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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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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역사를 바라보는 실학자의 시선>

조성을

1956년 경북 상주 출생. 1982년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정약용의 정치경제 개혁사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6년 현재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며, 한국 사학사학회 회장이다.

저서로는 《與猶堂集의 文獻學的 硏究》(혜안, 2004), 《조선후기 사학사연구》(한울, 2004), 《다산 정약용 연구》(공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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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年譜로 본 茶山 丁若鏞> - 2016년 9월  더보기

올해(2016년) 필자는 환갑을 맞이하였으며 《與猶堂全書》를 읽기 시작한 벌써 40년이나 된다. 하지만 이루어 놓은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다. 필자는 원래 학부 과정에서는 동양사를 공부하였다. 학부를 졸업할 무렵, 집안 형편과 나쁜 건강 상태로 대학원에 진학할 상황이 아니었다. 우연히 연세대학교 사학과의 김용섭 교수님을 뵙게 되어 연세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한국사 전공)에 입학하게 되었다. 교수님의 배려로 한국사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나, 한국사와 관련해서는 《與猶堂全書》 말고는 읽은 사료가 없었다. 그럼에도 서둘러 석사학위를 받을 욕심으로 “정약용의 신분제 개혁론”이라는 주제로 석사논문을 제출하게 되었다. 당시 학계에서는 실학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민족적” 그리고 “근대지향적” 성격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정약용의 신분관, 더욱이 노비관이 노비제를 옹호하는 매우 보수적이라는 논문들이 발표되어 있었다. 필자는 실학의 집대성자인 정약용의 신분관이 이와 같이 보수적이라면 실학의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牧民心書》 <辨等> 조 부분에는 그의 노비관이 보수적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구절이 확실히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헌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정약용 연구를 위한 자료로 일제시기에 간행된 《與猶堂全書》만 이용되고 있었을 뿐 필사본은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필자는 정약용 자신이 지은 (집중본)에서 “ 前篇, 後篇”이라는 구절을 《與猶堂全書》에서 발견하였는데, 일제시기에 간행된 《與猶堂全書》 시문집 부분에 수록된 (산문)은 전편과 후편의 구분이 없었다. 마침 규장각 소장 《與猶堂集》과 장서각 소장 《열서전수》에 포함된 부분을 살펴보니 각기 결질은 있었으나 양자를 합치면 《與猶堂集》 <雜文> 전편과 후편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의 결과가 (1984)이다. 이로써 내린 결론은 전편에 실린 글들은 유배 이전의 작품이며 후편에 실린 글들은 유배 이후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에는 전기작과 후기작이 있으며 <湯論>은 유배 이후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후기까지 진보적 관념을 유지하고 있었던 정약용이 후기에 보수적 노비관을 가질 수는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 그의 저작들 가운데 후기에 저술된 경학 주석서들을 통해 평등적 인간관을 후기에 체계화하고 있었음도 밝혀내었다. 그리고 《牧民心書》 조에 나타난 보수적 구절은 《酉山筆談》을 인용한 것이므로 정약용의 주장이라기보다는 큰아들 유산酉山 정학연의 견해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990년대부터는 전임교수가 되기 위해서 박사학위가 필요하였다. 이리하여 다시 서둘러 박사학위 논문 작업을 하였다. 역시 읽어본 자료가 《與猶堂全書》 및 관련 필사본 밖에 없었으므로 박사논문의 주제를 “정약용의 정치경제 개혁사상”으로 하게 되었다. 이것은 정약용 개혁사상 전반을 다룬 것이었으나 졸속으로 작성되어 매우 허술한 것이 되고 말았다. 지도교수께서는 “첫째, 명청 사상사 및 일본 에도시대 사상사와의 비교가 되어 있지 않고 둘째, 서양의 계몽사상과의 비교 역시 없다”고 지적하고 이후 출간 때에는 이점을 보충해야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조건부로 통과시켜 주셨다. 지도교수의 지적 말고도 필자 스스로는 정약용 이전 조선의 제반 개혁사상의 흐름을 주제별로 검토하면서 여기에 정약용의 개혁사상을 자리매김하지 못한 점, 개항 이후의 우리 사상사 전개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하는 데에 대한 전망을 갖지 못한 점,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변동을 몇 가지 단계로 나눈 뒤 여기에 정약용의 시대를 위치시키지 못한 점 역시 보충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이런 가운데 박사학위논문을 제대로 수정.보완하기 위해서는 정약용에 대한 더욱 철저한 연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또한 정약용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정약용 연구자가 적지 않음에도 그에 대한 기초적 사실이 망라된 체계적 연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7~8년 전부터 이 작업에 착수하였다. 물론 기존의 《茶山年譜》, <自撰墓誌銘(집중본)>, 《俟庵先生年譜》 등이 있지만, 이들만으로는 부족하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이들 자료는 이 책을 작성하는 데 기초 자료가 되었다. 이에 더하여 최근 우리나라에는 연대기 자료, 예를 들면 《朝鮮王朝實錄》, 《承政院日記》 같은 자료들이 전산화되어 검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중요한 관직을 역임한 사람을 연구할 때 이들 연대기 자료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의 작업은 여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최근 개인들의 문집이 많이 영인된 것에도 도움을 받았다. 이 밖에도 정약용과 관련되는 인물들의 문집을 검토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최근 새로운 연구들을 살펴보면서 필사본, 서찰 등의 자료에 대한 지견도 얻게 되었다. 비교적 오랜 시간을 투입하였으나 아직도 완벽과는 거리가 멀며 일부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혜안을 가진 분들의 질정을 바란다. 아울러 앞으로 정년까지 남은 5년 동안에 정약용 연구 삼부작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필자는 이전에 석사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문헌 검토와 중요성을 깨닫게 됨으로써, 정약용 필사본들을 차례로 검토하여 왔다. 그 중간 결산의 하나로 《與猶堂集의 文獻學的 硏究-詩律과 雜文의 年代考證을 중심으로》라는 책을 2004년에 내놓았다. 이 밖에 《尙書》 주석서 관련 문헌, 《我邦疆域考》, 《經世遺表》, 예학 관련 문헌, 《俟庵先生年譜》(현손 정규영 편) 검토 등의 작업을 하였다. 여기에 몇 가지 문헌학적 작업을 보충하고 이미 간행한 책과 합쳐서 《정약용 관련 문헌의 검토》라는 제목으로 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먼저 이번 기회에 《年譜로 본 茶山 丁若鏞-샅샅이 파헤친 그의 삶》을 펴낸 다음, 《정약용 관련 문헌의 검토》를 간행하고, 마지막으로 박사학위논문이 환골탈태한 모습을 갖고 《정약용의 개혁사상》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된다면 필자의 정약용 공부는 일단 마무리될 것이다. 이 책은 상업성이 전혀 없는 데에 더하여 교정 작업이 매우 까다롭다. 출간을 허락해 주신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님과 교정 작업을 꼼꼼히 도와주신 장인숙 선생과 김연주 선생께 감사드린다. 2016. 7. 8. 아주대 다산관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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