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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작가파일 > 알라딘이 만난 작가들 : 아마미야 카린 + 우석훈
2009-5-11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흔히들 대중문화(와 오타쿠)의 천국, 프리터의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하지만 오늘 일본 젊은이들의 삶은 어떨까? 많은 저서와 활발한 활동 독특한 이력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일본의 사회운동가 아마미야 카린과 <88만원 세대>로 한국 사회에 많은 담론을 낳게 한 우석훈 선생을 만났다. (인터뷰 | 알라딘 도서팀 금정연, 사진제공 | 꾸리에북스)


일본에선 프리터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알라딘 : 2008년 여름 이후 한국 사회에는 정치경제적으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다시 찾은 서울에서 그런 것이 느껴지시나요?

아마미야 카린(이하 카린) : 아직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직접 거리에서 부딪히며 실감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용산 참사 현장에 들렀습니다. 많은 분들이 희생된 장소. 그곳에서 가장 크게 느꼈습니다.

알라딘 :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일본에서는 프리터로 살아도 생활이 가능하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성난 서울>에서 본 일본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는데요. 최근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요?

카린 : 분명 일본에서도 과거에 그런 분위기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젊은이들을 ‘무임승차’ 해서 살아가는 ‘하류지향’의 인간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프리터는 결국 워킹 푸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석훈 : 결국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노동해체는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일본도 심각하긴 하지만, 한국은 더 잔인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흔히 표현하는 ‘빈곤의 약한 고리’. 한국은 지금 그곳이 붕괴되고 있어요.

알라딘 : 그래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프레카리아트’ 운동이라고 들었습니다. (‘불안정한’precarious+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신조어) ‘프레카리아트’ 운동의 목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인가요?

카린 : 물론 대부분 정사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구조상 그런 것은 불가능합니다. 비정규직이라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석훈 : 한국의 경우에는 국민소득과 비교해서 거주비와 각종 사회간접비가 너무 높습니다. 결혼을 해서 출산을 하려고 해도 경제적으로 쉽지가 않아요.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에요. 그래서 저는 궁극적으로는 정규직으로 복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논의와 협의가 필요하겠지만요.

알라딘 : 하지만 지금의 구조 속에서는, 정규직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비정규직보다는 물론 상황이 낫지만, 대부분의 경우 높은 사회간접비를 겨우 댈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요.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여유가 없다고 느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적인 논의와 협의가 가능할까요?

우석훈 :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지금 존재하는 정규직들도 파도에 휩쓸리듯 떠내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 정규직이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거지요.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분명히 과정이 필요합니다.

알라딘 : 당위와 실현에는 괴리가 있을 텐데요.

우석훈 : 사회의 합의가 필요한 거죠. 개개인들이 모두 공존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게 된다면, 협동이나 조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극우펑크밴드에서 좌회전

알라딘 : 말씀하신 사회적인 합의를 위해서는, 제가 생각하기엔 한 차례의 ‘도약’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상상력의 대전환 같은. 아마미야 카린 씨는 극우파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활발한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카린 : 극우펑크밴드 활동을 했어요. 원래 우익적인 성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시점이 버블경제가 붕괴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저 역시 프리터가 되었지요. 사회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익은 어려웠고, 우익은 쉬웠지요. 2년 간 활동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기간 동안 좌우의 생각을 모두 접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알라딘 : 말씀 중에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 있네요. 좌익은 어렵고 우익은 쉽다는 이야기는 한국은 물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도 보이듯 미국과 일본까지, 모두 공통된 지적인 것 같습니다.

우석훈 : (웃음) 코드와 레토릭의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좌익은 레토릭이 많아요. 봐야할 것도 많죠. 코드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반면 우익은 단순해요. “너만 잘하면 된다”라는 거죠. 대신 우익의 논리 뒤에 정신적인 대안은 없습니다. 출발점에서 선택을 할 때, 우익 쪽이 진입장벽이 없는 셈이죠.

