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턱이다.
내가 낳은 ‘소설’이라는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老産으로 겨우 세상에 나왔는데
터울마저 띄엄띄엄하다.
그 누구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나도 잊을 정도로 방치했었다.
할 말도 안 할 말도 때가 있다고
소설로 불러낸 인물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오래된 시간으로 들어가서
나와 마주했던 그들에게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인생이 하찮은 게 아니듯이
변하는 것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나
시간이 지나면
다 오래된 것이 된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 자식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드물어도 괜찮다.
나 역시 내 자식들에게
칭찬도 연민도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