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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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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일곱 가지 능력 진리>

이윤호

배재 중·고등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82년에 도미(渡美)하여 미국 서남 침례신학대학원과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신학 및 선교학 분야의 두 개의 석사 학위 및 선교신학 박사 학위(Ph.D.)를 각각 취득했다. 가톨릭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상담심리석사(영성상담 전공) 학위를 받은 후,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담심리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상담 전공 박사 학위(Ph.D.)를 취득하였다.
박사 학위(Ph.D.) 논문으로는 “(인도네시아) 자바인의 ‘능력 지향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본 영적 능력과 교회 성장(Spiritual Power and Church Growth in light of the Javanese “Power-Oriented” Worldview)”이 있으며, 인도네시아에서 교수 선교사로 사역하였다(1988-1999). 내적 치유와 축귀 사역의 세계적 권위자인 찰스 크래프트(Charles Kraft) 박사의 지도하에 전인 치유와 치유 선교를 연구하였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상담 모델에 관한 사례 연구”라는 또 다른 박사 학위(Ph.D.) 논문은 전문 치유상담가로 오랫동안 사역했던 경험에서 나온 결실로 여겨진다.
전 꿈의 축제교회의 담임 목사이며, 치유 상담, 축귀 사역 및 내적 치유 사역자를 훈련하는 두나미스 영성치유 상담 연구원과 기독교 치유상담원 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영성 상담, 치유 및 성령 사역 분야의 실천신학자로서 이론 개발 및 실제 사역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각종 영성 세미나 인도 및 능력 변화 동산(전인치유 수양회)을 통해 초교파적으로 ‘국민 목회자(國民 牧會者)’로서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이윤호 박사는 1994년부터 26년 이상 한국, 미국 및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치유 부흥회 강사와 전문치유 상담가로서 일해 왔다. 지은이는 또한 ‘풋풋한 이웃집 아저씨’로서 독자들과 대화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임상치유 상담가이다. 고 주기철 목사의 친손녀(이화여대 및 미국 케이트웨이/골든게이트 침례신학대학원)로서 기독교 치유상담원 실장 주미혜 사모 역시 순교자적 영성으로 전인치유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저서
『내 안의 적을 추방하라』, 『내 이름으로 사악한 적을 추방하라』, 『가계적 속박의 사슬을 끊어라』, 『가계의 복과 저주 전쟁에서 승리하라』, 『이제야 치유가 보이네』, 『치유 묵상 성경』, 『가정 내력을 알면 인생의 성공이 보인다』, 『파워 영성의 12가지 원리』, 『축복의 문을 여는 능력 진리』, 『파워 영성의 12가지 원리』(오디오 북), 『인생 대역전』(오디오 북)

역서
『깊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신자가 소유한 놀라운 권세』, 『나도 교회 성장을 진단할 수 있다』, 『자이언트 예수』, 『두 시간의 내적치유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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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일곱 가지 능력 진리> - 2022년 10월  더보기

<들어가는 말> 상식이 기적인가? 기적이 상식인가? 기적은 많은 신자에게 어느새 매우 낯선 단어가 되어 버렸다. 특히 복음주의적 말씀파 신자들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더구나 이런 부류의 신자들은 기적을 체험했다고 간증하거나 강조하는 신자들을 비정상적이거나 광신자로 취급하곤 한다. 요즘 신세대의 언어를 빌리자면, 그들의 눈에는 후자의 신자들은 ‘저급하기’ 그지없다. 복음주의적 말씀파 신자들은 후자의 신자들을 표적이나 따라다니는 이상한 신자들로 여긴다. 하지만 이런 신자들도 불치병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자신의 신학(?)을 바꿔 능력자들을 찾아다닌다. 반면에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심지어 자신들이 평소 가졌던 태도를 고수하며 위기의 상황을 기꺼이 수용하는 신자들을 목격하였다. 이런 신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고난을 잘 감당했다고 간증한다. 나 자신도 오랫동안 복음주의적 말씀파 신자로서 이런 태도를 견지해 왔었다. 그런데 나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수학 시절 한 놀라운 사건을 통해 큰 변화를 경험했다. 1986년 8월에 피터 와그너 박사의 교회성장학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의 중 휴식 시간에 한 학생이 와그너 박사에게 다가와 자신의 질병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와그너 박사는 그 학생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허리가 아프다고 대답하였다. 그때 와그너 박사는 그 학생에게 언제부터 어떻게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느냐고 물었다. 그 후, 그 학생을 의자에 앉게 하였다. 그리고 난 후, 양쪽 다리를 뻗게 한 후, 양쪽 다리의 길이를 재어 보았다.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와 비교해 약 5센티미터가량 짧았다. 와그너 박사는 아주 짧게 기도하였으나, 매우 권세 있는 명령의 기도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오른쪽 다리는 지금 자랄지어다!” 그런데, 와그너 박사의 기도 후 짧은 오른쪽 다리는 뻗어 나와 왼쪽 다리의 길이와 같게 되었다. 나의 생애 가운데서 처음 목격한 “신기한” 사건이었다. 나는 신학교 교수가 그와 같이 권세 있게 기도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 후, 나는 치유 사역을 포함한 기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선교사 후보생으로서 선교사 출신의 교수들로부터 효과적인 선교 사역을 위해 기적을 통한 ‘눈에 보이는 복음’이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마 11:4; 행 8:6; 고전 2:4,5 참조). 