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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하용준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5년

최근작
2023년 5월 <장군 정기룡>

고래소년 울치

<고래소년 울치>는 울산 지역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을 글감으로 하여 지은 소설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석기시대 말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암각화, 즉 바위그림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귀신고래와 귀상어를 비롯한 여러 바다 생물과 호랑이, 멧돼지, 사슴과 같은 육지 생물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람과 배, 사냥무기, 그물, 울타리와 같은 그림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의 석기인 또는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단계에 살았던 옛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이러한 그림들을 그렸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8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통나무배가 경남 창녕군 비봉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한편, 그것은 일본에서 발견된 배보다 2000년이나 더 오래된 것이기도 합니다. 소설 <고래소년 울치>는 석기시대에 육지 동물만 사냥을 하고 살던 어느 마을에서 해마다 겨울철만 되면 식량이 부족해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도 사냥을 하자고 맨 처음으로 주장한 한 사람의 신념과 그 신념을 이어받은 아들의 용기를 모험 형식으로 펼쳐 놓았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굴화, 돌래, 구루미, 늠네, 굼다개 등의 인물은 편의상 모두 다 울산 지역의 마을 이름에서 따왔으며, 울치나 우시메와 같은 주인공들의 이름은 울산, 우시산이라는 지명을 끝음절만 한글로 바꾸어 쓴 것이라는 점을 간략히 밝혀 둡니다. <고래소년 울치>를 통하여 적극적인 탐구심을 길렀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반구대 암각화가 왜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중요성을 지니는지, 또 동해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특히 울산 앞바다를 제 안방으로 삼다시피 했던 귀신고래가 우리나라 국민에게 어떤 해양지정학적 교훈을 주고 있는지 다 함께 깊이 음미해 보았으면 합니다. 집필 작업을 통틀어 새삼 느낀 점은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정의로운 신념과 불굴의 집념 그리고 드높은 용기를 가지고 하루하루 지혜롭게 실행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달성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였습니다.

섬호정

경남 하동군 읍내에 있는, 일명 향교 뒷산이라고도 불리는 갈마산은 1961년 처음 하동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2003년에서 2004년에 걸쳐 하동군에서 대대적으로 산책로와 여러 가지 시설물을 보완하여 재조성하였다. 다른 길도 많지만 특히 향교 쪽에서 느릿한 걸음으로 10여 분 올라 산정에 서면 너뱅이들이라는 너른 들판,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하동 읍내의 전경 등 아름다운 풍광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그런 까닭으로 하동공원은 가히 하동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섬호정은 그 산정에 서 있는 정자인데, 설립 과정을 살펴보면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구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에서 전국 각 군마다 농업보습학교를 1개교씩 설립하라는 훈령을 하달하여 하동에서도 학교를 새로 설치하게 되었는데, 조선시대의 객사인 하남관이 후보지로 선정되었다. 이에 하동의 유림에서는 삼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던 객사의 정문 계영루가 헐리게 된 것을 크게 안타까워하여 계를 조직한 뒤 십시일반 계금을 갹출하여 헌 재목을 사들이고는 그것으로 향교 뒷산에 정자를 짓고 섬호정(蟾湖亭)이라는 현액을 내걸었다. 아무리 헐릴 위기에 처했다 하더라도 조선시대에 임금의 생위패를 줄곧 모셔 왔던 객사의 재목으로 사사로이 풍류나 즐길 정자를 지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객사를 지켜내어야 할 위치에 있던 유림이 오히려 발 벗고 나서서? 조선왕조가 망국으로 전락한 일제강점기 상황이었다고 해도 전국 각지에서는 유림 본연의 명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던 때인데, 비록 객사가 폐허지경에 있었을망정 하동 유림이 무엄해도 너무나 무엄한 짓을 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 내막을 알아보고자 지난해 가을 하동군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1926년에서 1927년 당시의 하동 유림과 청년단체 등 하동 군민과 하동 지역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겉으로 회자되는 섬호정의 건립 이야기 속에 암호문처럼 깃들어 있는 은밀하고도 용의주도했던 일련의 사연을 해독해 내기에 이르렀다. 비록 이 짧은 소설을 통해서나마 하동 군민들이 단합된 마음으로 하동공원 산정에 있는 정자 섬호정을 더욱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면서 반드시 후손들에게도 그 건립 취지를 바르게 전하여 애향의 긍지를 드높이는 계기로 삼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물심양면으로 집필 지원을 해 주신 하동 지역의 여러분들을 한 분 한 분 밝혀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이 도리겠으나, 한결같이 공연히 생색내는 일이라 여겨 손사래를 치시는 모습에서 옛 사람들에 이어 또 한 번 하동인의 깊이 있는 겸양의 인품을 깨닫게 되었다. 사시사철 언제 찾아가도 아늑한 고향과 같은 정취가 흐르는 곳, 하동. 책이 출판되면 맨 먼저 그분들을 모시고 섬호정에 둘러앉아 졸저 한 권과 막걸리 한 잔을 올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정기룡 1

