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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송찬문

출생: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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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논어 별재 - 하>

논어 별재 - 하

『논어별재』, 논어로 논어를 풀이하다 남회근 선생은 그의 자서에서 겸허하게 말합니다. “이 책이름을 「별재」別裁라고 정한 것도 이번의 강의가 정통 유가의 경학 밖에서 다른 체재로 이루어진 단지 개인적인 견해일 뿐, 학술적인 부류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학상달下學上達의 일을 논할 만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논어별재』가 일반 주해본 들과는 다른 참신함(別出心裁)은 어느 방면에서 표현되었을까요? 첫째, 『논어별재』의 가치는 강해에 있지 주해에 있지 않습니다. 둘째, 『논어별재』에는 남회근 선생의 독창적인 견해가 많아 해석이 전인들과는 다른 곳이 100여 곳입니다. 셋째, 『논어별재』의 한 가지 특별한 점은 현실과 연계하여 생동감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넷째, 눈앞의 사회 실제와 저자 자신의 인생 경험을 활용 강해함으로써, 공자의 말 속의 말과 말 밖의 말 그리고 『논어』 원문에서 직접 말하고 있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의미에까지도 확대하여 보충하고 있습니다. 『논어별재』는 공자 시대와 2천여 년이나 떨어져 있습니다. 공자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이지만, 『논어별재』는 남회근 선생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통속적이어서 이해하기 쉽고 심오한 내용을 알기 쉽게 표현하며, 『논어』 사상의 내함과 공자가 말하는 본뜻과 꼭 들어맞는 동시에 현실 사회의 실제와 결합시켜 강술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전정한 전승傳承인 것입니다. 또한 『논어별재』는 과거 역대의 경학가들 주석과 천명闡明 발휘로 본래 면모를 잃어버린, 특히 주희의 「사서장구」四書章句로 그 원본의 전체적인 연관된 사상 원칙이 산산 조각이 나버린 『논어』를 새롭게 꿰뚫어 통하게 함으로써 『논어』의 본래 면모를 회복하였습니다. 선생은 말합니다. “본래 ��논어�� 스무 편은 공자의 제자들이 수미가 일관되고 조리가 정연하도록 마음을 다해 편찬한 한 편의 완전한 글입니다. ��논어�� 20편 전체뿐만 아니라 각 편의 문장 모두가 조리가 정연하고 맥락이 일관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 20편은 수미首尾가 호응하도록 편집 배열되어 있어서 한 편의 자연스럽고 완벽한 훌륭한(天衣無縫) 문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하여 『논어별재』는 우리를 대신하여 편과 편 사이의 내재적인 논리 연계를 찾아줍니다. 제1편 「학이」는 개인이 내재적인 학문 수양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2편 「위정」은 학문의 외적인 응용을 말합니다. 제3편 「팔일」은 문화정신을 말하는데, 개인의 내성內聖을 배움으로 삼고 외적 응용을 위정爲政으로 삼으며 이를 종합하는 문화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仁은 공자 학문의 중심인데, 제4편 「이인」은 오로지 인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제5편 「공야장」과 제6편 「옹야」는 공자와 그 제자들 간의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공문의 학문을 설명합니다. 공문 학문 중의 인의 응용은 추기급인推己及人으로서, 자기의 이익을 생각할 때 남의 이익도 염두에 두며, 이를 확충하여 천하 사람들의 이익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仁의 길은 바로 이렇게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여섯 편을 연결하면 『논어』 전체 중의 공문 학문의 강요입니다. 이어서 제7편 「술이」는 「학이」 편에 대한 주해로서 학문의 도리를 확장하였습니다. 제8편 「태백」은 「위정」 편의 개인의 학문 수양에 대한 확장 주해입니다. 제9편 「자한」은 「공야장」과 「옹야」 두 편 내용의 확장으로서 공자의 학문과 교육 그리고 역사 관념과 관련하여 한걸음 더 나아간 발휘입니다. 제10편 「향당」은 공자의 일상생활의 소묘素描입니다. 일반적으로 『논어』 20편을 상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위의 10편을 상론, 아래의 10편을 하론으로 삼습니다. 하론의 9편인 「선진」 편부터 「자장」 편까지는 주로 공자와 제자 사이의 대화나 토론,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공자의 평가와, 학생 문인들의 공자 학설에 대한 천명 발휘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상론 각 편에 대하여 실제적인 사례로써 주해하고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연관되어있습니다. 하론의 각 편과 상론의 각 편도 대체적으로 하나하나 대응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11편 「선진」과 제15편 「위령공」은 「학이」와 「위정」 편에 대한 발휘입니다. 자로가 정치 종사의 도리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 제13편 「자로」는 「위정」 편에 대한 발휘입니다. 제12편 「안연」과 제14편 「헌문」은 모두 「이인」 편에 대한 발휘입니다. 제16편 「계씨」와 「옹야」 편은 서로 호응하는 관계입니다. 제17편 「양화」는 「술이」 편의 확장으로서, 말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공자의 사람됨과 처세의 중점인데, 후세에 교훈의 거울로 삼아 활용한 것들입니다. 마지막 한 편인 「요왈」은 비교적 특별합니다. 남회근 선생은 말하기를 “이 편을 여기에 놓아둔 것은, 공자와 그 제자ㆍ문인들과는 관계없이 상고의 역사 자료만 기록하고 있어서 앞의 열아홉 편과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자의 사상이 중국 상고의 전통 문화의 연속선상에서 바로 그런 부분들로부터 나온 것임을 나타낸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왈」 편의 마지막 한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대의 환경과 추세인) 명命을 알지 못하면,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없으니) 군자가 될 수 없다. (사람으로서의 예의와 전통 문화의 철학적 이치이자 인생의 도리인) 예禮를 알지 못하면, (환경에 끌려 다니며 휘둘릴 뿐) 스스로 꿋꿋하게 서서 인생길을 걸어갈 수 없다. (옛 선현들이 일러 주는 인생 경험인) 말言을 (깊고 절실하게 진정으로 이해하여) 알지 못하면, 올바른 사람됨(과 처세의 방법)을 알 수 없다.” 子曰 :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이것은 『논어』 전체 20편의 최종 결론입니다. 「학이」에서 시작하여 『논어』 전체는 사람됨의 학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에 한 단계씩 올라가 사람됨의 완벽한 경지인 군자君子를 향하여 등반하여, 마침내 여기에 이르러 끝남으로써 『논어』 첫 머리와 호응하면서 전체 문장을 총결總結합니다. 선생의 이러한 「별재」를 거침으로써 『논어』 20편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내재적인 논리성과 연속성이 있음을 명확히 이해하게 됩니다. 