특히, 지난 7년간 인도네시아에서 회교 선교를 하면서 “보는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사실상 초대 교인들에게 기적은 상식이 되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신자들의 사역을 기록한 사도행전은 치유, 축귀, 능력 전도 등 수많은 기적의 사건들로 꽉 차 있다. 사도행전은 사실상 성령행전이다. 사도행전은 또한 사도들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모든 성도의 기적 행전이다. 초대 교회는 성령 강림과 더불어 탄생하였다.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임했던 성령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 2:17-18; 욜 2:28-32). 사도행전의 기적은 사실상 예수님의 기적 사역의 연장인 동시에 확장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miracles, wonders and signs)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행 2:22; 행 10:38; 요 12:12-14; 히 2:4). 권능과 기사와 표적 이 세 단어를 주목해 보라. 기사와 표적이 사도들에 의해 많이 나타났다(행 2:43, 5:12 참조).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기사와 표적과 능력은 사도됨의 기본적 표식이었다.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 그러나 기사와 표적은 사도들의 전유물이 아닌 성령 충만한 모든 신자에 의해서도 행해졌다. 예를 들면, 스데반은 사도가 아닌, 평신도였지만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행 6:8).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스데반이 행한 기사와 표적이 너무 많아 구체적 사례를 아마도 생략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기사와 표적을 행한 다른 평신도인 빌립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 사례를 기술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행 8:7-8). 사실상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은 복음 전도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16:17-18 참조).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 2:4). 사실상 기적은 초대 교인들에게 상식이 되었다. 왜 기적적 표적(miraculous signs)인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하나님의 기사(wonders)와 더불어 “기적적 표적(miraculous signs)”을 함께 기록했다(행 2:43, 4:30, 5:12, 6:8, 14:3, 15:12). 누가는 또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때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고 진술한다.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miraculous signs)을 행하였느니라”(행 7:36). 기적적 표적은 이중적 목적을 갖는다. 첫 번째 기적의 목적은 위기와 절박한 필요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방법으로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 기적의 목적은 기적의 수혜자들 혹은 참관자들, 심지어 하나님의 기적적 심판의 대상자들에게도 기적 배후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표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세와 아론과 애굽 왕에게 보여 주셨다(출 4:9, 17, 28, 30, 7:3, 10:1-2). 하나님은 또한 표적을 통해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비신자들에게, 혹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헤롯과 거짓 선지자 바예수와 같은 하나님의 기적적 심판의 대상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셨다. 요한복음은 표적 신학(sign theology)을 다룬 책으로 일컬어진다. 이는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보여주는 일곱 가지 표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요 2:1-11, 4:46-54, 5:1-18, 6:5-14, 6:16-21, 9:1-7, 11:1-45).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공저자 헨리 블랙커비(Henry Blackaby)와 클로드 킹(Claude King)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적은 “하나님의 크기에 해당하는 일(God-Sized Work)”이다. 이론적으로 우리가 경험한 기적 수준에 따라 우리가 주관적으로 믿는 하나님의 크기가 결정될 수 있다. 우리가 큰 기적을 경험하면 할수록 더욱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크기에 해당되는 일(God-Sized Work)을 당신의 삶을 통해 행하시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1 당신은 아브라함처럼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롬 4:17-21). 만약 당신이 그렇게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당신은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크기에 적합한 기적”을 경험했는가? 만약 당신이 그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너무 작지 않은가(Is Your God Too Small)?”라고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상식이 기적이 되었는가? 전술한 바와 같이, 나 자신도 오랫동안 상식이 기적이 되는 삶을 살았었다. 왜 이런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을까? 나는 네 가지 이유를 조명해 보고 싶다. 첫째, 신학교와 교회에서 암암리에 가르친 기적(은사) 종식론(Cessationism)의 영향 때문이다.2 기적(은사) 종식자들은 치유를 포함한 기적의 시대가 거의 끝났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어쩌다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기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3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목적을 예수님의 신성과 예수님이 선포한 말씀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제한했다. 