장군의 설화가 전해지는 유적지, 사당, 묘소 등을 탐방하는 동안 장군의 일생은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겹겹이 베일에 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점점 깊어가던 관심은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조사와 자료 수집으로 이어졌다. 역사상 엄연히 실존했으면서도 가장 신비스럽게 전해지는 한 영웅에 대한 탐구가 계속될수록 마치 진흙 속에 묻혀 있는 구슬을 한 알 한 알 찾아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영롱한 구슬들을 한 꿰미로 꿰어보고 싶은 의욕이 일었던 것이다. 아마도 장군에 대하여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일화는 무과 시험을 보러 한양에 갔다가 선조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았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전무후무한 일화가 안타깝게도 역사적 사실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장군이 서거한 지 78년이 지난 후에 송시열이 장군의 신도비문을 쓰면서 항간에 떠도는 말이라고 하며 처음 언급한 내용이 지금까지 마치 역사의 한 갈피인 양 전해지고 있다. 이 일화 외에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많은 설화가 있다. 유독 장군에 관해서만큼은 왜 현실성이 다분히 결여된 이야기들이 수없이 전해지는 것일까? 오랜 시일에 걸친 조사 과정을 통하여 장군을 감싸고 있는 베일을 한 겹 한 겹 벗겨내자 비로소 격동의 한 시대를 실제로 살다 간 비밀스런 인물의 진정한 면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정기룡 2

장군의 설화가 전해지는 유적지, 사당, 묘소 등을 탐방하는 동안 장군의 일생은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겹겹이 베일에 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점점 깊어가던 관심은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조사와 자료 수집으로 이어졌다. 역사상 엄연히 실존했으면서도 가장 신비스럽게 전해지는 한 영웅에 대한 탐구가 계속될수록 마치 진흙 속에 묻혀 있는 구슬을 한 알 한 알 찾아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영롱한 구슬들을 한 꿰미로 꿰어보고 싶은 의욕이 일었던 것이다. 아마도 장군에 대하여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일화는 무과 시험을 보러 한양에 갔다가 선조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았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전무후무한 일화가 안타깝게도 역사적 사실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장군이 서거한 지 78년이 지난 후에 송시열이 장군의 신도비문을 쓰면서 항간에 떠도는 말이라고 하며 처음 언급한 내용이 지금까지 마치 역사의 한 갈피인 양 전해지고 있다. 이 일화 외에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많은 설화가 있다. 유독 장군에 관해서만큼은 왜 현실성이 다분히 결여된 이야기들이 수없이 전해지는 것일까? 오랜 시일에 걸친 조사 과정을 통하여 장군을 감싸고 있는 베일을 한 겹 한 겹 벗겨내자 비로소 격동의 한 시대를 실제로 살다 간 비밀스런 인물의 진정한 면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정기룡 3