『논어』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논어』의 첫머리는 다음의 세 마디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언제 어디서나)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기 좋아하고 반성하며 점점 진보하여 가)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학문적 지기知己인)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이해하여)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 子曰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첫머리의 세 마디 말은 『논어』의 기점이며 더욱이 전체 『논어』의 눈동자로서 중심점(眼點)입니다. 이 세 마디 말은 세 가지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인, 학문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요? 인仁을 배우는 것입니다. 인은 공자가 학문을 하는 최고의 목적이자 전체 『논어』의 중심입니다. 공자의 ‘인’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역대이래의 해석이 많았습니다. 논어에서 인을 언급하는 곳은 모두 109곳인데, 그런 사람들은 그 중 어느 한 점을 붙들고는 인의 전체라고 여깁니다. 이는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면서 저마다 일면만 집착하는”衆盲摸象, 各執一端.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오랜 기간의 곡해는 당나라 시대의 한유韓愈였습니다. 그는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이라 한다.”(博愛之謂仁)고 해석했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말합니다. “한유는 자기의 의견을 가지고 주해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한유의 사상이지 공자의 사상이 아닙니다. 한유는 묵자를 연구한 전문가였습니다. 겸애설을 묵자는 중요하게 보았으며 묵가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유는 자칭 공맹을 직접 계승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후세에 와전되어 송대의 이학자理學家들에 이르러서는 이 인仁을 전문적으로 강론했습니다. 하지만 남회근 선생의 견해에 의하면 송나라 유학자 이학자들이 말하는 그런 식의 인의 이론은 이미 공자 사상의 본래면목이 아니었습니다. 왼쪽에서 불가의 것을 훔치고 오른쪽에서 도가 노장의 것을 훔쳤습니다. 특히 노자의 것을 더 많이 훔쳤습니다. 그런 다음 한번 융회融會하여 자기들 것으로 삼았습니다. 청나라 말기 무술변법戊戌變法 중의 여섯 군자六君子의 하나였던 담사동譚嗣同이 『인학』仁學이란 책을 한 권 썼는데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송나라 유학자들의 이학으로 시작하여 공문의 학문을 토론했습니다. 현대 학자들이 인에 대하여 내린 정의는 더욱더 각양각색입니다. 남회근 선생은 지적합니다. ”인仁은 공자의 사상에서 많은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형이상의 본체로부터 형이하의 만물의 용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으로 돌아갑니다.” 유의해야 합니다! 인에는 체와 용이 있습니다. 하나의 간단한 정의를 내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생의 「별재」입니다. 전체 『논어』 중에서 공자의 인에 관계된 논술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인」 편과 「안연」 편입니다. 「이인」 편 전체는 인의 용用, 인의 행위를 말하고 있으며 그 첫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정한 학문이) 인仁의 경지에 터를 잡고 안주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그에 도달함)은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진선미眞善美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진정한 학문과 수양이) 인의 경지를 안주처로 선택해 그 경지에 처하는 데 이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의 성취라고 하겠는가?” 子曰 :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 「안연」 편 첫 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바로 인仁이라고 답하는데, 이것은 인의 체體를 말합니다. 안연이 인仁(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자기(의 심리)를 (깨끗하게 함으로써) 극복해서 (언제나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언제나 올바르게 생각하는 듯 엄숙한 상태, 즉 내심에서의 자신에 대한 신중함이 자기를 극복한 자아의 성실하고 공경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예禮의 경지를 회복한 것이 인仁(의 체體 경지)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망념ㆍ정욕ㆍ사악한 생각ㆍ편향된 관념을 정화淨化 극복하여 올바른 생각正思으로 완전히 걸어간 다음의 예禮의 경지라야, 비로소 인仁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 예의 경지에서 발전하여 사람과 사물에 대해 어디서나 예를 갖추는 것이 예의禮儀입니다. 이런 수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심리를 인식해야 합니다) 어느 날이라도 (그렇게) 자기를 극복하고 예禮의 경지를 회복하면, (온 세계) 천하가 인의 경지로 돌아간다. (그 인의 경지란 우주 만물과 자기의 심신이 하나로 합하여 일체一體가 된 것이다. 그러한 인생 최고의 경지인) 인의 경지를 이루는 것은 자기(의 심신으)로부터 비롯되지 남으로부터 비롯되겠느냐?” 顔淵問仁. 子曰 :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 이상은 인仁의 체의 내재적 수양을 중점으로 말했습니다. 인의 외적 응용은 사람됨과 처세의 규범을 가리키며, 이 방면의 내용은 정말로 많고 많습니다. 『논어』의 대부분은 어떻게 사람이 되고 어떻게 일처리를 할 것인지를 담론하고 있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이 책에서 『논어』 자체의 활기찬 생명을 살려내어 깨우쳐줌으로써 우리들 이 시대 사람들이 현대의 생활 경험으로써 『논어』에 내재된 진정한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상은 주로 남회근 선생의 학생 위승사魏承思의 「남회근저작도독南懷瑾著作導讀」에서 주요 내용을 뽑아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들 인생은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ㆍ세계ㆍ우주자연과 서로서로 연기緣起적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다양한 문제들의 연속이요 위험의 연속입니다. 이를 잘 헤쳐 나아가고 해결할 수 있으려면 진정한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 자신이 저작들 중에서 『대학강의』와 함께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논어별재』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진정한 스승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선생의 저작들은 인생 지혜의 보고寶庫이자 인생 수업의 최고급 교재들입니다. 