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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송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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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해외문견록>

송정규

자는 문경(文卿)·유문(幼文), 호는 이호(梨湖)·우수(迂叟)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그는 조광조와 정치적 견해를 같이했던 5대조인 송호지(宋好智, 1474~1526)부터 소북계 정치인이었던 증조부 송일(宋馹, 1557~1640), 경기관찰사를 지낸 아버지 송시길(宋時吉, 1597~1656)로 이어지는 명망 있는 가문의 후예다. 송정규는 1688년 황해도 장연 현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벼슬에 나서서 2년 뒤 사간원 정원을, 1694년 시강원 사서를 지내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1701년 고부단사로 연경에 다녀왔고, 몇몇 고을의 지방관을 거쳐 1704년 제주목사에 제수되었다. 송정규는 평생 관료로 지냈으나 학문을 향한 열정이 매우 커서 제자백가를 섭렵함은 물론 실용적 학문과 산학, 의약에도 정통했다고 한다. 송정규는 학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으나 제주도의 현지 사정을 존중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를 조성하고자 했으며, 목장과 보를 확충해 군비를 갖추고자 했다. 종조카 송질(宋瓆)은 〈행장(行狀)〉에서 송정규의 치적을 정리하며 그가 탐라지와 탐라지도를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일반적인 지리지로 추정되는 탐라지는 현재 전하지 않으므로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해외문견록》이 탐라지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한중일을 누비며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던 조선 초기와 달리, 송정규가 살았던 17세기는 외부에 대한 관심이 저조했던 때였다. 실학파는 당대의 폐쇄적인 경향에 문제제기하며 중국과 일본과 서양의 학술 및 세계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성호(星湖)-연암(燕巖)-다산(茶山)으로 이어졌던 실학파의 흐름보다 앞선 세대인 송정규는 《해외문견록》에 드러난 실용적이고 경세적인 성향으로 말미암아 선구적으로 문제제기를 했고, 막 태동하기 시작한 실학이라는 시대정신에 공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송정규가 《해외문견록》에 그려 놓았던 ‘해양의 시대’ 속 조선이라는 큰 그림은 그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이고 19세기까지 실현되지 않았으나, 천리 길을 너무도 쉽게 오가며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은 그가 전망하고 대비하고자 한 그 그림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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