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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신외숙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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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인공 로봇 시대>

골목길

지난 몇 달 간 여의도에서 알바한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빌딩마다 쏟아져 나오는 젊은 직장인들을 보면서 새삼스레 감회에 젖었었다. 신분증을 목에 건 그들은 분명 이 시대의 선택된 고급 인력이었다. 요즘 같은 3포 5포 시대에 안정된 직장을 얻는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일 테니까. 젊은 날 한때 공직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공무원은 거의 최하위직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처럼 정년이 보장된 철밥통이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야흐로 세상은 점점 취업난이 심해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다. 명퇴 황퇴 조퇴 오륙도도 모자라 3포 5포 7포시대라는 유행어까지 나돌고 있다. 뿐이랴, 실신시대(실직 신용불량의 합성어) 니트족(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며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15-34세의 젊은이를 말함. 취업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실업자로 봄)이라는 신생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모 재벌그룹에서 구조조정을 한다며 20대 신입사원까지 포함시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여의도는 금융가가 밀집된 지역으로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다. 목에 신분증을 매달고 활보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을 스치는 후회감이 있다. 그들 가슴에서 느껴지는 지위와 스펙. 미래가 보장된 듯한 그들의 신분증에서 능력이란 단어와 함께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저 나이 때에 무엇을 하고 살았던가. 나는 왜 그때 미래를 위해 좀 더 많은 준비와 스펙을 쌓지 못했을까. 소설가라는 미명(美名)에 사로잡힌 탓만은 아니기에 후회는 가끔씩 세월을 원망하게 한다. 언젠가 지인과 식사하면서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젊었을 때 공무원 하셨다면서요? 차라리 끝까지 붙들고 있지 그랬어요. 지금은 공무원이 대세잖아요, 가장 완벽한 철밥통이잖아요.” “그렇긴 해도 소설가는 못 됐을 거예요.” 그의 말을 뒤집어보면 돈도 안 되는 소설을 뭐하러 시작해서 세월을 낭비했느냐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에 소설이 웬말이냐? 무슨 돈이 된다고?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나는 속으로 대신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여러가지 사정으로 공무원을 그만두고 말았지만 지금까지 큰 후회는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보다는 소설이라는 꿈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세월 따라 자꾸 마음이 바뀐다. 몇 년 전, 바닷가 근처로 세미나를 갔을 때의 일이다. 전직이 형사였던 동료 소설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소설가로 등단하자 아내가 말했단다. 만일 소설을 핑계로 직장을 그만두면 이혼하겠다. 그는 아내의 으름장에도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에 매달렸다. 그는 정해진 순서처럼 이혼남이 되었고 그 모양을 본 친구가 말했다. “너 도대체 제정신이냐? 요즘 세상에 누가 소설을 읽는다고 소설을 쓰냐?” 그가 말했다. “야! 내가 제정신일 것 같으면 소설을 쓰냐? 제정신이 아니니까 소설을 쓰지.” 그 말에 모두 와! 하고 웃었다. 시(詩) 쓰는 친구와 한참 갑론을박한 적이 있었다. 돈이 먼저냐? 명예가 먼저냐? 그는 시를 대단한 명예쯤으로 생각한 것 같다. 나는 돈이 먼저라 했고 그 친구는 명예가 먼저라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안 되는 것은 얼마나 무가치한 취급을 받는지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돈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돈이 들어가는 순수예술, 그것도 문학창작에 대해 공감해 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는 IMF 때 등단하여 20년 세월 가까이 소설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꿈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흔들림은 수시로 다가온다. 특히 돈 문제에 닥칠 때면 더욱 그렇다. 과연 이 시대에 문학이 얼마나 효용가치를 나타내는 것일까. 자신에게 수없이 묻는다. 나는 왜 하고 많은 직업 중에 소설가를 택했을까. 다른 장르도 아닌 전업으로만 해야 하는 소설을 나의 평생 직업으로 택했을까. 많은 것을 차치하고라도 나는 말한다. 나의 작가 인생만큼은 결코 후회 않노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생은 예술가라고. 왜냐하면 남들은 삶을 위해 재능을 포기하지만 예술인들은 재능을 위해 모든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자기 재능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예술인들은 모두 복 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으니까. 이번에 내는 골목길은 내 16번째 창작집이다. 그날 이후 외에 10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이 시대에 솔로로 살아가는 많은 군상들을 그려 보았다. 독자들과의 공감을 기대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린다. 또 이번에도 어려운 출판환경에도 책을 내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심혁창 아동문학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6년도에는 독자들 삶속에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편만하길 기도 드리며.