서가에 꽂아두고 늘 애독 음미하고 활용 실천한다면 무궁한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반 권의 『논어』로 천하를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동서고금 제자백가의 지혜의 정수精髓와 인생 경험을 그에 더하여 말해주는 『논어별재』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선생은 말합니다, “책에서 말하는 도리를 이해함은 지식일 뿐이지 학문이 아닙니다. 진정한 학문은 이해한 도리를 자기의 정신, 생각, 행위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행하고 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학문입니다. 지식은 곳곳마다 있지만 학문은 자기가 해내어야 합니다. 그 도리를 마음에서 이해하고, 사람됨, 일처리에 사용해야 읽어 통한 것이요 성공한 것이라 칠 수 있습니다. 성공은 꼭 고위직에 오르고 돈을 많이 모아야 하는 것이 아니요 큰 회사를 차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학문을 완성함과는 무관합니다. 오직 자기 교육을 완성하고 자기를 구제했다면 비로소 진정한 성공입니다“ 선생은 또 말합니다, “저는 지금 나이가 많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는 말합니다. ‘인생은 영문을 모른 채 태어나고’, 우리는 모두 영문을 모른 채 태어나며 부모님도 영문을 모른 채 우리를 낳았습니다. ‘그런 다음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까닭을 모른 채 죽어갑니다.’ 이렇게 일생을 사는 사람은 우습지 않습니까? 사람은 인생관을 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홀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관을 먼저 확정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자신의 포부, 목적, 인생관을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확고부동하여 시종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생관을 세운 사람은 행함에 있어서 지키는 바가 있으므로, 하는 바가 있고 하지 않는 바가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발견한 바로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6, 7십 세가 된 사람도 정확한 인생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올바른 인생관이 있습니까?” 2023년 11월 중순 고양시 장령산 심적재에서 송찬문 삼가 씁니다

생과 사 그 비밀을 말한다

제4판을 발행하며 이때 견정(見正)이라는 한 비구가 있었는데 새로 출가한 자였다. 그는 마음에 의심을 품고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내생후세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이 죽고 나서는 돌아와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어떻게 알 수 있나? 이것을 부처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중략....“저는 태어나서부터 이후로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자ㆍ형제ㆍ부부 내외나 혹은 서로 사랑하던 벗, 혹은 서로 미워하던 원수도 있었는데 죽은 뒤에 돌아와 얼굴을 마주하고 좋은지 나쁜지를 알려주는 식신(識神)은 끝내 없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식신이 무언가에 막혀서 면전에 돌아와 사람에게 알려줄 수 없는 것입니까? 원컨대 저희들을 위해 분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로 하여금 맺힌 의혹이 풀어져 진실을 빨리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몸의 형상을 받고 육안으로 보는 현재의 일과, 부모 친척은 훤히 보아 잘 알고 있지만, 전생에 어디서 왔는지를 보거나 알 수가 없다. 금생에 늙어 죽어 후세에 태어나 다시 몸을 받으면 금생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번 태어났다가 한번 죽으면 식신이 변화하고 바뀌어 12인연을 거치는데, 그 중에 무명[痴]이 그 주요한 것으로, 멍청하고 어둡고 우둔하여 환생하면 과거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의 경문은 인과윤회를 불신하는 원인에 대하여 설한 『생사변식경』에서 뽑아온 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세인과(三世因果)와 6도윤회(六道輪廻)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교 신앙인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제4판에서는 동국역경원 번역본을 역자가 일부 개역하여 부록에 추가 하였습니다. 한편 독자들이 생사 문제에 대한 남회근 선생의 견해를 더욱더 깊게 이해하도록 선생의 저작 『선해려측(禪海蠡測)』 속의 「생과 사의 사이[生死之間]」라는 글 한 편을 뽑아 번역하여 부록에 실었습니다. 이를 통해 ‘생사 문제, 생명의 윤회, 인연과 업력, 체용(體用)과 공(空)과 유(有), 유가와 도가가 말하는 생사, 불법의 인생관, 좌탈입망(坐脫立亡), 입정(入定)과 사망의 구별, 귀신과 공덕’에 대해서 깊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의 깨달음과 서원을 보현보살이 증명한 사실에 대해서 만년에 선생 자신이 말한 내용을 번역하여 저자 소개에 더하였습니다. 또한 본문 속의 소제목을 중문 원서의 개정판에 따라 수정하였으며, 본문 속의 역주 방식을 각주 형식으로 바꾸고 주석을 증보하였습니다. 그 이외에는 예전 그대로입니다. 2023년 1월 중순 장령산 심적재에서

역사와 인생을 말한다

역사와 인생은 연애소설이다 역사란 인간의 생활사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인간은 역사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 또한 인간에 의해 창조된다. 이 세계에 있어서 대사건의 역사는 범죄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기억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간이야 말로 인생을 형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비극은 우리가 너무 일찍 늙고 너무 늦게 현명해 진다는 것이다.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등등 역사와 인생에 관한 고금의 명언들은 많습니다. 중국의 명말청초(明末淸初) 시기의 문학가인 이립옹(李笠翁)은 말했습니다. “인생은 바로 연극 무대이며, 역사도 연극 무대에 불과하다. 이 무대에서 연극하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일 뿐 제3자는 없다. 그 두 사람이 누구일까? 하나는 남자요, 하나는 여자다.” 참으로 명쾌하면서도 핵심을 찌른 명언입니다. 또 이 책의 저자 남회근 선생은 말합니다. “아득한 태고부터 지금까지 억만 년 동안 이 거대한 우주세계 속의 생명 존재가 각종 문자로 기록한 문헌은, 그것이 문학․정치․군사․경제․경서․정사(正史)․필기소설이든 간에, 한마디로 말하면 모두 인간의 천태만상의 괴상한 연애소설(情史) 기록일 뿐이다.” 동서고금의 역사와 인생이 남자와 여자의 연극무대요 연애소설인 바에야 인성(人性)의 문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때마침 남회근 선생이 ‘인성의 진상을 말한다’ 등의 주제로 했던 강연 기록이 최근 출판된 다른 저작에 있기에 뽑아서 번역하여 부록으로 실었습니다. 아마 역사와 인생을 해독하는 키 워드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할까요 우리들 인생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할까요? 