장군의 설화가 전해지는 유적지, 사당, 묘소 등을 탐방하는 동안 장군의 일생은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겹겹이 베일에 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점점 깊어가던 관심은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조사와 자료 수집으로 이어졌다. 역사상 엄연히 실존했으면서도 가장 신비스럽게 전해지는 한 영웅에 대한 탐구가 계속될수록 마치 진흙 속에 묻혀 있는 구슬을 한 알 한 알 찾아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영롱한 구슬들을 한 꿰미로 꿰어보고 싶은 의욕이 일었던 것이다. 아마도 장군에 대하여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일화는 무과 시험을 보러 한양에 갔다가 선조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았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전무후무한 일화가 안타깝게도 역사적 사실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장군이 서거한 지 78년이 지난 후에 송시열이 장군의 신도비문을 쓰면서 항간에 떠도는 말이라고 하며 처음 언급한 내용이 지금까지 마치 역사의 한 갈피인 양 전해지고 있다. 이 일화 외에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많은 설화가 있다. 유독 장군에 관해서만큼은 왜 현실성이 다분히 결여된 이야기들이 수없이 전해지는 것일까? 오랜 시일에 걸친 조사 과정을 통하여 장군을 감싸고 있는 베일을 한 겹 한 겹 벗겨내자 비로소 격동의 한 시대를 실제로 살다 간 비밀스런 인물의 진정한 면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쿠쿨칸의 신전 1

옛 동북아시아에서는 황하문명보다 1500년이나 앞섰던 문명이 있었습니다. 홍산 문명이라 불리는 그것은 유적과 유물로 보아 BC 3000년 이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남긴 발자취임이 분명합니다. 또 놀랍게도 석기시대에 청동기시대 사이에 옥기 시대라는 독특판 문명사적 발전 단계를 경험했다는 사살을 낱낱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고대 마야 사회에서 더없이 신성한 물성으로 여겨 위대한 왕들의 전유물로 삼았던 옥시,옥책, 옥패 같은 종류의 유물들에 놀랍게도 홍산문명 지역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옛 문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단군조선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지구상 서로 반대편에 있는 두 대륙에서 공교롭게도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뿌리를 같이 하는 문명이 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옛 홍산문명과 고대 중미의 올멕, 마야문명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마지막 책갈피를 넘기실 무렵, 결국 실망스러운 동참이었다는 느낌을 안겨 드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쉽게 믿기지 않는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 먼길을 떠났던 저의 여행에 감히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쿠쿨칸의 신전 2

옛 동북아시아에서는 황하문명보다 1500년이나 앞섰던 문명이 있었습니다. 홍산 문명이라 불리는 그것은 유적과 유물로 보아 BC 3000년 이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남긴 발자취임이 분명합니다. 또 놀랍게도 석기시대에 청동기시대 사이에 옥기 시대라는 독특판 문명사적 발전 단계를 경험했다는 사살을 낱낱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고대 마야 사회에서 더없이 신성한 물성으로 여겨 위대한 왕들의 전유물로 삼았던 옥시,옥책, 옥패 같은 종류의 유물들에 놀랍게도 홍산문명 지역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옛 문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단군조선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지구상 서로 반대편에 있는 두 대륙에서 공교롭게도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뿌리를 같이 하는 문명이 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옛 홍산문명과 고대 중미의 올멕, 마야문명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마지막 책갈피를 넘기실 무렵, 결국 실망스러운 동참이었다는 느낌을 안겨 드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쉽게 믿기지 않는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 먼길을 떠났던 저의 여행에 감히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쿠쿨칸의 신전 3

