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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이태형

최근작
2023년 12월 <안녕, 지금 이 순간>

이태형

2012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집 『그랑기뇰』, 산문집 『혼자여서, 혼자여도 괜찮아』(공저) 등이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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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그랑기뇰> - 2017년 1월  더보기

ℵ1 어제 저녁 우리는 어느 이름 모를 섬에서 헤매고 있었다. 우리는 보다 멀리 가기 위해 차를 빌려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은 이곳에서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고 바다로 나갔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소금기가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약간의 고민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름조차 서로 묻지 않은 물고기들과 바다에서 한참을 놀았고, 밤이 되자 우리는 그 물고기들이 먼저 잡아 놓은 ‘무한 호텔’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허름한 숙소에 묵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지금도 그 방의 번호가 ℵ27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놀았던 물고기들은 ℵ29에 묵었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물고기들의 밤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는 끝없는 복도를 오랫동안 헤매었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마치 복도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듯 태연히 옆의 문을 열고 우리의 밤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우리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어제와 달리 우리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걸려올 리 없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목소리는 우리에게 휴가가 어제까지였다는 것을 알려 주었고, 우리는 모든 돈과 원고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오늘의 출근과 내일의 마감을 모두 잃어버린 우리는 서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목적 없이 뛰기 시작했다. 어느덧 바다는 사라졌고,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안도했다. ℵ2 너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을 죽였고, 한 낮에 잠을 청했다. 꿈속의 꿈에서 소년이 너를 비웃었고, 너는 소년을 꿈꾸길 멈췄다. 소년은 사라졌고, 이제 지금까지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네 여행은 머릿속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했고, 너는 찰나도 앞으로 가지 못했다. 너는 아직도 너를 어딘가 존재했던 탄광촌의 소년으로 기억하지만, 남들에게 그런 네 모습은 전혀 남아있지 못했다. ℵ3 소년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아무도 소년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소년 역시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온전히 홀로 존재했기에 소년은 완성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남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카트리지를 갈아 끼우면 다른 게임이 실행되듯, 그때그때 다른 사람으로 살았다. 소년은 각각의 상황마다 나름 연기를 잘 해냈지만, 그럴수록 더욱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소년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소년은 잠이 들었고, 그 잠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시간은 흐르거나 흐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소년은 자신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조금은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 행복은 진짜였을까. 잠든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조차도 연기였을지 모른다. ℵ4 마지막으로, 이 끝나지 않는 소년의 꿈을 함께 봐준 당신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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