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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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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조선시기 충청우도 향촌사회사>

김영모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제로터리클럽 해외파견장학생으로 프랑스 니스(Nice) 대학교에서 박사과정(DEA)을 마친 후, 프랑스 소르본(Paris Sorbonne) 대학교에서 중세프랑스어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KAIST) 대우교수를 거쳐 현재 충남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중세프랑스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중세 즉 여말선초의 역사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고려말의 역사인물 김성우를 재조명한 『김성우 평전』을 출간한 바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출간 과정에서 향촌사회사의 정리의 필요성을 느껴 그동안 틈틈이 학회지에 글을 발표해왔다. 이 책은 저자가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조선시기 한국 향촌사회사의 일면이다.

저서
·『프랑스축제와 문화콘텐츠 카이에』(한국문화사, 2023)(공저)
·『프랑스문화 테마기행 카이에』 (한국문화사, 2018)(공저)
·『김성우(金成雨) 평전』 (궁미디어, 2017)
·『고대프랑스어연구』(만남, 2008)
·『고대프랑스어통사론연구』(만남, 2007) - 문화관광부 추천 우수학술도서
·『중세프랑스어 형태론연구』(만남, 2005)
·『중세프랑스어 연구』(만남, 2003) - 문화관광부 추천 우수학술도서
·『프랑스문화』(충남대출판부, 2002)(공저)
·『프랑스문화와 예술』(새길, 2002)(공저)

역서
·『민족학과 인류학 개론』(동문선, 2008)
·『바칼로레아 논술』 (이지북, 2006)
·『영화를 생각하다』(동문선, 2005)
·『새로운 충견들-프랑스 미디어의 허와 실』(동문선, 2005)
·『프랑스 지성인들의 12월』(동문선, 2004)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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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김성우 평전> - 2017년 12월  더보기

