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든 것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 글은 하나의 날개며
그 날개를 저어 밤이면 꿈을 찾아간다
마음속에 달려드는 수많은 생각들을 이끌고
날아오르는 날개,
그러나 얼마 오르지 못해
주인은 힘을 잃고 날개를 젓지 못해
다시금 아래로 내려온다.
추락하는 기분으로
그 괴로움에 밤은 더욱 무겁게
나를 에워싼다.
그러나 어느새
다음날 밤이면
또 홀로 그 짓을 하곤 한다.
가볍게 날아가 이웃 산이나 들판의 나무 위에 앉아도 될 것을
왜 그렇게 눈부신 곳을 찾아가려 했는지
부질없던 지난 날이
생생히 와 박힌다
또 생각 난다
두려움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어두운 산속의 오솔길을 누비다가
내려오던 젊은 시간들
컴컴한 사막을 따라 밤새 걷는 자를 길게 묘사하려는
습작의 시간들
그러나 어느 하나 완성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의도는 옳았다 그 어떤 문학적 기교나 방법보다
문학은 정신의 훈련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정신을 단련치 않고
이 세상 사물의 무엇과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문학 속에는 정신적 유산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이땅에 있는 사물들은 선조들이 불러넣어준 작은 혼이 담겨져 있다.
그 혼들이 문학적 색체가 짙으면
그것이 바로 문학적 유산이다. 붉은 장미보다 진달래가 친근하고, 넓은 호수보다 조용한 산골이 익숙하듯이
나는 거기에 굶주렸던 것이다.
메마른 벌거숭이 산중턱에 모여땡볕을 쬐고있는 돌멩이들도
우리는 애정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땅을 살아가는 방법이요,
진솔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문학을 하고 싶다
이 땅에 살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과 친숙하기 위하여
나는 이제 내가 사는
작은 산모퉁이의 작은 돌 하나에다 짧은 기록을 했다
내가 해놓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언어에 대해
좀더 가까와진 느낌을
새기고 난 후에 얻게 되어 보람스러웠다
(2003년 10월 31일 알라딘에 보내주신 작가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