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4년생 93학번이다.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 동영상 등 디지털매체(媒體)를 매개체로 하여 생산·매매되는 이른바 디지털 문화콘텐츠(digital culturecontents)에 대한 향유가 90년대부터 시작되어서 2000년대를 기점으로 보편화하는 것을 몸소 체험한 세대다. 한때, 디지로그니, 다운시프트니 하며 디지털 매체 이전 시대의 매체의 귀환을 예언하는 서적들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디지털 매체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속에서 마이너리티로서의 아날로그 문화가 가지는 특별한 가치를 환기시키고자 한 것일 뿐이다.
디지털 문화콘텐츠 중에서도 특히 내 눈길을 잡아 끈 작품들은 고전서사문학의 서사적 맥락을 계승한 것 같이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현대문학 전공자들에게는 단지 고전문학의 패러디 작품으로만 규정되어 왔었던 작품들이 내 눈에는 고전서사문학의 현대적 이본으로 보였던 것이다.
고백하자면 이렇다. 이들 작품들이 단순히 기술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돌뱅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한국 고전서사문학사의 유구한 역사에 서사적 기원을 두고 있는 동시에, 미래에 또 다른 어떤 매체를 매개로 하여 등장할 서사문학 작품들에 대한 축적된 서사적 과거를 구성하는 존재들임을 학문적으로 규명해내야 할 학자적 사명감 같은 것이 본 연구를 시작하게 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