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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작가파일 > 알라딘이 만난 작가 : 황경신
2009-04-20

  "뭐야 월간 페이퍼 본사에서 인터뷰라고? 유명한 잡지 아닌가! 그럼 대단히 찾아가기 쉽지 않을까?!" 라고 자신있게 나선 두 MD. 길을 헤메다 전화를 드리니, 안내를 하시면서도 걱정이 많으십니다. 긴가민가 겨우 찾아갔더니 지각. 10여 분 늦게 시작한 인터뷰 내내 활짝 웃으셨던 황경신 씨와의, 무려 '운명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인터뷰 | 알라딘 도서팀 조현정, 최원호)


"황경신이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썼다."

알라딘 : 기존에 내신 책들은 주로 일상이나 우리 자신의 직접적인 삶에 연관된 주제가 많았는데요. 거기에 비추면 이번에 신화에 관련된 책이 나온 것은 약간 색다른 선택인 듯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황경신: 딱히 뭘 해야겠다라고 계획을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책을 자꾸 읽다 보니까 자꾸 고전 쪽으로 흘러가고 있더라고요(웃음).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들을 읽다 보니 그 원류가 어딜까 하고 궁금해졌어요. 그 원류가 신화잖아요. 그 실체가 겉으로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신화는 어떤 이야기의 원형성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 것 같아요. 독서가 점점 고전을 향해 가고 있을 때는 그 원형성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생기니까요. 본질, 원형, 뿌리, 그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죠.

알라딘: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여전히 특유의 감성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신화 이야기와는 다른 느낌이 강한데요.

황경신: 신화에 대한 책들을 한 서른 권쯤 사서 읽고 있었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까 자꾸 딴 생각이 드는 거예요(웃음). 기존에 신화 속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것들과는 다른 생각이 들고 궁금증이 생겼어요. 예를 들면 <그림 같은 신화>에 수록된 미노타우루스 이야기가 그래요. 신화 속에서는 단지 괴물 조연에 불과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미노타우루스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얼마나 고독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판도라 같은 경우도 그래요. 판도라는 왜 상자를 열었을까? 연 뒤에는 어떻게 됐을까? 그 때 어떤 기분이었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같은 것들이죠. 마침 이전에 출판사와 그림에 대한 책을 낸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같이 해 보자고 얘기가 됐어요. 그래서 연재부터 시작했어요.

알라딘: 주로 여성 캐릭터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 같은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황경신: 제가 남자가 아니라서 남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요(웃음). 신화 속에서 남자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행동 우선적인 느낌이 있고, 여자(신 말고 인간)는 그에 반해 좀 더 수동적이면서 비극적이고 운명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더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아요.

알라딘: 그렇다면 지금 현실에 비추어서도 여성에 대한 그런 연민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황경신: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바뀌었잖아요. 성별에 따른 문제라기보다는 남녀를 떠나서 약자의 입장을 더 생각하게 돼요.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던 운명이란 점에서는 닮아 있고. 우리도 자신이 선택한 운명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알라딘: 수동적이라는 건 그런 의미군요? 운명론에 가까운...

황경신: 네. 그런 셈이죠.

"신화는 운명의 다른 이름이다."

알라딘: 신화라는 것도 결국 운명의 의인화에서 시작된 거라고 볼 때, 중요한 건 그렇다면 황경신 씨께서 생각하는 운명이란 뭘까, 궁금해집니다. 갑자기 장황한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웃음).

황경신: 운명이라... 있기는 있다. 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보통 생각하는 운명론 같은 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말하자면 우리가 작은 것들, 사소한 것들은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때로는 맞서서 저항할 수도 있겠죠. 이 작은 것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것 같아요. 신화도 그런 것들 중에 살아남은 이야기일 테고요. 그 스토리들이 운명이 아닐까 해요. 때문에 운명은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고 봐요. 아, 물론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와는 달라요. 예를 들자면 암 환자가 있는데 의사가 6개월이 남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위험 부담이 있는 수술을 하겠냐고 묻는 거죠. 그 때의 선택의 기로 같은 것. 매 번 선택이 쌓여가는 게 운명이 아닐까 해요.

알라딘: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하지만 그 결과는 알 수 없는 이야기 같은 거네요.

황경신: 네 그렇죠.

알라딘: 결과와는 관계없는 매 순간에의 집중이라면,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마치 시지프스의 이야기 같아요.