옛 동북아시아에서는 황하문명보다 1500년이나 앞섰던 문명이 있었습니다. 홍산 문명이라 불리는 그것은 유적과 유물로 보아 BC 3000년 이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남긴 발자취임이 분명합니다. 또 놀랍게도 석기시대에 청동기시대 사이에 옥기 시대라는 독특판 문명사적 발전 단계를 경험했다는 사살을 낱낱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고대 마야 사회에서 더없이 신성한 물성으로 여겨 위대한 왕들의 전유물로 삼았던 옥시,옥책, 옥패 같은 종류의 유물들에 놀랍게도 홍산문명 지역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옛 문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단군조선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지구상 서로 반대편에 있는 두 대륙에서 공교롭게도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뿌리를 같이 하는 문명이 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옛 홍산문명과 고대 중미의 올멕, 마야문명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마지막 책갈피를 넘기실 무렵, 결국 실망스러운 동참이었다는 느낌을 안겨 드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쉽게 믿기지 않는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 먼길을 떠났던 저의 여행에 감히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태종무열왕 1

평소 친근히 교류하고 지내던 영화 및 방송 시나리오 작가 유동윤 인형(仁兄)으로부터 2010년 봄에 한 가지 요청을 받았다. 당시 KBS에서 계획하고 있는 주말 대하사극이 백제의 <근초고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그리고 신라의 <태종무열왕>으로, 삼국의 제왕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왕들의 시대를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하여 방영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방영될 대하사극인 <태종무열왕>의 시나리오 집필을 유동윤 작가 자신이 하고, 연출은 신창석 PD가 맡게 될 예정이니, 그 대하사극 <태종무열왕>의 원작소설을 집필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즈음 미처 완결하지 못한 대하소설 <북비>까지 밀쳐 두고 새로운 소설을 짓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몇 차례 사양하였다. 그러던 중에 유동윤 작가는 단 한 권이라도 좋으니 원작소설이 있으면 좋겠다며 간곡한 권유를 거듭하였고, 끝내 그의 요청을 못 이겨 80부작으로 10개월 동안 방영하는 대하사극의 원작소설을 단 한 권 분량으로 구성하기에는 마땅치 않다며 적어도 세 권 분량은 되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집필을 결심하였다. 유동윤 작가로부터 사전에 들은 바, <태종무열왕> 시나리오의 구성은 삼국이 치열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신라의 삼국통일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신라가 한반도의 모든 신민과 군사의 힘과 뜻을 모아 당나라를 물리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점 때문에 문무왕의 비중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태종무열왕과 문무왕까지 이어지는 대하사극이기에 제목을 어느 한 왕에 국한하기가 마땅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처음 기획 단계에서의 대하사극의 제목 <태종무열왕>이 <대왕의 꿈>으로 바뀌었으나, 원작소설의 제목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태종무열왕>으로 하기로 하였다. 비록 원작소설 <태종무열왕>이 대하사극 <대왕의 꿈>의 시나리오와 형식, 구성, 내용에 있어 다소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읽혀지기’를 전제로 한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와 ‘영상의 시청’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라는 문학 장르의 특색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임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총 3권의 책은 10월 중부터 출판이 될 것이나,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그에 조금 앞선 10월 1일부터 나의 인터넷 블로그에 일정 분량씩 연재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역사적 사실의 뼈대를 훼손하지 않은 정통 역사소설에 목말라하고 있을 독자 여러분께 삼가 고개 숙여 깊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태종무열왕 2