꿈 한번 꾸고 났더니

어릴 때 나의 소원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너무 많았다. 첫 번째가 먼 외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낯선 고장에 가 머물면서 새로운 경험과 함께 나만의 세계를 꿈꾸고 싶었다. 두 번째는 소설이나 멋진 드라마를 쓰는 것이었다. 어린 날 동네 만화 가게에는 TV가 있었다. 동네 조무래기들끼리 모여 만화책에 고개를 처박고 읽다가 저녁 무렵이면 TV를 켜주는데 나는 그게 너무 좋았던 것 같다. TV속에는 내가 꿈꾸는 세상이 다반사로 펼쳐졌고 나는 무시로 드라마를 써댔다. 낮에는 동네 어린이 도서관에 가 동화 속에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동화 속에 파묻히면서 현실감각이 둔해졌다. 만화와 동화는 어린 내게 둘도 없는 친구 역할을 해주었다. 몸이 아파 누워 있을 때도 내 손에는 꼭 책이 들려져 있었는데 역사물도 많이 읽었다. 그래서 역사 시험은 항상 90점 이상을 받았다. 상상의 세계 속에 몰입하는 건 뼈아픈 현실을 잊는 마취제와 같았다. 현실은 늘 불가능의 연속이고 험악한 인심과 반복되는 상처의 악순환이었다. 그래서 한 맺힌 운명 타령을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내 소설을 위한 소재와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은 내 어리석음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고 악을 경험함으로 분별력을 키워 주셨다. 모순되게도 험난한 삶의 여정은 의지박약자인 나에게 견딜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생겨나게 했다. 또 힘든 과정을 통과할 때마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사람들이 내게 돈도 안 되는 소설 뭐 하러 쓰냐고 물을 때 난 속으로 말한다. ‘꿈을 이룬 나는 행복하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 13년가량 전업으로 하다가 직업 전선으로 뛰어 들었다. 대학 때 전공을 살려 잠시 직장에 근무한 적도 있었고 알바를 하며 그때그때 돈 문제를 해결하는데 거기에도 인생의 재미가 숨어 있었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친절하고 남의 허물도 덮어 줄 줄 알고 함께 여행도 떠날 만큼 마음 맞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알바에 매달릴 때 나는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돈이냐? 예술이냐? 꿈의 연장이냐? 현실이냐? 나는 혼자 있을 때는 소설이나 문학이란 단어 대신에 예술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억지로라도 자존감을 끌어 올리고 싶어서다. 그리고 아티스트라는 영문자보다 예술이란 표현을 더 좋아하는 것은 낮은 마음을 높여 주는 것 같아서다. 나는 올해로 등단 20년 차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상상해 오고 꿈꾸어 온 많은 소재를 소설로 탄생시켰다. 인정받는 순간도 많았고 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경험도 수없이 많이 체험했다.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게 하나님 은혜였고 기도 응답의 결과였다. 언젠가 성격 검사를 했는데 성취도 만족감이 거의 백퍼센트에 가까웠다. 누가 알았으랴. 꿈을 이룬 나는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이번에 내는 ‘꿈 한번 꾸고 났더니’는 내 17번째 저서이자 에세이집으로는 3번째다. 유비와 조조 외에 67여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소설과 달리 에세이는 팩트를 중심으로 쓰기 때문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나의 모든 진면목이 드러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알바하면서 겪은 이야기와 시대의 아픔 속에서 방황하는 독자들을 의식하며 쓰려고 노력했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나름 고심하며 썼다고 생각하는데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다. 세월은 나이만큼이나 휙휙 지나가는 것 같다. 이념과 가치관의 혼란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기이다. 가짜 뉴스가 판치고 어둠은 강세를 떨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은 반드시 정의와 함께 마음을 다스릴 것이다. 언젠가는.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모쪼록 올해는 독자들 삶 속에 평안과 형통의 삶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에벤에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등단 초기부터 지금까지 나의 문학 인생길에 혜량을 베풀어 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동화작가 심혁창 사장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돌싱

