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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다르씨 히베이루 (Darcy Rib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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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브라질 민족>

다르씨 히베이루(Darcy Ribeiro)

1922년 10월 브라질의 미나스 제라이스 주 몬찌스 끌라루스(Montes Claros)에서 출생하여 1997년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사망한 다르씨 히베이루(Darcy Ribeiro)는 인류학자요, 작가요 정치가로 활약했으며,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사상은 훗날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학자와 연구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브라질 최고 지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1946년 싸웅 빠울루 정치·사회과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수년 간(1947~1956) 인디오 보호 기구(Servico de Protecao aos Indios)에서 브라질 각 지역의 인디오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또한 인디오 박물관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원주민 인디오에 관한 다양한 연구, 조사활동을 펼치게 된다. 또한 그는 UNESCO와 공동으로 20세기 브라질 인디오 집단에 관한 문명화의 충격과 그 영향 등에 관해 연구하는 등 국제학회에서 브라질 인디오에 관한 연구의 대가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교육개혁자로서도 능력을 발휘하여 학교 교육의 개혁에 헌신하여 오늘날의 브라질리아 대학을 설립하여 초대 총장을 지냈으며 1961년에는 자니우 꽈드루스 정부 하에서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어 주엉 굴라르 대통령 직속 내각 수반을 역임하면서 교육에 대한 구조적인 개혁을 주도했지만 1964년 군부 쿠데타의 발발로 모든 정치적 권리가 박탈된 채 해외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해외망명 중에도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국가, 칠레와 페루, 베네수엘라와 멕시코 그리고 우루과이 등지에서 새로운 대학 프로젝트라는 기치 하에 이들 지역의 대학 개혁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당시 그는 문명 인류학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5권의 역작 <문명화의 과정>(1968), <아메리카와 문명화>(1970), <인디오와 문명화>(1970), <브라질인: 브라질의 이론>(1972), <라틴아메리카의 딜레마>(1978)를 발표하여 아메리카 민족의 불평등 발전의 원인을 설파했는데 이 책들은 출간 이후 브라질 뿐 아니라 전 세계 지성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동시에 많은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또한 망명 시절 자신의 처녀 소설집 <마이라>(Maira, 1976)와 <물루>(O Mulo, 1981)를 발표하여 소설가로도 활약했으며 훗날 <야생의 유토피아>(Utopia Selvagem, 1982)와 <미구>(Migo, 1988)라는 작품을 추가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의 그의 명성을 더욱 높이게 된다.

1976년 브라질로 귀국한 그는 1980년에 정치적으로 사면되어 교육과 정치에 전념하여 히우 지 자네이루 부지사와 주정부 산하 교육위원회의 수장으로 활동하여 공립교육과 유아 및 초등교육의 개혁에 헌신했다. 그는 또한 1990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다양한 제도 개혁에 앞장서 정치가로서도 진면목을 보였으며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은 그는 소르본느 대학교와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그리고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그는 1995년 <브라질 민족: 브라질의 형성과 의미>라는 최고의 역작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앞서 발표된 문명 인류학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한 5권의 역작을 마감하는 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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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브라질 민족> - 2016년 8월  더보기

