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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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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리버보이>

멍때리기

이 책은 애드리안 포겔린이 발표한 연작 소설들 가운데 하나다. 각 작품은 저스틴, 카스, 벤같이 이 책에도 등장하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그중에는 이미 국내에 소개된 작품도 있으니 이들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민망하지만, 번역자이자 독자로서 소통에 서툰 아이들 못지않게 소통에 서툰 어른들에게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번역하는 동안 주인공들이 영화를 보러 간 쇼핑몰이며 스케이트보드를 지치고 달리기를 하던 탤러해시 거리를 구글 스트리트뷰를 통해 산책하곤 했다. 키 작은 관목이 담장을 대신하고 가로수가 빽빽하게 줄지어 선 그 거리에도 이제 낙엽이 지고 있을까?

빌리 엘리어트

퀴즈 하나. 빌리 엘리어트와 토니 블레어의 공통점은? 정답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광팬. 윌킨슨 선생님이 오디션 안무를 준비하기 위해 빌리에게 영감을 떠올릴만한 개인적으로 소중한 물품을 가져오라고 주문했을 때, 빌리가 가방에서 엄마가 남긴 편지와 함께 주섬주섬 꺼낸 셔츠 한 벌. 흰색과 검정색이 교차하는 저 스트라이프 셔츠는 뭘까?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며 궁금해 했을 한국의 관객들, 몇 년만 일찍 박지성과 이영표가 프리미어리거로 영국의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TV로 보았더라면 그것이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홈경기 유니폼이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축구 클럽의 연고지 뉴캐슬은 <빌리 엘리어트>의 주무대인 아싱턴(작품 중 에버링턴)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다. 그 흑과 백의 스트라이프에 석탄가루 범벅된 광부의 얼굴과 하얗게 빛나는 치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면 그것이 오버일까? 일대에서 가장 큰 탄광지대였던 잉글랜드 북동부 더램주의 아싱턴은 그래서 1984-5년 광부 총파업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2기 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 수상은 산업 합리화를 구실로 20개 탄광 폐쇄와 2만 명의 인력 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을 강행하였고, 이에 맞서 1984년 3월 탄광노조는 파업에 돌입한다. 강성 노조 지도자 아서 스카길의 주도로 20만 명의 노동자가 1년이 넘게 이끌어온 장기간의 파업에도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대처는 마침내 노조의 항복을 받아낸다. 1984년 겨울 뉴캐슬에서 일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냈을 한 청년이 가슴에 품은 분노는 이렇게 해서 <빌리 엘리어트>의 모태가 된다. “당시 파업의 실패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 광부 공동체내의 다양한 알력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당시 상황을 쓰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일군의 노동자들에게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한 계급 전쟁이었죠. 이는 어린 시절 나에게 분노심을 남겼고 이후 나의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뉴캐슬에서 나고 자란 시나리오 원작의 저자 리 홀의 말이다. 한때 영국을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만든 원동력에서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도려내야 할 환부의 신세가 되어버린 탄광이 이 작품의 배경이라면, 죽은 아내가 남긴 유품인 피아노를 뜯어서 땔감으로 난로에 쑤셔 넣어야 할 가난한 파업 노동자 가정의 사내아이가 꿈꾸는, ‘축구나 권투나 레슬링’도 아닌 ‘중산층 계집애나 하는 짓’, 발레가 이 소설의 전경이다. 어떤 우여곡절과 얼마나 피나는 수련의 기간을 거쳤는지는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비딱하고 완강한 고정관념을 딛고 성장한 성년 빌리가 코벤트 가든의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백조의 호수의 주연으로 오른다. 하지만 우아한 상류층의 고상한 취미를 만족시키는 튀튀를 입고 깡총거리는 백조가 아니다. 