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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노은님

최근작
2016년 10월 <눈으로, 마음으로>

노은님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나 1970년 독일로 이주했다. 함부르크 시립외과병원에서 개최한 전시회를 계기로 클레와 칸딘스키의 바우하우스 직계 제자였던 한스 티만 교수에게 발탁되어 1973년 국립 함부르크미술대학 회화과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했다. 한스 티만과 카이 수덱 교수의 지도로 1979년 졸업 후,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1982년 함부르크시 미술장학금과 본 쿤스트퐁즈 정부장학금, 1984년 봅스베데 장학금과 레지던시, 1985년 뮌헨 발트베르타 레지던시, BDI 미술상 등 권위 있는 예술가 지원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화가로서의 명성과 입지를 굳혔다. 1980년 함부르크 파브릭 ‘누구를 속이느냐’, 1985년 베를린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전시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르네 블록과 로버트 필리우가 총감독을 한 함부르크 쿤스트하우스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요셉 보이스, 백남준, 존 케이지, 솔 루윗 등과 함께 초대받았다. 본 미술협회 창립자 겸 독일을 대표하는 미술평론가 아넬리 폴렌은 그녀의 작품을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고 높이 평가했다. 1990년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되어 2010년 정년퇴임했으며, 현재 함부르크와 미헬슈타트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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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물소리, 새소리> - 2007년 7월  더보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 듯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다. 어느덧 나이 60이 되고 독일에 온 지도 37년이라는 긴 세월이 금세 가버렸다. 나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함부르크에 도착한 후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먹는 것, 자는 것, 걷는 것, 말하는 것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했다. 이때 나는 많은 시간을 깊은 고독과 수없는 방황 속에서 마치 큰 벌을 받는 사람처럼 지냈다. 외로워서 괴로웠고, 괴로워서 외로웠다. 나는 그 덕에 많은 그림을 그려냈다. 이때 내개 바라던 것 딱 하나,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이 어느 날 내 그림 속에 같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 예술은 내게 무한한 사랑과 늘 오래 참고 견디는 힘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내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잘 조화되어 있어 질서정연함 속에서 내가 함께 가고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역마살이 잔뜩 낀 덕에 이 세상 한 바퀴 반을 거의 돌았다. 내가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즐거움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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