남회근 선생은 말합니다. “철학에는 ‘인생관’(人生觀)이라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늘 말하기를, 오늘날의 교육은 틀렸으며, 진정으로 철학도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철학을 말하려면 인생관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발견한 바로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육칠십 세가 된 사람도 정확한 인생관이 없습니다. 저는 늘 일부 친구들에게 묻습니다. 어느 분은 돈을 많이 벌었고 어느 분은 높은 관직에 있는데, 저는 그 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합니까? 정확한 인생관이 하나 있습니까? 그들은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왜 이런 말을 물으십니까? 제가 말합니다. 그래요!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를 모릅니다! 관직에 있는 당신의 경우, 당신은 아름다운 명예를 천고에 남기고 싶습니까 아니면 악명을 천추에 남기고 싶습니까? 이것이 인생의 두 가지 전형입니다. 돈을 번 사람들은 어떨까요? 역시 제가 늘 물어봅니다. 당신은 지금 돈을 많이 벌었는데, 당신은 도대체 이 일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러나 제가 접촉한 돈 번 친구들은 열 명 중 거의 열 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정말 모르겠습니다! 돈은 많지만 막연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바로 교육 문제로서 인생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내의 십 몇 억 인구, 심지어 전 세계 칠십 억 인구 중에 진정으로 인생을 알고 자기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이것은 한 가지 큰 문제인데, 바로 교육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생명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것도 한 문제입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어떤 사람이 관료가 되어서는 아름다운 이름을 천고에 남기고 싶을까요 아니면 악명을 천추에 남기고 싶을까요? 이 두 마디 말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진(晉)나라 대 영웅인 환온(桓溫)이 말한 것입니다. 인생의 가치를 얘기하고 있는데 저는 지금 나이가 많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는 말합니다. ‘인생은 영문을 모른 채 태어나 고’, 우리는 모두 영문을 모른 채 태어나며 부모님도 영문을 모른 채 우리를 낳았습니다. ‘그런 다음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까닭을 모른 채 죽어갑니다.’ 이렇게 일생을 사는 사람은 우습지 않습니까? 교육은 인성의 문제입니다. 교육의 최고 목적은 인성의 문제를 철저하게 인지하는 것입니다. 교육만이 아니라 정치․군사․경제․철학․문화 등 어느 분야의 학문이든 최후의 최고의 정점은 모두 인성 문제를 떠나지 않습니다. 감정․정서의 도야, 인격의 양성, 올바른 사람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과학기술의 범위가 아니라 철학․종교․문예 교육의 범위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오로지 과학기술만을 쳐다보고 따라가고 인격 양성이 없어지고 모두 어지럽고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그저 지식 판매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 이것이 혼란의 근원이요 고뇌의 근원입니다. 오직 과학․과학기술․철학․종교․문예․인격양성 교육이 일체화가 되어 본자리로 돌아가서 균형발전을 이루어야 비로소 희망이 있습니다. 21세기의 최대 위협은 정신병입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이 대단히 빠르고 또 몹시 두렵습니다. 이렇게 발전해가면 10년이 못되어 인류를 모두 환상(幻想)과 정신병의 세계로 이끌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막을 수 없습니다. 무슨 교육 무슨 의료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크나큰 문제로서 전쟁보다도 두렵습니다. 무슨 수소폭탄보다도 더 두렵습니다. 환경 보호를 하려는 여러분은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세계의 변천에서 어떻게 다시 문화를 건설해야 할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 지식인들의 책임입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생명의 가치와 의의를 이 방면으로 향하게 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업이란 인류사회의 생존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역사와 인생을 말한다’는 ‘남회근담역사여인생’(南懷瑾談歷史與人生)을 번역한 것입니다. 2004년 초 번역해 놓았던 것을 2012년 9월초부터 쉬엄쉬엄 검토 정리하기 시작하여 이제야 마쳤습니다. 뜻밖에 2012년 9월 29일 남회근 선생께서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는 진정한 선지식을 한 분 잃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저작과 사상 정신은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오래오래 영향을 줄 것입니다. 역사와 인생은 변화무상한 뜬 구름이요 흘러가는 물입니다. 책을 읽고 역사를 읽는 것은 세상 물정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니, 저는 이 책이 독자들의 인생에 크게 유익하기를 바랍니다. 2013년 1월 16일 유구읍 심적재에서

중의학 이론과 도가역경

우리들의 작은 천지 도가는 말하기를 우주는 대천지(大天地)이며 사람의 몸은 소천지(小天地)라고 합니다. 도가에서는 인간 생명의 작용과 천지는 마찬가지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이미 있는 현상으로부터 얘기해 봅시다. 『황제내경』에서는 하나의 사람 몸을 스물여섯 부분으로 귀납시키고 천지의 법칙과 서로 배합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사람의 머리는 둥글둥글하면서 몸 전체의 꼭대기에 있어서 마치 하늘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발은 아래에 있고 네모 모양으로서 마치 땅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남은 천지 사이의 해와 달이 아닙니까? 일곱 구멍에다 하체의 두 구멍을 더하면 딱 천지의 구주(九洲)와 같습니다. 사람이 기쁨과 분노가 있을 때는 천지의 번개와 우레와 같습니다. 우리들의 팔다리 사지는 1년의 사계절과 같습니다. 이렇게 서로 대응시켜 합하면 스물여섯 개가 천지에 비견됩니다. 누가 사람 人자를 알아볼까 의학을 말하자면 정말 한 분야의 대단한 학문입니다. 거의 위로는 천문(天文)을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통하며, 또 중간으로는 가장 중요한 한 분야의 학문인 사람[人]을 통해야 합니다. 먼저 사람 人자를 위하여 모양을 한 번 살펴봅시다. 왼쪽 삐침은 양이고 오른쪽 삐침은 음입니다. 일음일양(一陰一陽)이 사람 人자를 구성합니다. 좀 더 살펴보면 우리 사람이란 것은 인중(人中) 위로부터는 두 콧구멍, 두 눈, 두 귀가 곤괘(坤卦) 아닙니까? 인중 이하는 입 하나에, 밖으로는 하체의 두 구멍을 더하면 세 개의 양효가 되서 건괘(乾卦)를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지천태괘(地天泰卦 ䷊)로서 바로 균형의 의미입니다. 이런 말은 그냥 하나의 우스갯말이라 합시다! 