나는 어릴 때부터 낯선 것을 좋아했다. 낯선 거리, 낯선 감정. 새로움이란 내게 항상 호기심어린 그리움을 당겼다. 어린 나는 무작정 낯선 거리를 걷고 낯선 골목길을 헤맸다. 그리고 동화 속 장면을 떠올렸고 드라마에 심취했다. 새로움은 허구라는 날개를 달고 상상의 바다에 빠져드는 순간, 엄청난 희열이 되었다. 순간 나는 행복자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추운 겨울날 여행 떠나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겨울에는 다른 계절에는 맛 볼 수 없는 눈 풍경과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흰 눈 천지로 변해버린 산야를 바라보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옷을 두껍게 껴입고 얼어붙은 강가를 걷고 멀리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면 영화 촬영하는 것처럼 타아에 몰입하게 된다. 여행이란 자아를 잊고 또다른 상상의 경험 속에 나를 밀어 넣는 것. 온갖 시름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낭만의 세계에 푹 빠져 버리는 것. 과거와 미래의 황홀한 신세계와 만나는 것. 추운 날씨에 글감도 건질 겸 자주 겨울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었다. 등단하기 전이었는데 청량리에서 버스 한번 타면 도착하는 곳이 양수리와 양평이었다. 물 구경이 좋았고 도심을 떠났다는 해방감으로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지금은 중앙선 국철이 생겨 시간도 단축되고 그곳도 편의시설이 많이 생겨 옛날 같은 낭만은 많이 줄었다. 역 근처가 화려해져 고가의 커피숍과 음식점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호수 주변으로 산책 코스가 생겼는데 목조 다리가 강물 위에 그대로 떠 있는 느낌이다. 황톳길을 밟는 느낌도 좋고 5일장이 서는 날이면 구경거리가 늘어나 소설 구상이 저절로 된다. 또 두물머리 산책가는 영화의 한 세트장 같다. 녹색바람과 강물, 낯섦에서 오는 이질감과 설렘은 영감(靈感)을 샘솟게 한다. 여행만큼 값진 마음의 호사도 없으리라. 세태는 자꾸 변한다. 그렇지 않아도 기사회생 직전이었던 문학이 이제는 스마트폰의 대세로 무용론에까지 이르렀다. 카톡과 SNS이라는 새로운 소통기구의 출현으로 문학은 그 마지막 존재가치마저 위협 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웬만한 중소도시에 가도 서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전자책이 대신한다고 하지만 히트작이 없는 작가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그러함에도 작가는 쓰고 또 쓴다. 독자를 위해서 작가 자신을 위해서. 정체성을 잃고 살아가는 범인(凡人)들을 향해 끊임없이 구애의 손길을 보내며. 등단 이후, 소설과 함께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몇 년 전부터는 소설과 무관한 알바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기능을 상실하게 될까봐 두려움이 몰려온다. 출 퇴근 때마다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작가인가? 나는 과연 작가로서의 인생을 언제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내게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질문할 때가 많다. 그 뒤에는 돈도 안 되는 소설 왜 쓰는가에 대한 힐문이 숨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어릴 적 꿈을 이룬 나는 행복한 성공자 임을. 이번에 내는 돌싱은 내 15번째 창작집이다. 겨울 안개 외에 9편의 단편과 1편의 시나리오가 수록돼 있다. 삶의 끄트머리 기억 속에 허구를 옷 입혀 쓴 소설이다. 작가는 글을 통해 독자와 소통한다. 공감대라는 현상을 통하여 독자와의 아름다운 소통을 이루고 싶다. 올해는 독자들 모두 진전한 멘탈 갑이 되어 복된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번에도 어려운 출판 환경에도 또다시 책을 내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아동문학가 심혁창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리허설

