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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신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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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즙산학과 송명유학>

신현승

2021년 현재 중국 정강산대학井岡山大學 외국어학원 일본어과 교수. 일본 동경대학 동아시아사상문화 전공 석사 및 박사, 중국 천진사범대학 정치사상 전공 석사, 강원대 철학과 학사. 10년 간의 중국,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고려대 HK연구교수, 상지대 조교수 및 여러 대학 등에서 강의와 연구 활동에 매진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운명의 힘에 이끌려 중국으로 다시 건너가 지금은 동아시아 유교사상사 가운데, 강서 유학과 여릉문화(강서성 길안시)에 흥미를 갖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명대 말기 유종주와 지식인 네트워크』(2020), 『제국 지식인의 패러독스와 역사철학』(2015), 『한국을 다시 묻다』(2016, 공저) 등, 옮긴 책으로 『잔향의 중국철학: 언어와 정치』(2015), 『삼국지의 세계』(2011, 공역), 『송학의 형성과 전개』(2004), 『사대부의 시대』(2004),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2005, 공역), 『청년 모택동』(2005) 등이 있다. 그 외 수십 편의 동아시아 사상문화 및 유교철학 관련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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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명대 말기 유종주와 지식인 네트워크> - 2020년 10월  더보기

들어가는 말 중국 명대 말기에 활약한 유학자 유종주劉宗周(1578-1645)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명대 말기 환관 일파의 세력에 대항하여 활약하고, 명조明朝의 부흥에 노력하지만 끝내는 그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식음을 끊고 순절한 충의忠義의 유학자로 알려져 있다. 또 저명한 명말청초의 학자인 황종희黃宗羲(1610-1695)의 스승으로서 양명학 우파의 계통을 이어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독자적 철학체계를 세운 인물로서도 묘사되고 있다. 그 밖에도 유교 수양법의 근본으로서 신독愼獨과 성의誠意을 주장하고 명교와 절의를 중시한 학자로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확실히 그의 명성은 중국철학사에서 지금까지 널리 알려져 있고, 중국 송명유학사를 언급할 때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사적 위치와 평가 및 의의에 관해서는 아직도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주지하듯이 유종주는 왕수인(왕양명)과 나란히 명대 최고의 유학자로서 황종희의 극찬을 받는 인물이다. 일본 현대의 유명한 양명학연구자 오카다 다케히코岡田武彦는 그의 저서 속에서 동림파東林派의학문과 유종주의 학문을 평하여 “고경양顧涇陽(고헌성)·고반룡高攀龍을 중심으로 하는 동림학은 왕학王學(양명학)을 통과한 신주자학新朱子學이었지만, 유즙산劉·山(유종주)의 학문은 주자학을 통과한 신왕학新王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유종주상 혹은 이미지는 올바른 것일까. 또한 유종주는 어떻게 명대 말기 최고의 대유大儒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일까. 명대 전체의 유교사상계를 대표하는 인물은 왕수인이겠지만, 명대 말기가 되면 주자학과 양명학의 접경 지역에서 유종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명대 말기 유교사상계를 이야기할 때, 양명학 좌파(혹은 왕학좌파라고도 한다) 및 양명학 정통의 후계자를 자임한 황종희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크고 유명했던 것에 비하여 유종주의 존재는 그다지 크지 않고 미미하였다. 하지만 유종주의 존재를 간과해서는 명대 유교 학술문화의 전체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유종주의 몰후에 등장한 중국 최초의 체계적 유교학술사로 칭해지는 황종희의 『명유학안明儒學案』(1676)의 평가 속에서 유종주는 변함없이 양명학자라는 레테르(딱지)가 붙여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명유학안』의 초점은 심성론心性論에 있다. 바로 그 점에 의해 후세가 되어 유종주에 대한 평가는 ‘양명학자’로서 고정화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된 것이다. - (중략) - 이 책에서는 유종주의 사상 혹은 학문 형성의 배경으로서의 가족사 및 그 주변 인물들의 검토를 통하여 중국 명말청초 강남지역 지식인들의 학술·교유 및 그 성격의 일단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개 학자 혹은 사상가의 학문이나 사상은 그 사람이 생존한 시대·환경이나, 그 사람의 개성·교양·사람됨, 일상생활·인맥 등의 상관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입장에 근거하여 전개된다. 