알라딘 : 그렇다면 좌에서 우로의 ‘전향’은 있어도, 반대는 없는 현실이 설명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라면 오히려 낮은 문턱으로 인해 우익으로 시작했다가 정신적인 공허함을 느끼고 ‘좌회전’을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우석훈 : 지난 10년 동안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특징이 바로 돈이죠. 예전에는 아무리 자본주의라고 해도 돈 그자체가 가치가 된 적은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지금은 돈이 대안적인 가치이고, 이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라 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알라딘 : 일본은 어떻습니까? 카린 씨 외에도 급격한 좌회전을 하신 분들이 계신가요?

카린 : (곰곰 생각하다) 일본에서도 별로 없습니다. 반대 방향은 많지만…

우석훈 : 프랑스도 마찬가지에요. 개발주의자에서 녹색당과 같은 생태주의자로 가는 경우는 있지만. 유럽에서도 녹색당 말고는 그런 경우를 찾기 힘듭니다.

알라딘 : 그렇다면 사회는 점점 더 우경화가 될 수밖에 없는 건가요? 아무래도 균형은 필요할텐데요.

우석훈 : 결국 뭉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개인이 풀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자유주의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죠. ‘세계를 위해서’라는 말은 통하기 힘듭니다. 다만 ‘자신을 위해서’라도 일단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면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서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술은 두 번째죠. 그게 80년대, 과거와는 다른 점이에요.

카린 : 아까 우익에서 좌익으로 전향을 말씀하셨을 때 ‘없다’고 대답한 건 그렇게 극적인 전향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경화가 진행된다고 하는 와중에서도 좌익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우경화된 젊은이조차도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애국’을 위해서지요.

우석훈 : 한국도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좌-우가 분명하지 않아요. 독도나 축구 같은 스포츠 쇼비니즘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나잖아요. 분명 미분화된 상황이 있습니다.

'당신의 미래에 파업하라'!

알라딘 : 한국의 20대들은 10대에 IMF를 겪은, IMF 세대입니다. 그 상황에서 승자독식체제라는 경쟁구도를 완전히 내면화하는 학습을 받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만은 않은데요, 일본은 어떤가요? 젊은 친구들이 자기들의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습니까?

카린 :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들 수 있어요. 노동조합과는 관계없이 자기들끼리 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메이데이와는 별개로 ‘인디즈 메이데이’라는 비정규직 중심의 메이데이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비정규직인 관계로 조직화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느슨한 형태로라도 서로 연관이 있고, 알고 있기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석훈 : 우리나라에도 비정규직 노동센터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문화적, 정치적으로 아직 멀다고 봅니다. 당사자인 아르바이트 생 중에서 리더가 나오는 게 필요해요. 전문가나 학자 기존 노조 등등은 사실 문화가 맞지 않습니다. 도와줄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자발적으로 리더가 등장해야 합니다. 일본도 내생적으로 등장했듯이.

2년 전 노동센터에서 ‘당신의 미래에 파업하라rage against the future'라는 기획을 진행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정작 알바들은 모르고, 생각보다 메시지를 전달할 길이 별로 없어요. 인터넷도 활성화가 잘 안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알라딘 : 말씀을 들으니 젊은이들에게는 적절한 ‘롤모델’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카린 씨는 멋진 롤모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어떠세요?

카린 :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정말 황송하고 기쁜 일이지요. 제가 느끼기에는 한국과 일본에 공통된 부분이 많습니다. 일본의 경우 93~94년 즈음에 버블이 붕괴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이 상황을 넘길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고, 사회 전체적으로 ‘새로 열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지요.

그때 20대를 보냈던 일본인들이 시간이 흐르고 30대가 되어 비정규직이 되고 홈리스가 되면서 운동이 시작 되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들이 자라서 더 큰 문제와 대면한다면 새로운 것들이 시작되지 않을까요?

알라딘 :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 친구들에게 좋은 말 좀 해주세요!