언젠가부터 홍대 앞 거리는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었다. 압구정동의 로데오 거리와 동숭동 마로니에를 제치고 홍대가 젊은이들의 명소가 된 것은 명문미대의 영향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젊음이 운집한 홍대 앞 거리는 내 소설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사시사철 낭만이 흐르고 환상의 도가니를 이루는 거리는 항상 음악이 흐르고 어딜 가나 영화의 한 세트장 같다. 거리에서 공연하는 젊은 싱어들과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받는 화가가 그곳에선 모두 약속처럼 여겨진다. 해가 숨고 달빛이 비췰 때면 거리의 상가들은 강한 비트 음악과 함께 행인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잡아챈다. 음악과 쾌락은 곧바로 젊음을 유혹한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흔들린다. 젊음이라는 무한대의 자유와 끼가 바로 눈앞에서 출렁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업적 스킬이다. 홍대 앞 거리를 찾은 건 3년 전 근처에서 알바를 할 때였다. 매스컴이나 인터넷에서 자주 떠오르는 그 거리를 꼭 찾아가고 싶었다. 알바가 끝나고 나서 그 거리를 걷는데 제일 먼저 느낀 건 광풍과 같은 음악과 역동성 있는 젊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30년 전으로 후퇴하면서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어느새 중년이 되었구나! 마음은 저들처럼 꽃띠인 줄 알았는데. 환상이 흐르는 거리를 걸으며 소설을 구상했다. 옛사랑을 떠올리며 시나리오 구상도 저절로 떠올랐다. 거리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영화의 세트장 같았다. 감정에도 색깔이 있다. 심리에도 천차만별이 있듯이. 의지에도 종류가 있다. 삶과 고통을 견디는 의지 외에 예술가에겐 또 다른 의지가 있다.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고 뿜어 올리는 예술혼에 대한 의지. 나는 어릴 때부터 낯선 거리 걷는 것을 좋아했다. 낯선 곳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움과 흥밋거리가 무진장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낯선 거리를 걸으며 낯선 감정과 부딪치고 잃어버린 기억 하나 건져 올려 소설 구상을 했다.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희로애락과 함께 다양한 심리 경험을 했다. 집착과 끈기, 도전정신, 꿈, 희망, 현실도피. 여행을 통해서도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힐링의 효과였다. 내 소설의 근간은 힐링을 염두에 두고 있다. 힐링은 독자들을 향한 나의 목적이자 바람이기도 하다. 등단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 발표를 했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하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로 인해 나의 습작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에 내는 창작집 <리허설>은 내 14번째 저서이다. <옛꿈> 외에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내적치유를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허구로 꾸며 보았다. 진정한 힐링은 신적 의지와 연관돼 있다. 마음을 창조하신 이는 절대자이기에. 출간에 앞서 독자와의 공감대를 다시 한 번 기대하며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어려운 출판 환경에도 또다시 책을 내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아동문학가 심혁창님께도 감사의 절을 올린다. 무더운 날씨에 독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 머리글