이 책을 쓰는 것은 지금까지 내게 부여된 그 어떤 일보다도 가장 커다란 도전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가장 큰 도전으로 남아있다. 나는 이 책을 30년 이상이나 쉼 없이 쓰고 또 쓰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최악인 것은 내가 다른 일에 매달려 이 책을 마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더 좌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언제나 뒷전에 남겨둔 이 글쓰기 작업에, 나는 결코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이 일을 끝내는 데 그 무엇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나는 세 번째로 다시 쓰고 있다. 처음은 내가 글쓰기를 마친 그 때였고, 두 번째 다시 쓸 때는 논리적이지 못한 수많은 에피소드와 내용을 수정하고 책 전체를 다시 썼다. 그런데 최근 나는, 이 책을 끝내지도 못한 채 죽음이 임박한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조바심과 고민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도망쳐 나와, 살기 위해 그리고 이 책을 쓰기 위해 이곳 마리까(Marica)로 왔다. 만일 당신이 오늘 활자화된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다면 그것은 드디어 내가 이 책을 다 쓰고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리라. 아! 그렇게 되기를…. 나는 지금 막 마지막 구절까지 다 읽었다. 내가 페루(Peru)에 머물 때 쓴 원고는 그 때는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땐 이 책이 훌륭했다. 그랬기에 출판될 수 있었으며, 여전히 도전적인 자세와 내용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던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은 내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으며, 더 훌륭한 책으로 모양을 갖추기 위해 다시 보고 다시 수정하게끔 내게 기약하고 있었다. 어떠한 책도 완성되는 법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이 책을 계속 쓰고 또 보고 있는 것처럼 모든 저자는 끝없이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그 책에 싫증이 나겠지만 그때 가서야 책은 비로소 끝을 맺게 되는 법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 책에서 도망쳐 숱한 세월 동안 무수히 다양한 다른 일에 빠져 있다 이제야 다시 손을 보게 된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으며 또 다른 과제가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과제 중에는, 나를 문학적으로 만들어 20여 년 동안 내가 시도하고자 한 흥미로운 소설 쓰기에 빠져들어 네 편의 소설을 출간하게 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오래 돌아오는 여행 동안 나는 이곳 브라질에서 그리고 유배지에서 매우 정치적으로 변해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모두 맛보았으며, 그 일은 내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포함해 다양하고 고된 일을 겪게 만들었다. 그 모든 세월 동안 이 책은 여기 이곳 서랍 속에서 퇴색한 채로 오늘까지 머물러 있었다. 이제야 나는 마리까(Marica) 이곳 해변에 무수히 많은 원고 더미 가방을 갖고 온 것이다. 잘 정리되지 않아 책으로 출판되지는 않은 형태의 원고를 내가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 교육부 여론조사 기구인 브라질 교육조사센터(Centro Brasileiro de Pesquisas Educacionais)에서 광범위한 사회-인류학적 조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다. 당시 나는 이 책을, 농촌사회와 도시사회 그리고 구시대와 현대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브라질 전체 사회의 모습을 조망해본다는 야심을 갖고 시작한 연구조사의 총체적인 결과로 인식했는데, 그때는 혁명적 사회변화 움직임이 막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당시 브라질리아 연방대학교(Universidade de Brasilia)를 설립하는 계획을 맡으면서 책 쓰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후 내게 국가개혁운동을 주도하라는 임무와 함께 직책이 주어져 주엉 굴라르(Joao Goulart) 대통령 정부에서 교육부장관과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모든 정치적 행동의 결과는 우루과이에서의 내 첫 번째 유배로 나타났다. 그곳에서 약 2년간의 강제노동 기간이 지난 후 4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의 첫 번째 부분이 형체를 갖추었다. 그것은 내가 주인공으로 참여한 브라질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불러온 내 인생역정의 결과였다. 그것은 또한 군사혁명에 패배한 바로 우리 자신을 만든 이 사회에서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을 추구하고자 세상 밑바닥에서 뚫고 나온 동맥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째서 우리를 지배계급이 또다시 굴복시켰는가? 사실 이 책을 쓰기 위해 나는 그러한 연구조사 결과로 나타난 책들을 거의 탐독했다. 그러려면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텍스트를 손에 넣어야 했으며, 이는 몬테비데오 시립도서관 덕택이었음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내가 책을 처음 완성하고 읽어본 뒤 스스로 비평했을 때는, 내가 과연 무엇을 말했는지 또 과거에 말하지 못한 것조차 왜 말하지 못했는지 고민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왜 브라질이 아직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가?”