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이런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팔봉은 ‘단편 서사시’를 소설과 시의 혼합 양식으로 보았고, 또 소설과 서정시를 연결하는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용어로 ‘이야기시’, ‘담시’, ‘서사시’, ‘서술시’, ‘단편 서사시’, ‘운문 이야기’ 같은 것이 있지만 정확하게 개념 규정이 되지 않고 있다(문학비평용어사전). 그러나 시소설은 위와는 다른 차원이다.
이 문학적 틀이 전통적인 틀을 넘어 문학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류의 작품이 많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영역이 많은 문학 교육 현장에서 또 일반현장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설사 살아남을 수 없더라도 현장의 소설 창작 수업에는 획기적인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소설 창작 수업은 쉽지 않다. 그러나 시소설을 통해서 소설 창작 교육도 주어진 시간에 가능할 수 있다.
문학을 독자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는 독자에 대한 연구를 보다 많이 할 필요가 있고 그들에게 맞는 문장, 그들에게 맞는 감동, 그들에게 맞는 표현력, 그들에게 맞는 내용 등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생각 않고 오로지 작가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학 체계상 독자 중심이 문학의 전부는 아닙니다. 다만 문학이 소통이라면 독자와 저자 간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게 그에 맞게 적절한 연구를 할 필요는 있는 것입니다.
책을 엮으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왜 나는 글을 쓰는가? 생각해 봅니다. 여러 생각을 해보지만 결국은 문학은 감동을 찾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효용적인 기능 차원을 넘어 감동은 원초적으로 문학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 아니할 수가 없겠습니다.
갈수록 우리의 삶은 팍팍하고 살벌해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증오, 불신, 편견과 같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각박한 상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문학마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동을 짓고 싶습니다. 누구나의 가슴에 희망을 주는 해바라기 같은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