멜로 스릴러 드라마

얼마 전, 국토의 정중앙이라고 불리는 강원도 ○○지역에 다녀왔다. ○○는 내가 삼십여 년 전, 공직생활 했던 곳으로 금강산이 마주보이는 최전방 중부전선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험지에 낙후된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지방자치제로 어느 정도 이름이 나 있다. 한 겨울, 소설 소재 감을 구한다는 핑계로 시외버스에 올랐다. 삼십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떠나기에 앞서 나는 수많은 상념에 사로잡혔다. 천지가 변해도 열 번은 더 변했을 그곳을 두고 온갖 상상 드라마가 써졌다. 혹시나 옛날의 지인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런데 시외버스는 출발하자마자 전혀 엉뚱한 경로로 들어섰다. 강변도로를 달리던 시외버스는 홍천이 아닌 춘천도로로 접어들었고 아늑한 시골풍경 대신 아파트 군단을 여럿 지났다. 예전에 지나던 까마득한 절벽 길 대신 터널과 소양호 꼬부랑길을 한참 지나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서 소양호에서 출발하던 쾌속선이 사라졌고 대신 터널을 여럿 뚫어 경로를 단축시켰다. 34년 전에는 4시간 20분 걸리던 거리가 2시간대로 좁혀진 것이다. 세월은 거리를 단축시키면서 많은 환경적 변화를 가져왔다. 버스가 ○○읍내로 진입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띤 건 아파트 단지였다. 세상에……! 시골 벽촌이나 다름없는 곳에 아파트라니? 도대체 누가 산다고? 버스에서 내리니 전혀 낯선 풍광이 나타났다. 옛날에는 좁았던 모래 흙길이 아스팔트로 변하면서 모든 길들이 단축돼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을 중심으로 펼쳐진 읍내 거리는 군 주둔 지역답게 상권이 형성돼 있었는데 소도시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가 건물과 구획된 거리 풍경이었다. 거리를 둘러보는데 삼십여 년 전에 내가 다녔을 관공서 부근과 장터가 궁금했다. 관공서가 보이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 소설에 등장했던 주요 장면들이 나온다. 그때 만났던 수많은 교사 공직자와 순박한 농민들을 대상으로 쓴 소설이 있다. 단편 객지와 겨울 안개, 오드 아이, 객지의 밤, 꿈 34년 만에 만나다, 그리고 시나리오로 각색된 바 있는 과거와 현재가 있고 그밖에 수십 편의 에세이가 있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모텔과 옷 수선점, 미용실과 음식점 커피전문점과 군인백화점이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폐점된 곳이 더 많았다. 자영업자의 몰락이 그곳을 제일 먼저 강타한 것이다. 북풍이 거리를 휩쓸듯 지나갔다.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운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읍내에서 도내 버스를 타고 내가 근무했던 ○○초등학교로 갔다. 마침 방학 중이라 그런지 학교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없었다. 학교 바로 옆에 있는 군부대만 그대로일 뿐 주변에 있던 음식점 여관 다방 점포 등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버스 정류장 입구에 있던 미니슈퍼도 폐점된 채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동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농가도 군인 가족도 다 떠나버렸는지 온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내가 근무했던 초등학교는 신축된 산뜻한 모습으로 병설 유치원까지 갖추고 있었다. 쥐가 출몰하던 관사도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있어 격세지감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보는 객지의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느라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는 동안 거센 눈보라가 내 얼굴과 스마트폰으로 마구 달라붙었다. 눈길로 변한 버스정류장에서 면사무소가 있는 양지마을을 바라보니 세상이 온통 눈 속에 파묻혀 가는 것 같았다. 도내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당도했다. 옆을 지나며 자꾸 말을 붙이는 중년여자에게 물었다. “옛날에는 여기 근처에 선착장이 있어서 곧바로 춘천으로 가지 않았나요?” 나는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일부러 물었다. “그렇죠, 아주 오래 전 이야기네요. 지금은 춘천까지 곧바로 가는 길이 뚫렸어요.” “옛날에 춘천에 사는 직원들이 소양강 댐에서 쾌속정 타고 곧바로 출근하곤 했었어요, 제가 삼십년 전에 ○○○에 있는 초등학교에 근무했었거든요. 세월이 지나 다 늙어 가지고 어떻게 변했나, 궁금해서 한번 찾아와 본 거예요.” 그녀가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 거기서 선생님 하셨구나. 그런데 별로 늙은 것 같지 않은데.”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내 나이보다 적게 보는 것인가. “그런데 변해도 엄청 변했네요. 하긴 삼십 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말해 놓고 나니 세월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은 용서와 망각이라는 단어를 선물처럼 주고 사라지는 신기루 같다. 꿈속에서 수도 없이 많이 와 보았던 거리다. 소설로 울궈 먹고 또 울궈 먹고 시나리오로 재생시켜 각색까지 했던 무대가 바로 이곳이 아니었던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과거는 후회를 생각나게 하지만 감사라는 단어도 끝없이 떠오르게 한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올 수가 있었을까. 에벤에셀. 여호와 이레, 되뇌면서 시외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거리가 눈발 속에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시외버스가 춘천을 지날 때까지 눈발은 거세게 몰아쳤다. 그러다 경기도 입구에 들어서면서 신기하게 눈발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서울로 진입하면서 눈발은 완전히 그쳤고 현재라는 단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가만히 있어도 세월은 간다. 그런데 그 세월은 인생에게 반드시 성과에 대해서 묻는다. 나 역시 그 성과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살다보니 나이 육십이 되었다. 이 나이까지 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딸은 엄마의 운명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어서 오로지 내 만족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 결과 선택한 게 소설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등단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직 소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 이번에 내는 소설집 ‘멜로스릴러 드라마’는 내 19번째 저서이다. 등단 이후, 중 단편만 150편 가량 완성했는데 기(旣) 발표작 중 11편을 모아 창작집으로 꾸며 보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생활을 위해 재능을 포기하고 살지만 예술가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도 행복자라고 생각한다. 소설 같은 인생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살만한 세상이다. 나는 이번에 책을 내면서 또다시 엄청난 꿈을 꾸었다. 내 소설을 읽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독자가 많아지기를.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올린다. 이번에도 어려운 출판 환경에도 책을 내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심혁창 아동문학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올 2019년도는 독자들 모두 멘탈 갑이 되어 삶속에 형통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드리며. 소설가 신외숙 배상.