카린 : 조금 더 난폭해지세요. 조용히 참고 있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의 붕괴 이후 10년 동안 참았어요. 그러는 동안, 내 친구가 홈리스가 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좌절 끝에,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터트릴 분노가 있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분노하세요. 고맙습니다.

알라딘 :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우석훈 선생님은 혹시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우석훈 : 아 전 시간이 있습니다.

알라딘 : 네, 그럼 우석훈 선생님은 2부에서 뵙겠습니다.

우석훈 선생과의 2부를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작가, 에세이스트, <주간금요일> 편집위원, ‘반反빈곤 네트워크’ 부대표. 일본 신사회운동의 기수로 알려진 아마미야 카린의 삶의 이력은 매우 독특하다.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그녀는 10대가 되기 전 따돌림을 경험한 바 있고, 초등학교 때는 레즈비언 행동을 하기도 했으며, 사춘기 시절에는 가출을 일삼으며 비주얼계 밴드를 쫓아다녔다. 한때 인형작가를 지망했지만 건강 문제로 좌절, 손목 긋는 일을 반복. 대학입시에서 떨어지고 재수할 무렵에는 아르바이트 일터에서 며칠 만에 해고되는 일이 연속되자 자포자기,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스무 살 때부터 우익활동에 투신. 극우파 펑크록 밴드 ‘유신적성숙’(維新赤誠塾)을 결성해 보컬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좌파 감독 쓰치야 유타카 감독의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새로운 신〉에 직접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참여하게 되고, 이 자기 반추의 경험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전환. 이후 자신의 파란만장한 체험을 기초로 한 작품 《생지옥 천국》이 주목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한다. 극단을 오간 삶이었지만, 그녀의 감성을 이루는 기반은 ‘고단한 삶’의 경험. 갈수록 심각해지는 격차 사회 속에서 절망적인 처지로 내몰린 젊은 세대 운동에 뛰어들어 왕성한 활동을 전개한다. 빈곤과 생존을 요구하는 운동에는 좌와 우가 없다며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주도하면서 이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다. 저서로는 <생지옥 천국>, <자살의 코스트>, <살게 하라! 난민화하는 젊은이들>, <살아내기의 어려움에 대하여>, <살기 위하여 반격하라> 등 30여 권이 있다.

경제학자.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경제학이 나를 밥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었고, 인류학이 학문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면, 생태학은 나에게 평온을 가져다 준 것 같다”고 말하는 우석훈은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인문주의 경제학자이다. 서울 태생으로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인생의 4분의 1을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에서 보냈다. 귀국해서는 현대그룹계열인 현대산업연구원에 들어가 일했으며, 유엔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으로 국제협상에 참가하는 등 공직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 진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하여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삶을 선택. 어떤 정파나 집단의 이해에도 구속당하지 않고, 경제와 사회, 문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왕성한 글쓰기를 지속해 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나머지 삶의 반은 땅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40대 이후의 귀농하는 삶을 열심히 구상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사유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연민이다. 현재는 중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생태적 지혜’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정리하는 <생태 페다고지> 를 집필하고 있으며,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 등 젊은 세대가 마주친 당면한 불안한 삶과 빈곤의 문제에 대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강의하고 인터뷰하는 등 20대 당사자 운동의 방향과 연대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저서로는, 경쟁 사회의 벼랑에 내몰린 한국의 20대에게 자기 세대의 이름을 찾아줌으로써 ‘한 시대의 책’ 된 <88만원 세대>을 비롯하여,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촌놈들의 제국주의>, <아픈 아이들의 세대> 등 다수가 있다.

<성난 서울>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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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바로가기활자유랑자  2009-05-15 13:43
앗! 이런이런 수정했습니다! (실은 오늘에야 업데이트 되었어요;)
 
서재바로가기tozee투지  2009-05-14 05:04
우석훈 선생과의 2부가 연결 안되요. 목수정씨 기사가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