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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율리우스 푸치크 (Julius Fucik)

국적:유럽 > 동유럽 > 체코

출생:1903년

사망:1943년

최근작
2012년 6월 <교수대의 비망록>

율리우스 푸치크(Julius Fucik)

체코의 언론인이자 작가, 문예평론가. 푸치크의 아버지는 철강 노동자이면서 아마추어 연극에 열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삼촌은 체코의 작곡가이며 지휘자로 유명한 동명의 율리우스 푸치크(1872~1916)이다. 열두 살에 신문 『슬라브인』을 직접 발행하고자 하는 등 푸치크는 일찍부터 정치와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1920년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에 가입했고 1921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창당하자 푸치크는 공산당 기관지 『루데 프라보』에 관여하며 문화면을 담당하는 한편, 문학 일간지 『크멘』, 문학비평가 F. X. 샬다가 발행하는 잡지 『트보르바』 등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푸치크는 1930년과 1934년 두 차례 소련을 방문했는데, 4개월에 걸친 첫 번째 방문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소련의 상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그리는 『내일이 벌써 어제인 땅에서』(1932)를 썼고, 두 번째 방문에서는 2년간 체류하며 공산당의 힘을 강화하는 데 보탬이 되는 다양한 글을 썼다. 한편 1934년 7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통이 된 직후에는 바바리아를 방문하여 『뮌헨으로 가는 길』을 썼다.

뮌헨 협정으로 1938년 9월부터 체코 공산당의 활동이 대대적으로 탄압받게 되자 푸치크는 무엇보다 민족과 역사를 강조하는 글들을 가명으로 신문에 게재했다. 1939년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자 지하로 잠적했으며 1941년 봄 공산당 중앙위원회 일원으로서 각종 전단을 작성하고 공산당 기관지 『루데 프라보』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기 위해 애썼다.

1942년 4월 24일 프라하에서 푸치크는 다른 여섯 동지들과 함께 게슈타포에 체포됐다. 그는 판크라츠 감옥에서 신문 받고 고문당하는 동안, 한 간수의 도움으로 얇은 담배종이에 『교수대의 비망록』을 썼다. 1943년 5월 독일로 끌려가 8월 25일 사형을 선고받았으며(나치 독일의 ‘피의 재판관’으로 악명이 높던 롤란트 프라이슬러가 판결했다) 9월 8일 처형됐다.

전쟁이 끝난 후 부인 아우구스티나 푸치크가 남편의 옥중수고를 모아 1947년 『교수대의 비망록』을 출간했고, 현재까지 9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가장 중요한 상징의 하나가 된 푸치크의 이름은 많은 사회주의 국가의 거리와 공원, 광장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사회주의 몰락 이후 대부분 예전 명칭으로 되돌아갔다. 1958년 이래 그가 처형당한 9월 8일은 ‘저널리스트 국제 연대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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