라는 오랫동안 내가 스스로 되뇌어온 질문에 결론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때의 내 느낌은 우리의 역사적인 경험에 근거하고 우리 자신의 언어로 설명 가능한 일반적인 이론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론적 틀은 모두 유럽중심적 이론에서 유래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것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끔 만드는 데 무력했던 것이다. 우리의 과거는 이방인의 과거가 아니었으며, 우리의 현재는 그들의 과거가 또한 아니었으며 우리의 미래는 공동의 미래가 아니다. 나는 이후 오랜 시간 내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혼란 속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그 책을 수정하면서 이론을 제시하는 서론 부분이 전체 책 내용으로 바뀌었다. 브라질에 대한 연구에서 이론은 전체 인류 역사에서 브라질을 재위치시키기 위해 필요했고, 이는 나로 하여금 모든 역사 이론을 재고하게끔 했다. 그러나 주어진 대안들은 무력할 뿐이었다. 아마도 그 대안들은 유럽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견해로서 쓰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동양인의 역사를, 아랍세계의 역사를 그리고 작게는 우리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 대안 중 기원(Origens) 문제에 있어서는 엥겔스 그리고 형성(Formacoes) 문제에 있어서는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이론들은 상충하면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문명의 과정>(O Processo Civilizatorio)이라는 책은 내가 쓴 책 중에서 내 목소리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다. 그것은 이미 서구적 범주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없이 반복되어 설명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믿고 싶다. 그런데 너무나도 야심 찬 책을 쓴다는 대담함은 나로 하여금 일종의 열등감으로 가득 찬 환자의 원한 같은 감정을 들게 했으며, 그 이유는 브라질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이 논쟁에 들어갈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책이 아니기에 공산주의자의 억압을 겪었고 또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책이라고 우파 학자들의 억압도 겪었다. 그러나 같은 주제에 관해 나온 최근의 또 다른 책들보다도 더 많이 출판되고 읽혀 왔기에 이로써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의 과정>은 충분하지 않았다. 1만 년 역사에 주어지는 설명으로는 너무나 광범위하다. 일반적인 대답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역사적 역할에 빈약한 윤곽만을 그려줄 뿐이다. 그 대답은 일반적으로 이 주제를 다룬 내용과 함께 고전적인 텍스트에 대한 대안으로서 주어질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은 역사와 새로운 문명의 과정 그리고 새로운 사회문화적 형성의 원동력으로서 새로운 기술적 혁명을 제안함으로써 자유롭기보다는 더 사실적이고 더 설명적인 개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 역사의 인과관계를 고려하는 데는 불충분하지만, 비교론적이며 이론적인 목적에 유용한 설명을 낳으면서 가장 일반적인 모양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나는 더 근원적인 설명을 추구하기 위해 오랜 작업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내게 새로이 주어진 주제는 불평등한 발전의 원인을 설명하는 노력의 하나로 아메리카인 형성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책-<아메리카와 문명>(As Americas e a Civilizacao)-으로 아메리카 역사의 500년을 1만 년의 전체 역사의 규모로 뛰어넘어 보았다. 이 책은 출판 이후 인류학자들보다 역사가와 철학자들에게 더 많이 읽히고 번역되고 논의되었다. 그들은 저항하기 어려운 야만적 논리의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고 이상하고 탈선한 모든 행위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문명의 인류학을 행하면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자신들의 힘을 쓰는 것을 아연실색하며 부정하면서 주어진 이상한 주제에 자신들의 재능을 다 쏟고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와 문명>을 끝내고 난 뒤 나는 내가 추구하고자 한 것과 관련해 내가 얻은 그 무엇의 한계를 보고 말았다. 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이해하게끔 도와주지만, 그러나 명백하게도 우리의 야망을 충족하는 데는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새롭고 동시대적인 단계에서 우리가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가공되지 않은 것보다는 덜 유럽중심적인 개요의 자리를 차지하는 긴급히 필요한 이론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이론은 사회계급의 경험적 기초에 근거한 것인데, 계급이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 사회에 어떻게 드러났는지 보는 것으로, 유럽과 북미 사회에서 마르크스적 개요가 받아들여졌듯이, 계급이 우리의 이베로-라틴적 현실 앞에서 유럽인 이민자들에 의해 어떤 형태로 눈에 보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이론이다. 