그래서 이제야말로 유종주의 사상체계를 이해하고자 함에 있어서는 이들 제 조건의 전체상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명말청초기라는 중국 근세사회의 일대 전환기에 초점을 맞추고, 이 동란기에 유종주와 그 주변 인물들이 그 학술 및 인적 교류를 통하여 어떠한 작용을 발휘했던가에 관하여 고찰하기로 한다. 또 이 시기의 유교사상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 관통하는 유교 이념의 주요한 요소의 추출을 시도하면서 그 분석으로부터 유종주 철학의 본질에도 접근하여 재검토를 진행하기로 한다. 관점 및 방법상 이 책은 유종주의 생애와 사상 형성의 배경으로서의 가족사 및 그 주변 인물들에 관한 사회문화사적 의의의 분석을 통하여 명대 말기 사상계의 한 단면을 사상문화사적 관점으로부터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이책의 과제는 다음의 두 가지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번째 과제는 16 17유종주의 사상 형성의 배경(=가족사)을 중심으로 하여 유종주 개인과그 주변 인물들과의 제 관계를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본론에서다룰 유종주의 가족사와 지식 및 인적 네트워크는 한 마디로 말하면 그의 개인사에서 고립해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은 그 주변 인물들과의 인맥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유종주의 학문세계가 인맥관계를 통하여 절강浙江·강소江蘇지역에서 전개되고 발전했다고 하는 점이다. 특히 절강지역에서 형성된 여러 형태의인맥관계는 그의 사상 혹은 학문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가장 기본적 관계라 할 수 있는 가족관계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의 학문세계는 사우師友관계 및 문인門人관계를 통하여 점차적으로 자기 사상의 구축이라는 길로 향해 나아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유종주의 학문세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어 나갔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즉 사상을 낳은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그 사상의 형성사적 관점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과제로서는 기존의 ‘주자학파’대 ‘양명학파’라는 대립 구도에서 조금 벗어나 파란만장하게 한 시대를 살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유종주와 그 문인들의 면면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그것은 인간의 사상이 결코 역사적 현실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 (중략) - 사실 종래의 유종주 사상에 관한 연구는 그의 철학 이론적 측면을 강조하고, 주자학과 양명학이라는 두 항목의 이분법적 분류의 범주를 시야에 넣으면서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종래의 연구에서는 대부분이 그의 신독·성의 개념에 관심이 집중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그래서 연구의 양상은 대체적으로 유학자로서의 유종주 개인의 관념론적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철학적 개념 분석에 관한 연구에 집중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기존의 유종주 연구에서는 문인집단, 지식인 네트워크(혹은 인적 네트워크), 가족, 종족 등의 학문 외적 요소에 대해서는 그만큼 관심이 덜하였다. 여기에서 필자가 말하는 지식인 네트워크는 본문에서 학술 네트워크, 인적 네트워크, 학술공동체, 문인집단, 학파 등등의 포괄적 관계망을 가리킨다. 가령 중국 근세의 유교사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어떤 유학자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외부의 사회적 환경을 나누어서 생각한다면 그 연구는 당시의 일상생활을 좌우한 역사적 상황에 접근해 갈 수 없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필자가 이 책에서 자주 ‘사상문화’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용어는 최근 일본의 중국학 연구 분야에서 유행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주관적인 사유로서의 철학개념의 틀 안에 머물지 않고 그 철학개념을 낳은 정치·경제·사회 등의 역사적 배경으로까지 파고 들어가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용어이다. 따라서 이 책이 의도하는 바도 주관적 관념론으로서의 철학을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명대 말기청초기 ‘사상문화’의 한 단면을 유종주라는 유학자와 그 문인들에게서 찾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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