 같이 뛰어 놀기도 한다. 그녀에게 터키는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여행지였지만, 그녀의 아이에게는 터키 역시 고양이가 있고, 친구가 있고, 뛰어놀 공터가 있는 '놀이터'였을 뿐이다. 그 놀이터가 조금 색다르다고 해서 아이다운 호기심이나 명랑함이 줄어들리 있겠는가.  마침내 그녀는 아이가 좋아하고, 아이가 빠져드는 풍경속에 마음을 두기 시작한다.
처음엔 아쉽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좀처럼 미련이 남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곧 그녀는 알게 된다. 아이의 걸음을 따라 가는 일이, 아이의 눈과 마음이 흐르는 곳에 같이 자신을 기울이는 일이 그렇지 않으면 절대 보지 못했을 작고, 아름답고, 귀한 풍경속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는 것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떠나면 힘들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후회할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아이로 인해 자신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고, 웃음을 짓는 터키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아이가 선물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로 인해 쉽게 열리고, 수월하게 풀리고, 금새 받아들여 지고, 쉽게 편안해 지는 순간들이 여행 내내 보석처럼 그녀를 기쁘게 한다. 그렇게 받은 선물들을 그녀 역시 세상을 향해 베풀어 가면서 한 아이의 엄마에서 더 큰 사람으로 커 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보살피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엄마와 다른 것들을 보며, 엄마와 다른 기쁨을 얻고 그 속에서 제 나름의 멋진 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엄마가 무엇을 해주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되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늘 아이를 무력하고, 잘 모르고, 그래서 인도하고, 길을 제시하고, 배움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아이는 제 안에 있는 나침반으로 제가 가고자 하고, 제가 알고자 하는 것을 찾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어른의 염려와 조바심으로 막지않고 다만 곁에서 같이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아이로 인해 더 생생해지고, 더 깊어지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말미에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처음에 나는 아이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이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에게 가방을 들게하고, 자신의 힘으로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의 첫 걸음마, 첫 번째 열감기, 처음 내지른 일성, 이 모든 것들은 매일 매일 또 다른 '오늘'을 위해 성실히 축조된
밑께단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내가 끌고 가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열린 마음이 닿는 곳까지 가는 것이다.
이 아이의 인생은 오롯이 이 아이의 것이다. 내가 주관할 수 있는 것은 가방을 들어 주는 정도의 일일 것이다'
 
엄마와 함께 나섰지만 아이는 아이만의 여행을 누렸다. 그 여행에 엄마는 따스하고 성실하고 유쾌한 동반자로서 함께 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길고 오래 이어지는 여행과 다름없다. 그 여행을 어떤이는 내내 힘들고 고단하게 지나가고 어떤이는 순간순간 배우고 성장하며 기쁘게 지나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또한 여행을 갈망하는 한 존재로서 이 책을 통해 아이를 키우며 삶을 여행하는 멋진 자세와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아이의 마음과 감정과 생각이 크는 모습과 엄마로서, 한 여자로서, 한 존재가 성장하는 모습까지 함께 담겨 있는 책이다. 한 번 읽으면 다시 손이 가지 않는 여행기가 아닌, 두고두고 다시 곱씹어 보고 생각해 보고 싶은 장면들로 가득하다.장마철에 혹은 지루한 휴가지에서 읽을 책 한권을 찾는 당신이라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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