그렇더라도 이 사람 人을 이해하려면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의사가 되려면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의학에는 한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의자의야(醫者意也)”, 두뇌가 총명해서 틀에 박힌 원칙을 융통성 있게 운용해야 비로소 천태만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학이란 지혜의 학문입니다. 중국 의학의 첫 걸음은 병의 상황을 이해하고 환자를 진단하는 데는 망문문절(望聞問切) 네 글자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기(禮記)』 속에는 다음의 한 마디가 있습니다, “의술가가 『황제내경』『신농본초』『태소』 이 세 가지 기초 의학 서적을 읽지 않았다면, 그의 처방약을 복용하지 않는다.[醫不三世, 不服其藥]. 많은 사람들은 그 의술가(醫家)가 3대(代)에 걸쳐 의사 노릇을 해야 비로소 그에게 병을 치료 해달라고 청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3세(世)’는 3대(代)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3세(世)’는 첫째는 『황제내경』, 둘째는 『신농본초(神農本草)』, 셋째는 『태소(太素)』(맥의 이치)를 가리킵니다. 이 세 가지에 정통하는 것은 의사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므로 3세에 통하지 못한 자는 의사라 할 수 없고 그 처방 약을 복용할 수 없습니다. 『태소』가 중시하는 것은 완전히 기맥의 문제입니다. 송(宋), 명(明) 시대 이후에 태소를 이해한 사람을 삼지선(三指禪)이라고 불렀습니다. 맥을 짚어본 뒤에 병자의 병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빈부귀천[窮通富貴]까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맥의 이치는 정말 한 분야의 심오하고 또 심오한 학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삼지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 기맥인가 기맥(氣脈) 두 글자를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일종의 힘줄이거나 혈관 종류 같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중의학에서 말하는 12경맥은 유형(有形)의 혈관 등등을 포함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해부학적으로 말하면 육안으로써 볼 수 있는 것으로 인체의 구체적인 조직입니다. 그러나 도가에서 말하는 기경팔맥(奇經八脈)과 밀종에서 중요시하는 삼맥칠륜(三脈七輪)은 단지 작용만 갖추고 있지 인체를 해부할 때 한 가지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기(氣)는 무형이면서 질(質)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원자 에너지의 배열과 같습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사물로써 비유한다면 마치 불이 일어날 때 솟아오르는 연기와 같은데, 이러한 연기들도 한 가닥의 길을 갑니다. 하지만 일정한 관(管) 속을 통해서 행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서양 생리학과 중국인들은 모두 기맥이란 매우 현묘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원인은 기맥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보이지 않는 기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호흡의 숨[息]도 아니고 공기 속의 대기(大氣)도 아닙니다. 하지만 팔팔하게 살아있는 생명 속에서 그것의 더할 나위 없는[無上] 기능과 영향의 중대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굳이 이것을 생명 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맥은 무엇에 근거하여 생장하고 있을까요? 무엇에 의지하여 변화하고 있을까요? 하느님이 안배했을까요? 보살의 의도일까요? 아니면 자연현상일까요? 이것은 생명 기원의 문제입니다. 의학 이론은 본래 매우 현묘하여 이해하기 어려운데, 거기다가 생명의 기원을 더하니 더욱더 현묘하고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생명의 기원은 의학이론의 철학입니다. 의학 이론학문은 의학을 이끌고 있지만, 철학은 도리어 의학 이론학문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생명 기원의 문제도 규명하며 탐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혈(血)이란 무엇인가 현대 사람들은 모두 혈을 표면적으로 해석하여, 바로 혈관 속에서 유동하는 붉은색의 것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중국 고대의 의서에서의 혈의 진정한 함의(含意)는 범위가 넓습니다. 혈은 인체 중의 각종의 액체를 포함하여서, 혈관 속의 피 이외에도 모든 내분비(호르몬), 인체 내의 각종의 화합은 모두 그 안에 포괄됩니다. 그러므로 중의학에서의 ‘혈이 깨끗하지 않다’는 한 마디는 내분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중의학에서의 혈의 함의를 먼저 이해해야 깊이 연구할 수 있습니다. 팔괘와 음양에 갇히지 마세요 중국 의학 사상이론은 우산 형태의 중국 문화의 하나의 가지[枝]이며, 이 중국 우산 형태 문화의 꼭대기가 바로 『역경』 문화입니다. 중국의 온갖 것은 이 우산 형태의 문화 속에 갇혀있습니다. 전체 문화가 모두 깊고 깊은 극도의 피곤[困頓]을 겪고 있는 바에야 의학 방면도 자연히 예외가 아닙니다. 사실상 의학이 겪고 있는 극도의 피곤이 가장 깊습니다. 중국 문화를 극도로 피곤하게 하는 것은 첫째가 음양 사상(陰陽思想)이요 둘째가 오행(五行)과 천간(天干)ㆍ지지(地支)입니다. 의학 이론과 치료 방면의 음양은 그것들이 나타내는 의미를 자세히 한번 연구해보면 하나의 분명한 윤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음양의 이치는 실제상으로는 바로 일종의 교호(交互) 작용인데, 곳곳에서 음양을 고려하는 것도 바로 그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중화(中和) 협조하는 상호 작용에 도달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떤 방면에서 보면, 예컨대 경맥 문제의 경우 이른바 음양을 함께 고려하는 것도 일종의 전도(傳導)의 작용입니다. 다시 감기를 가지고 말하면 역시 일종의 전도의 전염일 뿐입니다. 만약 음양의 보자기를 내던져버리고 구체적이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체계화한 설을 짓는다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의학 이론에 대해 말하면 추상적인 과학의 철학에 소속시켜서 우주의 만사만물 속에는 일종의 서로 대등한 상대적 균형 작용이 있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음양의 이치에 대해 우리는 많이 얘기했습니다만, 사실 음양의 이치는 바로 이론 물리의 것을 인체에 응용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론 물리의 발전도 이미 철학의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음양 자체의 의미란 단지 대등한 균형력의 증감에 불과하다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난 바에야, 음양 두 글자를 버리는 게 또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도가에서는 임맥과 독맥은 천지간의 음양과 같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저는 여러분들이 팔괘의 짐 보따리를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한 법에 근거해서 또 달리 과학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맥과 팔괘와의 관계는 후인들이 당(唐)나라 송(宋)나라 사이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의학이 여전히 팔괘의 테두리 안에서 머물러 맴돈다면, 앞길이 유한한 것으로 변하고 나중에 많은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의학을 배우는 사람이 『역경』의 상수(象數)에 정통한다는 것도 이미 쉽지 않은데, 하물며 상수학(象數學)과 의학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맞는 곳과 맞지 않는 곳이 있다고 너무 견강부회해서는 안 됩니다. 