신촌 네거리

고풍스런 옛길을 걸었다. 세월의 이끼가 낀 담장 밑을 돌아 붉은 기와지붕과 시멘트 골목길. 오래 된 창살과 진한 초록의 향연 속에 세월의 그림자가 보이는……. 길은 오르막길로 진행되다가 언덕 아래로 이어지다 S자형을 그리고 있다. 황토 길은 추억을 묻고 댐이 보이는 대로변에는 고급 승용차가 속력을 높인다. 호수와 마을 입구를 가로지르는 한길에는 시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나팔꽃과 배롱이 꽃나무가 지친 여름을 떠나보내면서 때 이른 코스모스가 감성을 일깨우고 있다. 가을의 찬바람이 다신 안 올 줄 알았는데……. 초록의 물결은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고 평안을 일깨우듯 잎사귀 부딪치는 소리. 지난 세월 잊으라고. 길은 오솔길에서 흙길로 시멘트 도로에서 아스팔트로 이어지며 자동차는 세월을 싣고서 달린다. 강변과 아파트, 초록 들판을 끼고서. 강한 비트 음악과 영상매체에 마음을 빼앗긴 세대는 문학에 도통 무관심이다. 문학 하나 의지하고서 한 평생 달려왔는데 출구가 안 보인다. 오리무중에 빠진 꿈이 부끄러워 숨고만 싶다. 지난 2-3년 동안 알바에 매달려 살았다. 처음에는 용돈벌이로만 생각했는데 임플란트 수술비로 거금이 지출되면서 본업을 제켜 버리고 주업이 되다시피 했다. 알바를 하면서 느낀 건 사람들은 예술에 도통 무관심하다는 사실이었다. 돈은 만능해결사 노릇을 하는데 예술은 먼 꿈나라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힘주어 말했다. “나는 예술인들만큼 행복한 경우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은 재능이 있어도 생활을 위해서 재능을 포기하잖아요? 그런데 예술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러자 “그건 그렇죠.” 하면서 마지못해 동조를 했다. 문학무용론 시대에 글을 전업으로 하는 소설가들은 거의 자포자기나 마찬가지다. 책이 팔리지 않으니 절필하는 사태도 속출하고 있다. 이제 문학은 돈은 고사하고 돈 없이는 하기 힘든 실정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나의 문학 인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내게는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건 딱 한 가지다. 위로다. 내게서 힐링의 힘을 기대하고 당당하게 요구하기까지 한다. 본업이 소설가인 나는 감정이입 또한 잘 돼 쉽게 그들과 공감대를 나누고, 그러다 보면 그들은 힘을 얻고 돌아간다. 힐링, 그건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숙제인지 모른다. 나는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자가 치유를 경험할 때가 많다. 내가 심리소설에 집착하는 연유도 다 거기에 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어떤 성과나 성공보다 온전한 내적치유에 있다고 본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힐링의 효과를 기대하며 소설 창작을 해왔다. 물론 그 결과는 독자들이 내리는 것이겠지만 후회 없는 문학 인생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이번에 내는 <신촌 네거리>는 내 13번째 창작집이다. 단편 ‘두물머리의 봄’ 외에 7편의 중 단편과 시나리오가 실렸다. 그동안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것들을 모아 편집해 보았다.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다시 한 번 기대하며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 어려운 출판 환경에도 또다시 책을 내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아동문학가 심혁창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어떤 이별

