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시집 한 권을 위해서 수많은 시편을 쓰고 버렸다.
나는 그녀로 인해 신열을 앓았고 한 슬픔을 맞았으며 한 슬픔을 보냈다.
그녀가 청룡천변 작은 돌무덤으로 누워 있을 때 들국 몇 송이 무덤 위로 청옥빛 가을 하늘 흔들어 나를 아프게 했다.
그 이후 나는 그녀의 거사가 되어 그녀의 가파른 생을 등짐으로 지어 날랐다.
이제 그녀의 모든 것을 벗는다.
연해주는 헐벗은 유민들에게 희망의 땅이었다.
조국이 그들을 거두지 않았으므로 연해주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남의 나라 땅에서 아이를 낳고 농사를 짓고 마을을 이루어 살았다.
살면서 더러는 러시아로 귀화하고 더러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더러는 풍요로운 정착을 했다.
고국은 늘 풍전등화였고 러시아는 볼셰비키혁명 중이었다.
크렘린의 음모에 의해 연해주 한인 20만여 명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되었다.
한인들에게 강제이주는 혹독한 시련이었다.
80년 가까이 흘렀지만 한인 유민들의 서러운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들을 싣고 갔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오늘도 질주한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와 죽음을 묻었던 시베리아는 침묵한다.
이 작품을 위해 어려운 취재 과정을 도와주었던 세명투어의
김영래 이사와 장무순 선생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2013년 7월 詩境齋에서
세사를 물러나며 서둘러 마련한 거처가 이곳 사흥리이다. 바람 소리와 호반의 끝자락과 소나무 숲과 숲 사이로 보이는 눈부신 햇살과 결코 무겁지 않은 산세가 얼핏 한 풍경을 이루는 곳이다. 이제 세상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겠다 싶다. 지난 5년은 내게 가혹하리만치 거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더러 시가 내게 와주었던 것이다. 그 시편들을 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