최상의 좋은 약품은 정기신(精氣神) 도가에 한 권의 중요한 책이 있는데 『황정경(黃庭經)』이라고 합니다. 『황정경』에서 정(精)ㆍ기(氣)ㆍ신(神)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정기신일까요? 무엇이 정일까요? 무엇이 기일까요? 또 무엇이 신일까요? 이 정이 도대체 정신의 정일까요? 이것은 말하면 할수록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기경팔맥에서의 기혈 문제인 것처럼 역시 말이 구체적이지 못합니다. 서로 차용한 것이 잘못이라면 그때 당시의 어휘가 너무 적었다는 것을 탓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애매하고 불명하게 보입니다. 만약 오늘날의 복잡한 어휘를 써서 굳이 그 어휘를 빌려서 한 번 묘사한다면, 이른바 정기신이란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속의 광(光)ㆍ열(熱)ㆍ력(力)일 것 같습니다. 죽은 사람을 해부하면 정(精)도 없고, 기(氣)도 없으며, 신(神)은 더더욱 없습니다. 물론 광ㆍ열ㆍ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氣)란 일종의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정(精)이란 일종의 생명력입니다. 신(神)이란 일종의 생명의 빛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절대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단지 우리들로 하여금 비교적 이해에 접근하게 해주는 일종의 비유적인 해석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람의 신체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각각 정기신(精氣神)을 나타냅니다. 신(神)은 주로 두부(頭部)에 있습니다. 기(氣)는 주로 흉부(胸部)에 있습니다. 정(精)은 주로 하부(下部)에 있습니다. 「무근수(無根樹)」 설에 따르면 사람이란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말로 뿌리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사람의 뿌리는 윗부분에 있습니다. 사람 몸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뇌 부분이 신(神)입니다. 사람의 뿌리는 뇌 부분으로부터 위로 향하여 허공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뿌리는 허공 속에 있으며, 역시 신식(神識)의 뿌리입니다. 침구 원리적으로 말하면 머리는 모든 양(陽)의 우두머리로서 가장 중요한 곳이며, 신(神)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콧구멍의 크기는 기(氣)와 관계가 있습니다. 요가술에는 콧구멍 훈련을 특별히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기공을 훈련하는 도리입니다. 기(氣)의 출입을 훈련할 때, 기를 들이마실 때는 가늘게, 길게, 느리게 하면서 아랫배를 안으로 움츠려 들이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때에 기가 모두 12경맥에 들어갑니다. 기를 내쉴 때는 빠르게, 급하게, 세차게 해야 됩니다. 보통 훈련방법은 오전에는 왼쪽 코로 호흡을 하고, 오후에는 오른쪽 코로 호흡을 합니다. 손가락으로 다른 콧구멍을 하나 누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단전을 이용해서 호흡하면 스스로 침구 혈도(穴道)의 위치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요가의 기(氣)수련과 기공의 기(氣)수련은 모두 공기의 기(氣)이지 정기신(精氣神)에서의 기(氣)가 아닙니다. 도가의 활자시(活子時) 자(子)ㆍ오(午)ㆍ묘(卯)ㆍ유(酉) 입장에서 보면 자(子)의 부위는 의미가 지극히 중대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생명의 원동력인 생법(生法)의 궁(宮)으로서 기맥이 발기하는 중추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시(子時)를 활기 있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도가에서 사람의 몸이란 하나의 작은 천지라고 보는 바에야 만물은 저마다 하나의 태극(太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체의 천지의 체계 속에서도 그 자체로서의 운행이 있습니다. 천지 운행의 법칙과 비록 크게 관련이 있지만 작은 소아(小我)로서의 자주적인 능력도 있습니다. 계절적으로 보면 자(子)는 11월을 나타내며, 일양(一陽)이 처음 생겨나는 지뢰복(地雷復)괘입니다. 인체의 생명 입장에서 보면 양은 양의 에너지를 나타냅니다. 양의 에너지가 발동할 때가 바로 이른바 활자시(活子時)이지, 꼭 천지의 법칙에 부합해야 하는 고정적인 자시(子時)가 아닙니다. 이거야말로 바로 자체 소천지(小天地)의 운행 기점입니다. 한 남자 갓난아기가 요람에서 잠자고 있는 동안에 그 녀석이 깨어날 듯 말 듯한 그 찰나에는 성기가 갑자기 팽창하기 시작합니다. 노자가 말한 딱 그대로입니다, “암수의 합을 모르면서 생식기가 발작한다[不知牝牡之合而朘作]. 이 갓난아기는 성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녀의 일도 모릅니다. 이게 바로 그의 양의 에너지가 발기한 때로서 그 자신 체계 속의 활자시이기도 합니다. 침구든 점혈(點穴)이든 모두 기맥의 개합(開合)을 중요시 합니다. 기맥의 개합은 또 24절기에 따라서 변화합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오래된 일종의 이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역법을 오랜 세월동안 아직 교정하지 하지 않았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의 각도의 편차로 인해서, 수백 년 동안 계속 사용해오고 있는 24절기는 회의(懷疑)할만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만약 24절기의 천간지지에 따라서 침구하거나 혹은 기후법칙과 배합시키지 않으면, 그것이 불량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 않을지는 마땅히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침구는 활자시 상에서 발전해야 합니다. 만약 잠시 24절기를 포기한다면 그래도 되지만, 그러나 사계절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춘하추동 대기상(大氣象)의 변화 영향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다음 다시 개인의 활자시와 기경팔맥의 원리를 잡아 쥐고서 일련의 새로운 침구 법칙을 연구해낸다면, 이것은 인류에 대해 진정으로 중요하면서도 의의가 있는 공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도가의 활자시(活子時)의 학술 이론을 채용해야 중국 의학의 새로운 경지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우주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바에야 활자시의 방법은 바로 병자 위주로서 그 사람 자신의 기맥 운행을 이용하여서 대증(對症) 치료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오래된 발화관(拔火罐) 방법은 돌침법[砭] 치료 속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입니다. 