그들은 또한 사도들이 행한 기적의 목적이 사도권의 확립과 사도들이 선포한 말씀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했다. 그들은 사도 시대가 끝나고 정경이 완성됨에 따라 더 이상 기적이 필요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술한 기적의 목적 중 두 번째 목적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첫 번째 목적을 간과했다. 그러나 실상은 두 가지 기적의 목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적(은사) 종식론은 교회사를 통해 혹은 선교지에서 발생했던, 현재도 많은 신자에 의해 체험했던 수많은 기적 사례를 통해 수용될 수 없다. 둘째, 전술한 기적(은사) 종식론은 기적을 도외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기적에 대한 성경 구절을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어떤 신자들은 모든 기적을 사탄의 위조된 장난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애용하는 성경 구절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8-10절의 말씀이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런 태도를 가진 신자들은 일종의 “기적 공포증(miracle phobia)” 질병에 감염되기 쉽다. 이런 신자들은 모든 기적의 원천을 사탄이라고 단정하는 환원주의(reductionism)에 쉽게 빠진다. 그러나 기적의 원천은 하나님 혹은 사탄이다(물론 사탄의 최초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따라서 기적에는 세 가지 개연성이 존재한다. 기적은 하나님으로부터, 사탄으로부터, 혹은 하나님과 사탄의 혼합된 것으로도 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초자연적 현상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현대 교회와 신자들은 “거룩한 불만(holy discontent)”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고 명령하며 그를 치유했다. 이와 반대로, 현대 교회는 “금”과 “은”은 있으나,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상실했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교황과 토마스 아퀴나스 간의 대화에 잘 나타나 있다. 라테란 성당 문으로 보물을 가득 담은 자루들이 옮겨질 때 교황 이노센트 4세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교황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보게나, 이젠 교회가 ‘금과 은 없어도’란 말을 하는 것도 다 지난 일이야.” 그러자 아퀴나스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교회가 앉은뱅이에게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할 수 있는 때도 다 지났습니다.” 이런 현상이 우리 교회와 신자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문제와 위기가 없는 교인들이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라오디게아 교회로 전락해 버린 교회와 신자들에게 기적이 설 자리는 별로 없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7-18).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의 수많은 기적이 선진국보다는 중국,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수많은 개발 도상국에서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넷째, 사역의 현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역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는 능력 사역에 헌신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5). 제자들도 현장 사역에서 치유와 축귀와 같은 능력 사역을 행해야만 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1,7-8). 사도 바울은 선교 사역 현장에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 기적 사역을 몸소 실천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by the power of signs and miracles, through the power of the Spirit)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8-19).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with a demonstration of the Spirit’s power)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만약 당신이 현재 사역 현장에 투입되어 있다면, 빈곤, 질병, 무지, 상처투성이, 역기능 가정, 가계의 부정적 대물림, 귀신들림 등의 총체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개척 교회 목사들, 선교사들, 혹은 상담자들에게 물어보라. 이런 상황을 치유 사역에 적용해 보자. 무력한 교회와 신자들은 몸의 질병을 가진 환자들은 병원에, 마음과 가정 문제를 가진 내담자들은 세상 상담자들에게, 귀신들린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혹은 무당이나 승려들에게 가는 것을 방임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치유 사역의 선구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의 학문적 및 영적 멘토가 되어준 찰스 크래프트(Charles Kraft) 박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 아내 주미혜 사모(기독교 치유 상담원 실장)와 오랫동안 치유 사역자로 나와 함께 동역한 서정근 목사, 김동호 장로, 김월선 권사, 그리고 세 분의 배우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킹덤북스(Kingdom Books) 대표 윤상문 목사님께 감사한다. 오랫동안 개인, 가정 및 일터의 위기를 돌파하는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쓰도록 격려해 주었다. 편집을 비롯한 모든 기술적인 도움을 준 모든 킹덤북스 출판사 직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수많은 독자가 개인의 삶과 사역에서 많은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2022년 9월 기독교 치유 상담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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