여기서는 봉건 귀족주의와 경쟁하는 진보주의적 부르주아도, 혁명적 경향에 의해 정화된 프롤레타리아도 없지만 그러나 계급투쟁 성격은 있으며 규명하고 특징짓도록 가장된 적대자적 블록은 존재했다. 우리에게는 똑같이, 보수주의든, 재정리주의든, 폭동주의든, 정치적 호전성과 권력 형태에 대한 유형 연구가 부족했다. 모든 정치과학의 유형 연구는 해석된 것보다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철학적 억측이나 의미 없는 분석에 의해 이루어졌다.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급진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심지어는 사회, 정치적 혁명에 대해 효율적으로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맥락에서 구체적인 정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맥락에서는 그러한 표현들이 보다 다른 주체와 그리고 보다 다른 단절된 이념에 적용되는 모호성만큼이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재구성이라는 심오한 움직임을 위해 의식을 동원하면서 박식한 지식은 너무나도 거짓으로 실제를 보여주고, 대중적인 몰이해가 더해져, 상반되게 비평적 차원을 얻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능력이 있는 문화이론은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새로운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보다 다른 전통을 혼합하는 대중적 창조성 앞에서 유럽적 관습에 종속되어 이식된 우리의 뛰어난(박식한) 문화의 형태와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러한 필요성을 고려하기 위해 나는 <라틴아메리카의 딜레마>(O Dilema da America Latina)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나는 새로운 사회계급과 정치적 역할의 개요를, 우리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일치하도록 존재하라는 북미의 헤게모니적 압력 아래 놓고서 제안했다. 순수하게 교육적인 관점에서 나는 네 번째 책 <브라질 사람들: 브라질의 이론>(Os brasileiros: Teoria do Brasil)을 완성하기 위해 이 세 권의 책에서 발전된 이론적 틀을 요약했다. 이 책은 내가 시사했던 문화이론을 새롭게 제시했다. 나는 그 이론을, 라틴아메리카적인 차원을 다루면서 그차원 내의 너무도 많은 주제 중 하나로 다루지 않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의 딜레마>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다섯 번째 책인 <인디오와 문명>(Os indios e a civilizacao)은 앞선 네 권의 책과 함께 과거 실행했던 내 문명 인류학 연구의 완결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이론적 틀은 여전히 인종적 변형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종적 변형 개념이란 사람들이 태어나, 살면서 변형되고 그리고 죽는 과정을 통해 인종적 변형이 이루어진다는 개념이다. 거의 2천 페이지에 달하는 그 다섯 권의 책이 쓰인 배경을 설명한 이 서문에서,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이 책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모든 책은 브라질이라는 나라를 설명할 이론적 근거를 추구한 결과였다고 말하고자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페루에 있을 때 내 이론적 연구에 기초하여 이 책을 다시 쓰려고 수없이 시도했다. 그 몇 해 전 몸에 생긴 병을 돌보며 몇 달 동안 다시 쓰려 애써봐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삶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한쪽 폐에 암 덩어리가 생겨 그것을 떼어버려야만 했다. 그래서 유배기간 동안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정치적 감각의 촉광을 되살리면서 나는 브라질로 돌아왔다. 그 모든 것은 아니 그보다 더한 모든 것은, 내가 점점 죽음의 길로 가까이 가고 있으며 병이 나를 노예처럼 구속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면서부터, 내가 원했던 작업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감이 되어 나를 짓누른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 인류학적인 내용보다도 브라질을 더 새롭게 이해하려는 내 투쟁이 담긴 이 책을 다시금 써야 한다는 새로운 죽음의 압박감이 나를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착각은 하지 말지어다. 인류학자이기 이전에 나는 신념 있고 정치적인 사람이라 도덕적인 이유와 깊은 애국심의 발로로 정치와 학문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독자들이여, 이 책에서 심오한 분석을 구하지 말지어다. 이 책은 우리의 조국 브라질을 우리 스스로 찾기를 희망하고 우리의 생각과 정신 위에서 영원히 흐르기를 희망하는 참여자로서의 책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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