지금은 일본에서 개선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정혈치료(凈血治療)ㆍ진공치료(眞空治療)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방법을 만약 혈도와 침구와 배합시킨다면 틀림없이 치료 상에서 새로운 경지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가와 의학의 배합은 정말로 대단히 위대합니다. 도가는 말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정신의 쇠약과 왕성을 비유하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은 기혈의 왕성과 쇠약을 비유한다.[日出沒, 比精神之衰旺. 月盈虧, 比氣血之盛衰]. 도가에서 말하는 후천 생명은 자시(子時)에서 시작되는데, 정기신(精氣神)의 도리를 알고 개인의 활자시를 융통성 있게 운용할 수 있게 되면 자기의 건강을 장악하는 것은 절대로 문제가 없습니다. 이 점은 거의 절대적으로 보증할 수 있습니다. 당신 자신의 활자시를 찾아 장악하라 활자시를 장악한다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활자시가 어느 때에 있는지 말하고 우리들 모두 자신의 활자시(活子時)를 찾고 나서 다시 얘기합시다. 만약 어린 아이라면 쉽게 보게 되는데, 우리가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성 기관이 팽창할 때가 활자시가 밖으로 드러난 현상입니다. 그 때에 만약 그의 뇌파를 측정해 본다면 틀림없이 다른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청년이라면 활자시에 틀림없이 이성(異性)의 애정 방면으로 발전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쉽게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활자시의 생명력을 장악하여 임맥ㆍ독맥의 기맥을 상승하도록 진동시켜서 생명력을 12경락으로 돌려 진입하도록 하지 않으면 후천의 욕구로 변해버립니다. 그러나 노년 사람들은 이미 성적 충동이 없다고 해서 설마 활자시가 없어져버렸을까요? 한 숨결이 남아있기만 하면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활자시가 있습니다. 노인이 깨어날 듯 말듯 한 그 시각이, 눈을 뜰 듯 말 듯 한 그 때가 바로 활자시입니다. 이때에 눈을 뜨지 말고 몽롱한 혼돈상태 같은 그런 황홀한 상태를 계속 유지합니다. 그것은 마치 홍소육(紅燒肉)을 좀 더 뜸을 들이면 그 고기 맛이 더욱 짙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년인의 활자시를 장악하는 방법입니다. 노인 친구 여러분, 얼른 시험해 보세요! 당신은 활자시를 알고 나면 장악하기가 쉬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당신이 정말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무 경솔함을 면하지 못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활자시를 틀어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한 가지의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어려움은 우리가 자기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감수(坎水)를 얘기했을 때에 마음속의 생각을 평정(平靜)하게 함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마음속의 생각은 평정하기 가장 어려운 하나의 일입니다. 마음속의 생각을 평정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활자시에서 노력하겠습니까! 도가에서는 ‘정(精)을 수련하여 기(氣)기로 변화시키고, 기를 수련하여 신(神)으로 변화시키고, 신을 수련하여 허(虛)로 돌아가게 한다[練精化氣, 練气化神, 練神還虛].’는 일련의 공부는 12~13년이 걸려야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사실상 20년이 지나도 완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들의, 항상 날뛰는 말[馬]과 같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원숭이 같은 마음[意馬心猿]을 평정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리와 생리는 서로 영향을 미친다 중의학 이론의 학문은 단지 병에만 주의를 기울이지, 사람이란 생각할 수 있으며 정감과 의식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 방면에서 본다면 서양의 의학도 아마 거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의학은 마땅히 의식 생각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규명해야 합니다. 비록 과학이 이미 우주에 대한 발전까지 도달했다고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회답할 방법이 없습니다. 중의학 이론은 심리 작용의 중요함을 강조하여 정신적 변화가 생리적 병리에 대해 미치는 영향의 중대성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양생편」중에서는 평소의 개성 수양에 많이 치중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심리 방면의 건강에 속합니다. 심리가 건강해야 비로소 생리의 건강을 촉진하거나 개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낙관을 유지하려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분노하면 간장을 상할 뿐만 아니라 비장과 위장을 상하게 하니, 모든 내장을 상하게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울도 만성적으로 오장을 손상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평일의 수양으로부터 노력 개선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함도 극단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전의 가정교육 중에서 어린이가 놀라지 않도록 치중함으로써 생리상으로 손상 받지 않게 했습니다. 두려워함은 정(精)을 상하게 할 수 있어서 탈(脫)이 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탈이란 대소변과 누정[脫精]을 포함합니다. 일반인들이 늘 말하는 한 마디인, ‘놀라서 쩔쩔맨다[屁滾尿流]’는 바로 탈의 도리입니다. 중의학을 연구하는 것은 번거로운데, 원인은 바로 관련이 있는, 의학적 이론과 경험의 학설 그리고 기록이 체계적인 귀납과 정리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학 관점 상에서 오장의 구성은 사람과 사람마다 모두 서로 같지 않습니다. 마치 사람들 마음이 다름은 각각 그 얼굴이 다름과 같은 이치입니다. 구성이 같지 않기 때문에 저마다의 의지ㆍ개성ㆍ정신이 모두 다르게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 방면에 관하여 과학적인 진일보한 증명이 필요하며, 현재는 감히 단언하지 못하고 겨우 의학상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심장이 큰 자는 근심이 상할 수 없으며 쉽게 사기(邪氣)를 느낍니다. 즉, 혈액 순환력이 강하며 담력이 크며 과감성이 크고 피부 결이 비교적 거칩니다. 심장의 위치가 비교적 높은 자는 세심하지 못하고 데면데면하며, 자존심이 세어서 진언(進言)하기 어렵습니다. 심장의 위치가 비교적 낮은 자는 풍한(風寒)에 상하기 쉬우며, 진언하기 쉽고, 속임을 당하기도 쉽습니다. 심장이 작은 자는 만족하기 쉽고 편안하기 쉽지만 근심이 많습니다. 피부는 적색을 띠며 피부 결이 가늡니다. 