깃털 달린 바지를 입고 힘차게 도약하는 근육질의 백조였다. 1995년 초연 직후 주류 언론에 의해 ‘게이들의 백조의 호수’(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로 조롱받은 그 백조 말이다. 이 백조는 어쩌면 <미운 오리새끼>의 백조일지도 모른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조롱과 따돌림을 당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고 하늘로 날아오른 백조. 세상에는 이런 많은 백조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날갯짓은 유난히 힘차고 당당하다. 힘차지 않으면, 당당하지 않으면 날아오를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소설 <빌리 엘리어트>의 저자는 이 시나리오와 영화에 무엇을 더하고자 이 소설을 쓰는 모험을 감행한 것일까?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것도 그렇지만, 원작 영화를 소설로 옮기는 작업에는 더욱 더 큰 위험성이 존재하리라 생각된다. 단순히 영화가 좋다고 그것을 단지 글로 옮겨놓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진부해질 가능성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진부함을 면하려면, 색다른 그 무엇이 필요할 터이다. 멜빈 버지스는 카메라 앵글이 놓친 부분을 날카로운 감각으로 포착하였고, 스크린에 공백으로 남아있던 부분을 섬세한 필치로 채워 넣었다. 그는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며, 장마다 서로 다른 ‘나’를 내세운 ‘다중 일인칭 소설’로 재구성했다. 인칭이 모두 ‘나’인 만큼 객관적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한편, 화자들이 여럿이므로 한 사건에 대한 여러 시각들을 제공한다. 따라서 객관적인 사건과 상황에 대한 설득력과 함께, 등장인물들에 대한 심리적 공감을 배가시킨다는 점이 이 소설이 주는 묘미라고 생각된다. 이쯤에서 저자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면, 멜빈 버지스는 1954년 런던에 인접한 미들섹스에서 태어나 대학입학준비과정에서 생물학과 영문학을 마치고, 짧은 기간 동안 지역 신문사에서 수습기자 생활을 거쳤다. 벽돌공을 비롯한 여러 임시직을 전전하면서도 줄곧 펜을 놓지 않았고 현재 맨체스터에 거주하면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쩌면 2001년 <빌리 엘리어트>가 영국에서 개봉되자마자 곧바로 소설화를 승낙한 배경도 '자기만의 섬에 갇힌 듯 언제나 공상과 혼잣말을 하며 지냈던' 자폐적인 유년기와 낙제생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던 암울한 청소년기를 거치면서도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자신 삶의 맥락과도 닿아있어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게다가 시나리오 작가인 리 홀과 그는 어쩌면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문제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작품활동을 추구해간다는 점에선 닮은 꼴이었다. 사회에서 부대끼고 좌초되는 청소년 문제에 코드를 맞추고 있는 버지스에게 있어서 성장은 가장 중요한 화두이며, 대체로 그의 작품 주인공들은 지독한 성장통을 앓는다. 그에게 카네기 메달과 가디언 문학상 동시수상이라는 대중적 명성을 안겨준 'Junk'에서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모와 불화로 가출한 소녀가 약물과 매춘으로 황폐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Doing It'은 십대 남자 아이들의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성적 모험과 우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 옮긴이의 말

빌리 엘리어트

한때 영국을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만든 원동력에서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도려내야 할 환부의 신세가 되어 버린 탄광이 이 작품의 배경이라면, 죽은 아내가 남긴 유품인 피아노를 뜯어서 땔감으로 난로에 쑤셔 넣어야 할 만큼 가난한 파업 노동자 가정의 사내 아이가 꿈꾸는, '축구나 권투나 레슬링'도 아닌 '중산층 계집애나 하는 짓'인 발레가 이 소설의 전경이다. 멜빈 버지스느는 카메라 앵글이 놓친 부분을 날카로운 감각으로 포착하였고, 스크린에 공백으로 남아 있던 부분을 섬세한 필치로 채워 넣었다. ... 객관적인 사건과 상황에 대한 설득력과 함께, 등장인물들에 대한 심리적 공감을 배가시킨다는 점이 이 소설이 주는 묘미라고 하겠다. - 정해영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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