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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경허

출생:1846년 (황소자리)

사망:19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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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경허집 하 : 경허 EMPTY MIRROR>

경허

1846년 4월 24일에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다. 경허의 출생 연도는, 한암중원漢巖重遠은「선사경허화상행장先師鏡虛和尙行狀」에서 1857년이라 하였고, 만해 한용운은 「간략한 연보(略譜)」에서 1849년이라 하였지만, 경허가 광무 4년(1900)에 찬술한 「서룡 화상 행장瑞龍和尙行狀」에서 자신의 나이가 55세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1846년으로 추정된다.
경허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아홉 살 때 모친을 따라 상경하여 경기도 광주廣州의 청계사淸溪寺에 들어가 계허桂虛 스님을 은사로 삼아 삭발하고 수계하였다. 법명은 처음에는 동욱東旭이었다가 동학사에서 견성한 뒤 성우로 바꾸었다. 경허는 법호이다.
청계사에서 한 선비에게 『천자문』·『사략』·『통감』 등을 배웠고,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만화 강백萬化講伯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내외전內外典을 두루 읽었으며, 23세에 동학사의 강사가 되었다.
34세 때 환속한 은사 계허를 찾아가다가 당시 창궐한 콜레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 마을을 지나다가 무상을 통감하고 동학사로 돌아와 ‘여사미거마사도래화驢事未去馬事到來話’를참구하여개오하였으니,고종16년 기묘년(1879) 겨울 11월 보름께였다.
35세 때 속가의 형인 태허太虛 스님이 주지로 있던 홍주洪州 천장암天藏庵에 와서 보임하였다. 이 시기에 자신은 용암혜언龍巖慧彦의 법을 잇는다고 하여 자신의 법맥을 밝혔다.
이때부터 경허는 20여년동안 홍주의천장암, 서산의 개심사開心寺와 부석사浮石寺 등지를 오가면서 주석하였다. 53세 때 범어사에 선원을 개설한 뒤로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송광사 등 사찰에 선원을 개설하여 선풍을 크게 떨쳤다.
59세때안변군安邊郡 석왕사釋王寺에 이르러 오백나한개분불사五百羅漢改粉佛事의 증명법사가 된 뒤로 종적을 감추었다. 이후로 함경도 갑산甲山, 강계江界 등지를 떠돌며 박난주朴蘭洲라 개명하고, 속인의 모습으로 서당 훈장을 하다가 67세 때인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하니, 법랍이 58세이다.
경허는 음주식육에 걸림 없는무애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자기 수행에 철저했다. 또한 큰 도회지에 나가서 활동하면 신도들이 많이 따라 여불如佛 대접을 받으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발로 경성 땅을 밟지 않기로 스스로 맹서했다고 한 데서 그가 명리를 멀리한, 진솔한 성품과 곧은 지조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문하에서 수월 음관水月音觀, 혜월 혜명慧月慧明, 만공 월면滿空月面, 한암 중원 등 근세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들이 배출될 수 있었겠는가.
한국 불교는 보조普照, 서산西山 이후로 선교겸수를 표방하여 왔지만 대개 선이 교에 비해 우위에 있어 왔고, 조계종이 출범한 뒤로는 선이 절대 우위에 서게 되었다. 경허는 한국 불교사에서 근세 한국선의 중흥조로 일컬어진다. 따라서 근현대 한국선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임은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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