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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프랑수아 기조 (Francois Guizot)

출생:1787년

사망:1874년

최근작
2014년 9월 <유럽 문명의 역사>

프랑수아 기조(Francois Guizot)

19세기 프랑스 복고왕정기에 활동한 자유주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은행가들의 체제”, “납세자 정부”로 낙인이 찍힌 7월왕정의 상징적 인물인 기조는 보잘것없는 야심과 무분별한 정치적 안목을 지닌, 그리고 정치를 통해 사리사욕을 챙긴 인물로 남아 있다. 기조는 좌파에게는 부르주아지의 반동과 편협한 보수주의를 구현한 인물이었고, 부르주아지에게는 7월왕정의 몰락에 따른 정치적 희생양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50여 종이 넘는 기조의 저작은 세상의 기억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로 남게 되었다. 기조는 역사가로서 쥘 미슐레나 에드가르 키네, 오귀스탱 티에리에, 자유주의사상가로서는 뱅자맹 콩스탕과 알렉시 드 토크빌에, 또 정치가로서는 루이 아돌프 티에르에 가려진 채 남겨졌지만, 이러저러한 편견에 묻힌 채 기억에서 사라져도 무방한 인물은 결코 아니다. 기조는 19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50여 종이 넘는 저작을 남긴 생산적인 역사가 중 한 사람이다.

기조는 1812년 25세에 파리대학교 문과대학 근대사 주임교수로 임명된다. 1814년 같은 대학 피에르 폴 루아예 콜라르(프랑스의 정치가·철학자)의 추천으로 복고왕정하 내무부 비서직에 임명되면서 관료이자 정치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20년 과격 왕당파가 득세하자 공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대학으로 복귀했다가, 1822년 정부에 의해 강좌가 폐지되는 곡절을 겪은 후, 1828년 다시 대학에 복귀하게 된다. 이때 강의를 묶은 책이 바로 『유럽 문명의 역사』다. 1830년부터 내무장관과 교육장관을 지냈으며, 1840년 외무장관에 취임했다. 1847년 총리가 된 그는 1848년 2월혁명이 발발하면서 영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프랑스의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유럽 문명의 역사』 외 저작으로는 『프랑스사 소고』(1823), 『영국혁명사』(1826~1827), 『프랑스 문명사』(1830), 『대의정부 기원의 역사』(1851), 『회고록』(1858~1867, 전 8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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