황경신: 아, 그거 너무 슬픈 얘기잖아요. 영원히 거기서 돌을 굴리고 있고... 그런데 좀 떨어져서 보면 누군가의 눈에는 우리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죠. 본인의 입장에선 여기서 저기까지 옮기는 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데 다른 이가 보면 하찮을 수 있죠. 그래도 그 의미가 중요한 거예요. 의지를 갖고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음, 사실 아무 것도 안할 순 없으니까요? 마감도 해야 되고, 원고도 써야 하고. (일동 웃음)

알라딘: 이번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인물은요?

황경신: 다 애정이 있어요. 원래 월간으로 연재된 거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는 인물을 쓸 수가 있었겠어요. 그래도 역시 골라야겠죠? (웃음) 우선은 프시케. 원하는 걸 쟁취하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잖아요.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하면서요. 아까 운명에 대해 얘기한 걸로 보면 프시케의 ‘선택들’은 정말 대단해요. 또 꼽아보자면 시빌레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긴 시간을 버텨낸 것. 음, 물론 아폴론의 제안을 거절했을 땐 그렇게까지 고생할 줄은 몰랐겠지만요.(웃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그 긴 시간동안 의연하게 예언자의 역할을 다한 모습이 정말 멋져요. 생각을 굉장히 오래했던 캐릭터죠.

알라딘: 원래 연재물로 실렸을 때와 내용이 달라진 부분도 있나요?

황경신: 2007년부터 연재했던 글이라 그 사이에 생각이 변한 것들이 있어서 조금씩 달라진 부분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아프로디테가 거품에서 태어났잖아요. 그래서 아프로디테 이야기를 처음 연재물로 썼을 때는 거품처럼 덧없다, 아름다움이란 그렇게 덧없고 무의미하다고 썼어요. 그런데 책에 보면 그림에 딸린 짤막한 코멘트가 있잖아요.

알라딘: 맥주 거품 이야기요?

황경신: 네 맞아요. 거기서 어떤 시인, 아, 그 분은 정현종 선생님이세요. 그 분이랑 맥주를 마시면서 거품 얘기를 제가 꺼냈거든요. 그러고 덧없다는 얘기를 이으려는 순간에 그 분이 말씀을 하신 거예요.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이 거품들이야말로 거룩하다고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저는 거품은 그냥 사라지고 허무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른 개념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얘기를 책에다 추가했어요.

알라딘: 그럼 그 코멘트 외에 본문은...

황경신: 아, 본문은 거의 수정하지 않았어요. 논조 자체는 사랑이 좀 허무하다 이렇게.

알라딘: 혹시 글을 쓰게 된 것도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하진 않으세요?

황경신: 그렇게 거창하진 않아요. 말하자면, 운명은 작은 결정들이 모여서 어느 길을 향해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거룩한 사명 같은 걸 받는 게 아니라 작은 선택지가 계속 이어져 길을 만드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그 길이 어떤 풍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죠. 예를 들어 제가 이 책을 쓰고 그 이전에 신화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래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것들이 거기(신화)로 저를 데려갔을 거예요. 이를테면 아주 예전에 셰익스피어같은 작가들이 있었고, 책이 있었고, 그 책을 제게 소개해 준 사람들이 있었고, 읽을지 아닐지 제가 선택을 선택했던 것이고.,. 이것도 여정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해요.
아, 라디오에서 들은건데, 되게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 외국 사람인데, 잡다한 일들을 끝없이 배운 사람이 있었대요. 당장 쓸 일도 없고 어디 쓰일지도 모르는 채, 라틴어도 배우고 악기도 배우고 목공 일도 배우고 하면서 전혀 연결 고리가 없는 일들을 했던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우연히 박물관에 갔는데 거기 어떤 고악기가 있었대요. 하도 오래되어서 악보도 없고 사용법조차 다 잊혀진 악기였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악기를 보는 순간, 자기가 이 악기를 되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예전에 배운 지식으로 그 악기에 대한 고문서도 뒤지고, 작곡을 배운 지식으로 곡도 만들고, 음악이라든가 목공 일이라든가 이 모든 일들이 다 도움이 되어서 그 악기를 다시 살려낸 거예요. 그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지금까지 인생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라고 알게 됐대요. 그 하나하나의 기술을 배울 때는 아무 목적이 없어 보였는데, 어떤 소명이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이렇게 뭔가를 쌓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뭔가를 이루는 것 그 자체 같아요. 물론 행운도 필요하겠지만요.

알라딘: 재밌는 얘기네요. 근데 소명을 못 찾거나 못 이루면 어떡하죠?