평소 친근히 교류하고 지내던 영화 및 방송 시나리오 작가 유동윤 인형(仁兄)으로부터 2010년 봄에 한 가지 요청을 받았다. 당시 KBS에서 계획하고 있는 주말 대하사극이 백제의 <근초고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그리고 신라의 <태종무열왕>으로, 삼국의 제왕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왕들의 시대를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하여 방영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방영될 대하사극인 <태종무열왕>의 시나리오 집필을 유동윤 작가 자신이 하고, 연출은 신창석 PD가 맡게 될 예정이니, 그 대하사극 <태종무열왕>의 원작소설을 집필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즈음 미처 완결하지 못한 대하소설 <북비>까지 밀쳐 두고 새로운 소설을 짓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몇 차례 사양하였다. 그러던 중에 유동윤 작가는 단 한 권이라도 좋으니 원작소설이 있으면 좋겠다며 간곡한 권유를 거듭하였고, 끝내 그의 요청을 못 이겨 80부작으로 10개월 동안 방영하는 대하사극의 원작소설을 단 한 권 분량으로 구성하기에는 마땅치 않다며 적어도 세 권 분량은 되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집필을 결심하였다. 유동윤 작가로부터 사전에 들은 바, <태종무열왕> 시나리오의 구성은 삼국이 치열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신라의 삼국통일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신라가 한반도의 모든 신민과 군사의 힘과 뜻을 모아 당나라를 물리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점 때문에 문무왕의 비중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태종무열왕과 문무왕까지 이어지는 대하사극이기에 제목을 어느 한 왕에 국한하기가 마땅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처음 기획 단계에서의 대하사극의 제목 <태종무열왕>이 <대왕의 꿈>으로 바뀌었으나, 원작소설의 제목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태종무열왕>으로 하기로 하였다. 비록 원작소설 <태종무열왕>이 대하사극 <대왕의 꿈>의 시나리오와 형식, 구성, 내용에 있어 다소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읽혀지기’를 전제로 한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와 ‘영상의 시청’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라는 문학 장르의 특색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임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총 3권의 책은 10월 중부터 출판이 될 것이나,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그에 조금 앞선 10월 1일부터 나의 인터넷 블로그에 일정 분량씩 연재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역사적 사실의 뼈대를 훼손하지 않은 정통 역사소설에 목말라하고 있을 독자 여러분께 삼가 고개 숙여 깊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태종무열왕 3

평소 친근히 교류하고 지내던 영화 및 방송 시나리오 작가 유동윤 인형(仁兄)으로부터 2010년 봄에 한 가지 요청을 받았다. 당시 KBS에서 계획하고 있는 주말 대하사극이 백제의 <근초고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그리고 신라의 <태종무열왕>으로, 삼국의 제왕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왕들의 시대를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하여 방영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방영될 대하사극인 <태종무열왕>의 시나리오 집필을 유동윤 작가 자신이 하고, 연출은 신창석 PD가 맡게 될 예정이니, 그 대하사극 <태종무열왕>의 원작소설을 집필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즈음 미처 완결하지 못한 대하소설 <북비>까지 밀쳐 두고 새로운 소설을 짓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몇 차례 사양하였다. 그러던 중에 유동윤 작가는 단 한 권이라도 좋으니 원작소설이 있으면 좋겠다며 간곡한 권유를 거듭하였고, 끝내 그의 요청을 못 이겨 80부작으로 10개월 동안 방영하는 대하사극의 원작소설을 단 한 권 분량으로 구성하기에는 마땅치 않다며 적어도 세 권 분량은 되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집필을 결심하였다. 유동윤 작가로부터 사전에 들은 바, <태종무열왕> 시나리오의 구성은 삼국이 치열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신라의 삼국통일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신라가 한반도의 모든 신민과 군사의 힘과 뜻을 모아 당나라를 물리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점 때문에 문무왕의 비중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태종무열왕과 문무왕까지 이어지는 대하사극이기에 제목을 어느 한 왕에 국한하기가 마땅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처음 기획 단계에서의 대하사극의 제목 <태종무열왕>이 <대왕의 꿈>으로 바뀌었으나, 원작소설의 제목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태종무열왕>으로 하기로 하였다. 비록 원작소설 <태종무열왕>이 대하사극 <대왕의 꿈>의 시나리오와 형식, 구성, 내용에 있어 다소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읽혀지기’를 전제로 한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와 ‘영상의 시청’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라는 문학 장르의 특색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임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총 3권의 책은 10월 중부터 출판이 될 것이나,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그에 조금 앞선 10월 1일부터 나의 인터넷 블로그에 일정 분량씩 연재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역사적 사실의 뼈대를 훼손하지 않은 정통 역사소설에 목말라하고 있을 독자 여러분께 삼가 고개 숙여 깊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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