음악인에게는 음감이 있고 미술인에게는 색감이 있고 문학인에게는 영감이 있다. 이것이야 말로 일반인과 예술인과의 차이다. 예술은 천부적인 재능에 의해 펼쳐지는 창조적인 행위로 범인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어떤 과학의 힘으로도 풀 수 없는 예술인들만의 고유 영역이다. 또한 예술인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사고방식은 물론이고 가치관이나 삶의 형태도 다르다. 어린 청소년 시절. 나는 다락방에 누워 상상했다. 소설가가 되어 창작에 몰입하는 내 모습을. 장마가 져서 흙탕물이 범람하는 계단을 보면서 난 이미 상상 속에서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내 삶은 온통 소설을 위한 무대였다. 소설가의 인생만 살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난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사랑했고 현실이 아닌 환상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작금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시대가 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현대인들은 시간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에게 빼앗겨버린 채 미디어의 범람 속에 살아간다. 독서는 스마트폰으로 대신하고 돈이라는 가치 척도에만 매달린다. 이제 문학은 그 기능마저 위태로운 가운데 있다. 얼마 안 가면 문학은 문학인들만의 집안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독자의 수는 나날이 줄어 기사회생의 기미마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함에도 작가는 쓰고 또 쓴다. 돈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창작을 포기할 수는 없다. 순수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의 감성에 문학이라는 생기를 불어놓고 싶어서다.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것 중의 하나가 미투 운동이다. 썩어빠진 정치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영혼의 순수성을 지켜야 할 예술계마저 성폭력이 만연한 사실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너희 영혼부터 치료하고 반성해라. 모든 행위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마음을 정화하고 바른 양심을 갖는다면 남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일평생을 상처와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폭력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문학은 상한 감정을 치유하고 죽은 감성을 일깨움으로 영혼의 순수성을 제고하는데 있다. 그 기능을 담당하고 싶어 작가들은 오늘도 힘겨운 현실과 싸우고 있다. 내가 쓰는 소설은 주로 심리소설이다. 마음 근저에 있는 상처를 끌어올려 그것을 객관화함으로 치유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부정적 사고 (Denial)와 투사(Projection)에 시달리는 독자들에게 작게나마 공감대를 전하고 싶다. 이번에 내는 소설집 ‘어떤 이별’은 내 18번째 저서이다. 신보헤미안 외에 10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주변에서 겪는 많은 인생 이야기에다 허구를 덧입혀 스토리로 엮어 보았다.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기대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이번에도 어려운 출판 환경에도 책을 내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심혁창 아동문학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올 2018년도는 독자들 삶속에 형통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드리며.

연극배우

어릴 때 나는 늦된 아이였던 것 같다. 남들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는데 나는 하나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두뇌의 어리석음 이외에도 수많은 불가능의 단어들이 따라붙었다. 열악한 환경과 수시로 달라붙는 병마(病魔)와 주변의 악한 인심(人心)이었다. 그 힘든 와중에 나는 늘 미래의 두려움과 거창한 꿈에 시달렸다. 그건 바로 동화책에서 읽었던 엄청난 상상 드라마였다. 상상력은 현실 인식 부족과 함께 많은 판단 착오를 일으켰지만 많은 도전의식도 불러 일으켰다. 창작은 자아성찰로부터 시작되었다. 지(知) 정(情) 의(意) 이 셋 중에서 나는 의지가 가장 취약했다. 집중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들었고 끈기가 없다 보니 매번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늘 병마에 치이다 보니 정신이 혼미하고 그러다 보니 의지가 약해져 제대로 할 수 일이 없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누워서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었다. 또 만화가게가 있었는데 당시로선 흔치 않은 TV가 있어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다. 나는 매일 도서관으로 달려가 동화에 파묻혔다. 동화는 나의 꿈의 산실(産室)이었다. 상상의 모태가 되었고 현실의 아픔을 잊는 마취제가 되었다. 좀 더 자라서는 소설 창작에 매달렸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인식 부재에다 도피 수단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꿈은 사라지지 않고 나를 지켜 주었다. 내게 단 하나뿐인 문학의지와 함께. 소설은 언젠가 반드시 도달해야 할 마지막 항구였다. 그 항구에 도달해 소설 작가의 인생을 살아온 지 20년이 넘었다. 문학위기 시대를 지나 문학 무용론 시대가 대두된 지도 오래 되었다. 인터넷 스마트 폰 시대를 지나 지금은 온 세상이 유튜브로 통한다. 유튜브만 열면 재미있는 코너가 쏟아져 나온다, 간단한 터치 한 번으로 웃음보가 터져 나온다. 굳이 세상사에 대해 논할 필요도 없고 일시에 근심사를 잊는다. 영화로 대신하던 소설 읽기는 스마트 폰으로 바뀌면서 위상마저 땅 끝으로 추락했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문단은 경로당을 방불케 한다. 더 이상 베스트셀러는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더 나가 이제는 돈 없이는 문학도 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탄식도 터져 나온다. 이제 문학은 문자로서의 기능만 담당하는 건 아닐까 의구심마저 든다. 그러나 작가는 세태와 상관없이 쓰고 또 쓴다. 돈이나 독자 수와 상관없이. 나는 예술을 운명이라 생각한다.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행위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예술가는 팔자소관이라 여겨진다. 물론 전업으로 할 때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소설은 상상드라마 형식을 띠지만 카타르시스를 동반한다. 동시에 쾌감과 도전을 준다. 소설을 쓰다 보면 단어와 문장이 영상처럼 스토리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낀다. 아! 난 작가였구나.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설은 나의 친구이자 애인이자 동반자이자 안식처였다. 그러는 사이 나이 60을 넘어섰다. 나이 육십을 또 다른 표현으로 이순(耳順)이라 부른다. 들으면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난 여전히 어리석은 내 모습을 본다. 그러니 이순이란 나이는 나와 별개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노년을 슬퍼하고 자책한다. 이 나이까지 무엇을 하고 살았던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년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년에는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각종 연금을 비롯해서 할인혜택도 적지 않다. 노년 빈곤만 아니라면 노년이라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미 항구에 당도했으니 더 이상 방황은 없을 테고 이루어 놓은 성과도 있을 테니까. 난 어릴 때 꿈꾸던 계획대로 소원의 항구에 잘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바라고 꿈꾸던 것들을 많이 이루었다. 자부심과 함께 긍지를 느낀다. 모두가 하나님 은혜다.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대부분 돈과 재물에 목숨을 건다. 흔한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더라도 돈이 행복의 열쇠가 되고 미래 특히 노후를 보장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순수 예술인들이다. 세태와 상관없는 순수 예술인으로 난 끝까지 살아남기 원한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행복한 예술인으로 삶을 마치고 싶다. 이번에 내는 소설집 ‘연극배우’는 내 20번째 저서이다. 주변에서 보았던 삶의 이야기를 10편의 단편으로 꾸며 보았다. 먼저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이번에도 어려운 출판환경에도 책을 내주신 도서출판 한글 심혁창 아동문학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명으로 여기며 쓴 나의 글이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일말의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독자들 모두 건강 백세를 누리는 한해가 되기를 바라며. - 머리말