황경신: 아. 어떡하면 좋을까? (웃음) 지금 자기가 관심이 없는 분야라고 해서 도외시 하면 안될 거 같아요. 지금 내게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낸다고 해도, 결국에 어떤 일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제가 대학 다닐 때 화실을 다니 적이 있었어요. 배우기 시작할 때 드는 생각은 ‘나는 무조건 유화야!’ 였어요. 꼼꼼하게 선을 하나하나 긋는 세밀화는 아무리 봐도 내가 못할 것 같고, 아그리파 소묘 같은 건 똑같은 걸 왜 그리는지 이유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이상하게도 굉장히 세밀한 펜화가 저한테 맞더라구요. 역시 해봐야 아는 거에요. 석고 데생 같은 경우에도 자기 모습이 들어갈 수밖에 없대요. 그래서 그림마다 느낌이 다 다른 거겠죠.

"그리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알라딘: 그러고 보니 밴드도 하셨고, 여러 가지에 많이 도전하고 즐기신 것 같아요. 다재다능하다고 할까요.

황경신: 아니 다재다능한 건 아니구요. (웃음) 이것저것 다 좋아하는 거죠.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남자들은 축구를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편이 즐겁다면서요? 마찬가지예요.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 너무 좋지만 제가 못하는 실력으로라도 슈베르트나 바흐를 쳐보면서 다이렉트로 교감하는 게 있어요. 그 느낌은 굉장히 다르고 소중한 것 같아요.
재즈피아노를 배울 때는 가르쳐주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음을 채우기보다 비우기가 어렵다”라고요. 채우는 것보다 비우기가 어렵단 말은 피아노뿐 아니라 모든 것에도 통용되는 말이잖아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고. 그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리얼리티에서 나오는 무게가 있잖아요. 다른 세계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알라딘: 여러 일들에 도전하는 데 있어서 기준이 있나요?

황경신: 아니요 그런 건 없어요. 저는 ‘20대에 꼭 해야 할’ 뭐 이런 걸 싫어해요. 꼭 해야 할 일, 무조건 해야 할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정해진 걸 따를 필요가 없잖아요. 겁내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제가 배우는 걸 좋아해서 작년 여름 즈음부터 플라멩코를 배우고 있는데 처음에는 눈치를 봤어요. 주변에선 용감하다는 반응을 하고, 춤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그런데 좀 있다 보니까 그럴 필요가 없더라구요. 다들 자기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다른 사람을 볼 틈이 없어요. (웃음) 보통 못하면 누가 뭐라 그럴까봐 눈치 보는 것 있잖아요. 그럴때 ‘뭐라 그럼 어때!’라는 게 제 입장이죠. 제가 댄서도 아니고 원래 처음 시작할 땐 다 못하는 거죠, 뭐. (웃음) 전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계속 해야죠.

알라딘: 그런데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황경신: 네 그래요. 제 친구들이 저한테 물어봐요. “그거 재밌어?” 그러면 저는 “응 되게 재밌어. 너도 해.” 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못하겠다면서 여러 가지 이유가 나와요. 회사가 늦게 끝나서, 나이가 너무 들어서 같은 이유로 ‘하고 싶지만 못 하겠다’라고 해요.

알라딘: 그럼 그 행동력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비법이라도? (웃음)

황경신: 그냥 겁이 없는 거죠. (웃음) 그냥 저지르는 거죠.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더 시도해 보는 건 그렇게 엄청난 시도도 아니에요. 그런데 실패가 뭐가 두려워요? 잃을 거라고는 시작할 때 드는 돈 얼마하고 시간 약간 정도잖아요. 그게 두려워할 정도의 피해는 아니잖아요. 왜 작은 것들에도 그렇게 몸을 움츠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하면, 어느 순간 가능하게 돼요. ‘뭐 어때~~’ 죠. (웃음)

알라딘: 사실 요즘 젊은이들은 앞에서 말씀하신 ‘안 좋은 케이스’에 둘 다 속한 경우가 많습니다. ‘꼭 해야 할 일’ 같은 리스트를 열심히 탐독한다거나, 아니면 지레 겁을 먹고 자기 인생의 가능성을 좁혀버리거나 하는 거죠. 지금처럼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나요?

