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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터키편, End of Pacific Series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세월이 어렵다고들 해도 어김없이 휴가철은 온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이젠 어지간한 곳이 아니면 특이한 여행지 축에도 못 끼고,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면 넘쳐나는 여행기 속에서 쉽게 손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책은 특별하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한 여행이라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는 고작 36개월을 갓 넘긴 어린 아이다. 그렇게 어린 아이와 엄마가 단 둘이 한달간 터키를 배낭 여행 한다.
그 나이라면 아직도 떼 쓰고, 변덕도 심하고, 보살펴야 하는 일들도 많은 어린 아인데, 그 아이를 동무삼아 여행을 떠난 엄마라니..
여섯살, 두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나는 낮선 환경에서 아이의 요구를 감당하고, 그 요구에 맞는 보살핌을 적절하게 제공해 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지라 우선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는 퍽이나 궁굼했다.
과연 이 두 사람은 어떤 여행을 했을까..
두 사람의 여행은 내가 기대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했지만,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어린 아이와 함께 간 만큼 아이때문에 쉽게 변하는 일정들과, 계획들이 생겨나고, 아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과 만남들도 이어지면서 여행은 애초에 지은이가 생각했던 무늬에서 벗어나 훨씬 더 다채롭고 풍부한 빛과 색깔로 채워진다.
그 과정을 함께 따라가는 일은 재미있으면서도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아이를 고유한 개성과 인격과 기호를 가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터키가 가진 풍부한 매력과 더불어 끄덕끄덕 깊은 깨달음 마저 안겨준다. 때로는 '아 - '하고 나직막히 감탄의 탄식이 이어지기도 한다.
여행을 목마르게 그리워 했던 엄마는 그토록 와보고 싶던 터키에서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다. 그러나 그녀 곁에는 아침과 저녁 기분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너무나 다른 어린 아들이 있다. 아들은 유명한 모스크를 앞에 두고 모스크 앞의 꽃밭에서 놀자고 조르고, 벼르고 찾아간 유적지에서도 친구들이 없어서 심심하다며 떼를 쓴다.
특별할 것도 없는 골목에서 나타난 고양이에게 끌려 한참을 그곳에서 놀다가 일어나기도 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터키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한나절을 같이 뛰어 놀기도 한다. 그녀에게 터키는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여행지였지만, 그녀의 아이에게는 터키 역시 고양이가 있고, 친구가 있고, 뛰어놀 공터가 있는 '놀이터'였을 뿐이다. 그 놀이터가 조금 색다르다고 해서 아이다운 호기심이나 명랑함이 줄어들리 있겠는가. 마침내 그녀는 아이가 좋아하고, 아이가 빠져드는 풍경속에 마음을 두기 시작한다.
처음엔 아쉽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좀처럼 미련이 남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곧 그녀는 알게 된다. 아이의 걸음을 따라 가는 일이, 아이의 눈과 마음이 흐르는 곳에 같이 자신을 기울이는 일이 그렇지 않으면 절대 보지 못했을 작고, 아름답고, 귀한 풍경속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는 것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떠나면 힘들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후회할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아이로 인해 자신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고, 웃음을 짓는 터키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아이가 선물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로 인해 쉽게 열리고, 수월하게 풀리고, 금새 받아들여 지고, 쉽게 편안해 지는 순간들이 여행 내내 보석처럼 그녀를 기쁘게 한다. 그렇게 받은 선물들을 그녀 역시 세상을 향해 베풀어 가면서 한 아이의 엄마에서 더 큰 사람으로 커 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보살피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엄마와 다른 것들을 보며, 엄마와 다른 기쁨을 얻고 그 속에서 제 나름의 멋진 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엄마가 무엇을 해주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되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늘 아이를 무력하고, 잘 모르고, 그래서 인도하고, 길을 제시하고, 배움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아이는 제 안에 있는 나침반으로 제가 가고자 하고, 제가 알고자 하는 것을 찾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어른의 염려와 조바심으로 막지않고 다만 곁에서 같이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아이로 인해 더 생생해지고, 더 깊어지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말미에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처음에 나는 아이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이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에게 가방을 들게하고, 자신의 힘으로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의 첫 걸음마, 첫 번째 열감기, 처음 내지른 일성, 이 모든 것들은 매일 매일 또 다른 '오늘'을 위해 성실히 축조된
밑께단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내가 끌고 가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열린 마음이 닿는 곳까지 가는 것이다.
이 아이의 인생은 오롯이 이 아이의 것이다. 내가 주관할 수 있는 것은 가방을 들어 주는 정도의 일일 것이다'
엄마와 함께 나섰지만 아이는 아이만의 여행을 누렸다. 그 여행에 엄마는 따스하고 성실하고 유쾌한 동반자로서 함께 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길고 오래 이어지는 여행과 다름없다. 그 여행을 어떤이는 내내 힘들고 고단하게 지나가고 어떤이는 순간순간 배우고 성장하며 기쁘게 지나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또한 여행을 갈망하는 한 존재로서 이 책을 통해 아이를 키우며 삶을 여행하는 멋진 자세와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아이의 마음과 감정과 생각이 크는 모습과 엄마로서, 한 여자로서, 한 존재가 성장하는 모습까지 함께 담겨 있는 책이다. 한 번 읽으면 다시 손이 가지 않는 여행기가 아닌, 두고두고 다시 곱씹어 보고 생각해 보고 싶은 장면들로 가득하다.장마철에 혹은 지루한 휴가지에서 읽을 책 한권을 찾는 당신이라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