만약 오행과 의학적 이론의 연구를 불교 유식학 제8 아뢰야식과 배합한다면 일련의 진정한 의학 철학의 이론 구성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 일련의 이론은 형이하와 형이상을 연관시키고, 게다가 중국과 서양의 의약 기술을 합류시킨다면 반드시 의학계를 위해 신천지를 개창(開創)할 것입니다. 이상은 저자의 강의 본문 중에서 뽑아 온 글입니다. 이 책은 수행자를 위한 의학 입문서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에 기맥이 있는지도 모르고 일생을 살다 떠나갑니다. 그러니 건강관리가 근원적으로 될 리가 없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어느 저작에서 말하기를, 수행자가 기맥을 모르고 의약을 모른다면 수행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물론 마음의 이치를 모른다면 더더욱 그러겠지요. 수행이란 심신의 행위(行爲)를 바로잡으며[修正] 정화(淨化)해가는 과정인데 몸의 이치를 모른다면 자연히 생리상의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수행이 성취하지 못할 것은 자명합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수행자가 몸의 이치를 이해하는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중의의리여도가역경(中醫醫理與道家易經)』을 완역한 것입니다. 『도가 밀종과 동방신비학』의 「역자의 말」에서 이미 밝혔듯이 2009년 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강독 녹취했던 9강의 원고에, 2018년 12월 신판 중문 원서에 추가된 5강을 번역하고, 여기에 역자가 주석과 부록을 더하여서 이제 탈고하였습니다. 당시 청취 기록한 송연심 님과 이번 편집 작업에 도움을 준 정윤식 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호흡법문 핵심 강의

가장 좋은 수행 법문 우리는 보통 수십 년을 살면서, 낮에는 살아있고 밤에는 잠자고 호흡도 영원히 호흡하고 있다는 것만 알지 그 누가 자기의 생각을 관리한 적이 있을까요! 생각과 기(氣) 두 가지가 결합하지 않으면 그 두 줄기의 길은 나누어져 가게 됩니다. 마음과 기(氣)가 하나로 결합했을 때 당신은 비로소 중국의학이 말하는 신체의 12경맥(經脈)의 변화와 신체 내부의 모든 변화, 그리고 온갖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수행의 길을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기(氣)에 대한 인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수도(修道) 공부하려면서도 생명을 위해서 천하에서 가장 값싼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 엄마가 낳아준 코로 돈 한 푼 쓰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지만 하려고 하지 않으니 정말 천하의 바보입니다! 석가모니불이 제자들로 하여금 즉신성취(卽身成就) 하고 과위를 증득하도록 가르치고 이끌었던 수행 방법은 먼저 출입식(出入息)을 닦음으로부터 입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에게 안나반나를 닦으라고 하시며 당신에게 어떻게 호흡법을 닦는 것으로부터 착수하여 이 생명을 바꾸어 즉신성취(即身成就)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즉, 우리들의 육체인 몸을 이용하여 수행하면 직접 3계(三界)를 뛰어 넘어 성불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는 닦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어서[無修無證] 성공하여 여여부동(如如不動)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안나반나를 닦는 것은 먼저 당신의 4대를 전환변화[轉化]시키는 것인데, 먼저 풍대로부터 기(氣)로부터 당신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을 전변화시키고 습기(習氣)를 전환변화 시켜서, 세포신경이 하나하나마다 모두 전환변화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업보의 몸이 전환변화해서 욕계천의 모든 경계를 초월해야 비로소 선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간단명료하게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대원칙을 말해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안나반나를 잘 닦고 소승선관(小乘禪觀)에서부터 착수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불학에서 말하는 수증의 길의 하나의 과학체계로서, 생명 과학과 연계시켜보면 하나의 근본적인 도리입니다. 만약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모든 부처님 배우기는 헛되이 하는 것이며 모든 정좌도 헛되이 앉는 것입니다. 당신이 밀종이나 선종을 배우든 무슨 종을 배우든 모두 소용이 없습니다. 수행에서 왜 먼저 자기의 색신을 변화시켜야할까요? 부처님이 『능엄경』에서 최후에 하신 분부를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생인식유(生因識有)’, 우리의 생명이 투태(投胎)하여 올 때에는 12인연에서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생겨나고[無明緣行], ‘행’을 조건으로 ‘식’이 생겨나서[行緣識]. 심의식(心意識)인 ‘정신[名]과 물질[色]’이 결합하여, 즉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 5대(五大)와 결합하여 신체가 있게 됩니다. 두 번째 말은 ‘멸종색제(滅從色除)’인데, 색은 곧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으로 물리물질 생리상의 것입니다. 당신은 수행이 괘도에 오르기를 바라고 생명을 원래 있던 성불의 경계까지 회복하고자 한다면, 육체로부터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 다음은 ‘리즉돈오, 승오병소(理即頓悟, 乘悟併銷)’입니다. 불학의 도리를 여러분은 배워서 이해하는데, 이런 도리들은 돈오에 의지하여 단번에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승오병소(乘悟併銷)’입니다. 그 다음 두 마디는, ‘사비돈제(事非頓除)’, 공부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事)’가 바로 공부입니다. 당신이 도리를 알았다고 해서 색신을 곧 공(空)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신은 비울 수 있습니까? 알자마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차제진(因次第盡)’, 한 걸음 한 걸음 닦아가는 것입니다. 색신도 한 걸음 한 걸음 수행해야 비로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남회근 선생의 강의 중에서 뽑은 글입니다. 이 ‘호흡법문 핵심 강의’는 『남사소강호흡법문정요(南師所講呼吸法門精要)』를 완역한 것입니다. 『달마선경(達摩禪經)』상의 안나반나 법문을 위주로 한 이 강의와 서로 비교 연구할 수 있도록, 『청정도론(淸淨道論)』 중의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등도 역자가 보충하여 부록으로 실었습니다. 금년 2월 중순에 착수한 원고 정리 작업을 이제 마쳤습니다. 이번에도 기꺼이 저의 작업을 도와주신 정윤식(鄭允植)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비록 호흡법문 입문 소책자라고 하지만, 한 방울의 물이 거대한 바다를 간직하고 있음[滴水藏海]과 다름없습니다. 재가 수행자나 출가 수행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7년 3월 15일 신평리 심적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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