보령은 걸출한 역사인물과 유적이 많은 곳이다. 이 가운데 고려 말 보령지역에 침입한 왜구를 크게 물리쳐 보령을 수호한 김성우가 있다. 그리하여 보령의 곳곳에는 김성우가 왜구와 맞서 싸운 전적지가 산재해있고, 김성우에 대한 일화도 많이 전해오고 있다. 김성우는 고려 말 왜구를 토벌하라는 왕명을 받고 내려와 백성을 괴롭히던 왜구를 섬멸했으나 이성계의 조선 개창에 반대하여 보령시 청라면 스무티 고개에서 자결(自決)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고려충신(高麗忠臣)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김성우는 누란의 위기에서 보령의 땅과 백성을 지켜내 만세보령의 터전을 마련한 보령의 자랑스러운 역사인물로 평가된다. 이러한 김성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11월 1일 속칭 고려향(高麗鄕)으로 불리는 충남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발산 소재의 김성우 묘소에서는 군악대의 진혼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육군 제8361부대 장병들의 조총발사를 시작으로 김성우의 충절을 기리는 ‘고려충신 김성우 장군 추모제향’이 성대하게 열린다. 이날의 추모제향은 보령시가 주최하고 보령문화원이 주관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의 추모제향에는 보령시장을 비롯한 내외귀빈 및 많은 시민 학생 군인들이 참석하여 김성우의 충절(忠節)을 기린다. 무엇보다도 매년 11월 1일 김성우의 추모제향을 보령시와 보령문화원이 주최하고 주관한다는 것은 보령시민들이 김성우의 충절을 높이 기리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김성우가 왜구의 침구(侵寇)로부터 보령을 지켜낸 보령 최초의 역사인물임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따라서 매년 11월 1일 민·관·군이 하나가 되어 김성우의 추모제향을 성대하게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김성우에 대한 예우가 행해지는 한편 일부에서는 김성우가 전설속의 허구의 인물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도 있다. 왜냐하면 김성우의 행적이 관찬사서의 기록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김성우 사후 650 여년이 지나고 있는 오늘 날까지도 김성우의 보령전적은 계속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김성우의 보령전적이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못하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성우의 보령전적과 충절을 조명하는 작업은 그동안 조선 개창과 더불어 약 650여 년 동안 역사에 묻혀온 김성우를 재평가하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집필 동기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한 인물을 재평가하는 일이 참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지난 20여 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리면서 뼈저리게 절감했다. 많은 문제 중에서도 다음의 두 가지가 가장 큰 난제였다. 하나는 사서에 김성우의 행적이 서술되어있지 않아 김성우의 보령전적을 고증할 수 있는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김성우의 왜구토벌 행적이 조선전기의 금석문을 포함한 묘비명이나 조선후기 지리지 및 전적지명에 한정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의 무관심속에서 역사에 완전히 묻혀버린 김성우의 보령전적을 조명하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설정해야했다. 첫째, 각종 사료(史料)를 중심으로 김성우의 보령 토왜활동을 철저하게 고증하는 것이었고, 둘째, 자료의 검토를 통하여 고증된 김성우의 보령 토왜를 보령에 산재해있는 토왜의 유적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김성우의 보령전적에 관한 연구방향을 설정한 후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진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소재의 김성우 묘소와 그 주변을 답사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청라면은 김성우의 전적지명이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김성우의 묘소뿐만 아니라 김성우 관련 전적지명이 전승되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개경 출신으로 알려진 김성우의 묘소가 왜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발산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것이 김성우의 보령입성 및 보령전적을 고증하는 첫 번째 단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김성우의 토왜의 흔적이 배인 곳이라 생각되는 보령 곳곳을 찾아 누비는 전적지 답사가 시작되었다. 답사의 여정은 김성우 묘소를 출발하여 청라면, 대천 독정리, 주포면, 고정리 송도해안, 진당산, 오서산, 대천어항, 대천해수욕장, 월전리 해안, 무창포, 웅천만구, 마량진, 고남포(웅천읍), 남포읍성, 옥마산, 성주사를 거쳐 김성우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청라면의 의평리, 복병리, 성주산 장군봉으로 돌아오는 발품이었다. 하지만 왜구방어용 성(城)을 비롯하여 옛 치소(治所)나 읍성 등과 같은 유적이 대부분 훼손되거나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는 지경에 부닥치기 일쑤였다. 또한 그 많은 전설과 전적지명을 고증하는 현장의 채록 등도 어려웠지만 찾고 또 찾아야했던 보령 곳곳의 전적지 답사여행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 둘씩 김성우의 전적 자료가 되어 겹겹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렇게 지난 20여 년 동안 주말과 방학을 담보로 찾고 또 찾아 나선 김성우의 보령 전적지 답사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보령지역에 산재해있는 김성우와 관련된 전승설화 및 여러 전적지명은 김성우의 보령지역 왜구토벌을 고증하는 역사적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이 무엇보다도 그동안 김성우 사후 650여 년 동안 역사에 묻혀있던 김성우가 객관적으로 평가되어 올바른 역사 정립의 한 축, 말하자면 유구한 보령의 역사에서 잊혀진 여말선초의 보령 지역사 복원의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이 연구가 한 개인 또는 특정 문중의 차원을 넘어 보령의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책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제1장은 서론의 장으로 김성우의 토왜(討倭) 기록에 관한 검토이다. 이를 위해 먼저 김성우의 토왜에 관한 각종 지리지와 문집 등의 문헌사료와 금석문 등을 중심으로 김성우의 토왜 기록의 특징과 이들 사료의 의의를 살펴보았다. 이어서 사서 및 왜구침구에 관한 선행연구와 윤이·이초 사건(1390)을 비롯한 고려 말의 정치상황의 검토를 통하여 김성우가 왜 사서의 기록에서 빠져있는지 그 배경을 추적하였다. 제2장은 김성우의 선계와 행적에 관한 분석이다. 이 장에서는 김성우의 가계와 생애를 살펴봄으로써 보령과 전혀 연고가 없는 전라도 도만호 김성우가 어떻게 보령에 입향하게 되었으며, 그의 내외후손들이 보령에 세거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피었다. 제3장은 전적지를 중심으로 한 김성우의 보령 왜구토벌에 관한 분석이다. 특히 이 장에서는 고려 말 보령지방의 왜구침구 상황을 비롯하여 김성우의 보령입성 배경과 그 시기를 살펴보고 전적지의 지리·지형학적 분석을 통해 김성우의 보령 토왜의 의의를 살피었다. 제4장에서는 김성우의 보령 토왜에 대한 역사적 평가, 즉 김성우 사후 65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김성우가 불사이군의 고려충신이자 보령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결론으로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먼저 문학적 사고에서 벗어나 역사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본 연구의 방향타 역할을 해주신 충남대학교 최근묵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최근묵 교수님께서는 각 항의 제목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마치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하듯 예리한 지적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울러 김성우의 보령토왜의 학술적 고증을 위해 학술대회를 주최 및 주관해주신 박찬인 충남대 인문학연구원장님을 비롯하여 이재 국방문화재연구원장님과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님 그리고 학술발표 및 토론에 참여해주신 모든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또한 김성우의 보령전적지 관련 간접자료를 수집하도록 적극 협조해주신 육군 제8361 부대장님을 비롯한 장병들과 고려충신 김성우 장군 추숭회와 광산김씨판도판서공파 문중회에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그리고 올바른 충남향토사 정립을 위해 이 책의 출간을 선뜻 받아주시고 독려해주신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민경택, 김정태 전·현 원장님 그리고 양광준 과장님과 편집부 김보라 선생께도 감사드린다. 이 책의 집필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을 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기에 그 아쉬움이 더욱 크다. 이 모든 분들의 뜨거운 애정과 격려 그리고 절대적인 후원 속에서 이 작업이 완성되어 그동안 650여 년 동안 역사에 묻혀있던 김성우의 행적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어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다. 김성우의 보령전적 조명작업에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발간을 끝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신 어머님께 평생 져온 마음의 빚을 대신하여 이 책을 어머님 영전에 감히 바친다. 이 책의 출간은 사랑하는 가족의 배려와 협조가 있었기에 전적으로 가능하였다. 잊혀진 역사의 궤적을 찾기 위해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간 보령이었기에 그동안 가족에게 진 빚은 이루 다 말 할 수 없다. 오늘 이 순간까지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이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아내, 그리고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 사랑하는 아들 도익과 예쁜 딸 유진에게도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매 주말의 미안함을 이 책으로 대신하고 싶다.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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