추억이라는 이름

[머리글]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희극인들의 눈물겨운 과거사를 들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막 결혼한 누나의 원룸 신혼집에 부모와 자신이 얹혀살던 이야기를 하는 희극인은 요즘 잘 나가는 개그맨이다. 또 한 희극인은 어릴 때 부모님과 헤어져 보육원에서 생활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떤 클래식 연주자는 어린 시절을 밑바닥 인생으로 살다가 좋은 멘토를 만나 유명한 순수 예술인으로 성장했다. 뿐인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다는 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시절을 부모의 이혼과 마약 성폭행 미혼모 등 각종 악의 수식어로 살았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의 과거는 상처와 고난으로 얼룩진 게 사실이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위대한 인물들도 그렇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거를 따지고 현재를 과거의 잣대에 맞추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다. 과거가 현재의 나를 조종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어릴 때 나는 늘 고심했었다. 이다음에 나는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가. 그 뒤에는 내 아둔한 두뇌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어렸을 때도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참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누가 옆에서 지적해 주지 않아도 나 자신이 먼저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머리가 좋은 걸로 착각한다. 작가라는 이유 때문이다. 머리 지능지수와 상관없는 작가 인생을 나는 15년도 넘게 살아가고 있다. 이 문학무용론 시대에 전업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참 기적 같고 운명 같은 느낌이 든다. 든든한 경제 후원자가 없는 나로선 기적이고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글 쓰는 재주 외엔 잘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나는 돈 버는 재주나 능력도 없다. 그래도 생활은 해야겠기에 글 중독에서 벗어나 2년 반 동안 돈벌이에 매달려 살았다. 소설 한 편도 못 쓰고……. 지독한 돈 가뭄에서 벗어나고자 소설을 영원히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다 또다시 백수 신세가 되었고 다시 소설을 시작했다. 회복하는데 여러 날 걸렸지만 독자들은 전혀 눈치 못 채는 듯했다. 다시 소설 창작을 하는데 두 군데서 문학상을 받으라고 해 받았다. 전혀 예상도 못했는데 감사했다. 세상에 태어나 내가 인정받는 순간도 있구나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 은혜로 굶지 않고 살고 있다. 의식주 하나 걱정 않고. 내가 견디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덜 먹고 덜 쓰고. 창작과 기도에만 전념하면 돈 쓸 일도 없다. 세상은 불공평한 듯 보이지만 공평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 같은 사람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고 살아갈 길이 열리니 말이다. 세상에 미련한 자를 들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평한 은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는 ‘추억이라는 이름’은 내 12번째 창작집이다.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는 화려한 백수라는 단편 외에 12편이 실렸다. 나의 글들은 대부분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도 독자와의 공감을 기대하며 어려운 출판환경에도 책을 내주신 도서출판 한글의 아동문학가 심혁창 사장님께 감사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도 감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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