황경신: 저는 대학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 다녔어요. 그런데 일이 재미가 없어서 친구따라 우연히 잡지사에 원서를 내게 됐고, 몇 번의 이직을 했었어요. 그 때마다 선택의 기준은 ‘월급이 좀 적더라도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거였어요. 사람마다 가치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만약 다른 기준을 가졌다면 완전히 다른 길로 갔겠죠. 특별히 제게 문단의 뜻이 있어서 작가가 되려 했던 건 아니고 살면서 선택의 와중에 글을 쓰게도 된 거죠. ‘페이퍼’를 만들면서 자유롭게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었고, 쓰면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도 알게 됐고 책으로도 내게 됐죠.

알라딘: ‘페이퍼’를 보면 주로 감성적인 글을 잘 쓰시는 것 같아요.

황경신: 사실 개인적인 고민이 있어요. ‘소녀티를 좀 벗어야 겠다’라는 생각이요. (웃음)
제가 소설이나 짧은 글들을 많이 썼지만, 본격적인 소설이라기보다 내면의 고백같은 제 얘기가 많았어요. 어떤 캐릭터를 창조해서 한 인물에 대해 파고드는 작품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른 작가분들의 책을 보면서 그런 걸 깨닫게 돼서 지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염두에 두는 부분은 캐릭터, 그 다음이 구성이에요. 지금까지는 주로 스토리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이제 다른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알라딘: 글 쓰는 스타일이 달라진다고 하면, 비유할만한 작가가 있을까요?

황경신: 범접할 수 없는 작가지만(웃음) 제인 오스틴을 좋아해요. 책이 굉장히 재미있고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잖아요. 여러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주인공들을 보면 알 수 있는 느낌이구요. 다른 예로 돈키호테 같은 경우에도, 창조된 인물이지만 돈키호테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식으로 말하고 행동할지 상상할 수 있잖아요. 캐릭터가 살아 있어요.

알라딘: 고전을 많이 읽으시네요. 꼭 읽어야 할 책은 아니더라도(웃음) 추천하고 싶으신 책이 있을까요?

황경신: 책이란 게 취향이 너무 달라서 모든 사람이 읽어서 다 좋은 책은 없잖아요. 저만 해도 저 한 명인데 시기에 따라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책 추천이라고 하면 굉장히 고민이 돼요.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알라딘: 그럼 지금 읽고 있는 책은요?

황경신: 저는 늘 고전을 다시 읽길 좋아해요. 어제는 <폭풍의 언덕>을 다시 다 읽었고 모파상 단편집을 들고 다니면서 지하철에서 읽어요. <폭풍의 언덕> 다음으론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읽을 예정이에요. 민음사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해요. 최근에 읽는 책들이 <춘향전>, <채털리 부인의 연인>, <보이지 않는 인간> 모두 재밌게 봤어요. 우리가 어릴 때, ‘청소년 권장 도서’라면서 권유받는 책들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책을 읽곤 했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던 거에요. 그런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번역의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영어 번역하는 사람도 드물어서 영문판이 아닌 일본판을 가져다 다시 번역을 했어요. 걸리버 여행기의 경우에도 완역판이 나온 지는 오래되지 않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어렸을 때 읽었는데 이미 싫게 되는 책들을 새로 읽어보면 좋을 거 같아요, 사람들이. <위대한 개츠비>도 그렇고 <호밀밭의 파수꾼>도 그렇고 ‘청소년 권장 도서’라는 오명을 쓰고(웃음) 도외시 됐던 책들을요.

알라딘: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황경신: 5월쯤 책이 두 권 더 나와요. <유령의 일기>라는 장편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미발표 글들을 엮은 15편의 사랑 동화에요. 2,3년 전부터 준비했던 책들인데 올해 한꺼번에 출간되게 됐어요.

알라딘: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시네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눈에 띈 작은 책장. 거기에는 놀랍게도 새와물고기 출판사에서 나온 <은하수-히치하이커>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지 않겠어요. 보기 힘든 책이라고 말씀드리니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고 하면서 기뻐하십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시기를. 그리고 우리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서울문화사에 입사하여 「무크」 기자로, 1992년에는 디자인하우스의 「행복이 가득한 집」 취재기자, 「이브」 수석기자로 활동했다. 1995년 11월 'PAPER'를 창간했고, 2008년 현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 그를 만난 것일까』, 『솜이의 종이 피아노』, 『모두에게 해피엔딩』, 『그림 같은 세상』, 『초콜릿 우체국』, 『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슬프지만 안녕』, 『밀리언 달러 초콜릿』,『세븐틴』 등의 책을 펴냈다.

<그림 같은 신화> 도서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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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바로가기야클  2009-06-28 13:53
음... 헤어스타일이 많이 바뀌셨네. 내가 워낙 황작가님 옛날 사진들만 봐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