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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작가파일 > 편집부이 만난 작가들 : 김두식
2009-05-26

 

이 인터뷰는 창비 인문사회출판부 편집부가 <불멸의 신성가족>을 출간한 김두식 교수를 지난 5월 초 이메일로 인터뷰한 것으로 출판사의 동의를 통해 알라딘에 개재한 것입니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원 안팎 인사 스물세명을 심층 면접하고, 이들의 육성에서 우러나온 사법계의 현실을 집필한 책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법조계의 변화된 모습과 여전히 과거를 답습하는 사법시스템, 그리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법조계 내부의 문제점을 김두식 교수 특유의 직설적이면서 풍자 넘치는 글에 담은 책입니다. (인터뷰 | 창비 편집부, 편집 | 알라딘 금정연, 사진제공 | 창비)


편집부 : 선생님 반갑습니다. 현재 미국에 장기해외출장을 가 계셔서 직접 찾아뵙지 못하지만 이렇게 이메일로나마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지난 2004년 출간된 <헌법의 풍경>(교양인)이 던져준 파문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텐데요. 먼저 이번에 <불멸의 신성가족>을 출간하시기 전까지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김두식 : 제가 원래 결단력이 약한 사람이라, 절필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선언’을 한 것도 아니지만, 설익은 생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그만두자 결심하고 2005년 가을부터 좀 조용히 지냈습니다. <한겨레>에 마지막으로 적었던 네 편의 글, '생이별, 행방불명, 그리고 월북' '29%를 잊지 마세요' '여성의원 50%의 꿈' '‘그들’ 출신 대통령은 영영'으로 제가 할 이야기는 웬만큼 했다고 판단했고요. '거절할 수 없는 부탁' 때문에 <거짓말> 책 출판에 참여하고, 저의 첫번째 책의 개정판인 <평화의 얼굴>을 낸 걸 제외하고는, 혼자 조용히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장벽들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편집부 : <헌법의 풍경>은 정의감을 상실한 채 현실에 매달리기 급급한 법조계를 비판해 법조인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녹음기를 들고 그 법조계 내부까지 깊숙이 들어가셨는데요. 무엇보다 선생님 역시 한사람의 법조인으로서 이처럼 용기있게 내부자들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마음의 갈등을 이겨내면서 작업을 이어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두식 : <불멸의 신성가족>을 작업하면서 방향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저도 역시 가장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법조인이거든요. 함께 하숙하고, 공부하고, 매일 같이 식사하면서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입니다. 저한테 거짓말할 친구들이 아니라서 저도 그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는데, 얘네들이 모두 “10년 전에 비해 법조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옛날 생각하고 글 썼다가는 큰일 난다”는 우정 어린 권고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막상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를 않더라고요. 판검사들이 돈을 받고 부정한 재판을 한다는 의심,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그 괴리를 메우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법원.검찰을 비판하는 게 두렵지는 않았지만, 사실과 다른 잘못된 비판을 할까봐 두렵기는 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정리하고 기본 틀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고요.

그런데 제 걱정을 많이 해주던 판사 친구가 지난달에 초고를 읽고 이런 메일을 보냈습니다. “왜 이런 책이 우리가 ‘사법’이 되었을 때는 없었을까. 진작에 있었다면, ‘사법’이 아니라 진짜 법조인이 되기 위해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장벽들이 사실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더 쉽게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서 제 주장과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법원.검찰의 누구도 제 책이 허위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여주더군요. 그 친구의 메일을 읽고 제가 잡은 방향에 대해서 안심을 했습니다.

편집부 : 인터뷰를 하시면서 어려운 일도 많으셨겠지만 즐겁고 인상깊은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런 에피소드도 몇가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두식 :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이 정직한 분들이라서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 강예리(이하 인터뷰 대상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씨는 거침없는 태도로 자신의 10년 경험을 나눠주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가 여러 번 쓰러질 뻔 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여상 졸업 후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 머리도 좋고 굉장히 재능이 많은 친구였지요. 뛰어난 관찰력으로 변호사 사무실의 일상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서 그 예리함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습니다. 김승헌 부장판사의 경우 어느모로 보나 법원의 대표선수라 할 만한 분이었는데 겸손하고 논리적인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김 부장판사의 녹취록만 거의 원고지 600장 분량이 되어서 그대로 책을 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브로커 업무를 하는 한동근 실장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강예리 씨나 김승헌 판사 이야기를 듣다보니 톱니바퀴가 맞춰지듯이 모든 이야기가 딱딱 맞아떨어지더군요. 인터뷰 중에 “너무 깊이 들어왔다”며 계속 불안해하던 한동근 실장은 브로커 일을 하다가 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철학자인 변상환 교수님은 탁월한 시각으로 우리 사법현실을 분석해주셨습니다. 개인사에 대해서 재미있는 말씀도 많이 들려주셨는데 그걸 그대로 따라가다가는 제 책이 아니라 변 교수님 책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모두를 인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책을 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체 스토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중복되는 이야기를 피하다보니 다른 등장인물 중에도 인터뷰 내용 중 아주 일부만 인용된 분들이 계십니다. 인터뷰한다고 고생 많이 하셨는데, 죄송할 뿐이지요.

직접 인터뷰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희망제작소에 머물며 인터뷰와 집필을 하는 동안, 희망제작소의 젊은 연구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몸살림이라고 일주일에 한번 운동도 같이 하고, 연구원들이 싸온 도시락도 얻어먹고, 북촌 일대를 함께 산책하기도 하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박원순이라는 탁월한 시민운동가를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는데, 세상에 그런 일벌레가 없더군요. 연구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박 변호사님은 거의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분 같습니다. 외계에서 날아온 일중독자라고나 할까요. 희망제작소의 지구인들이 그 외계인 밑에서 고생 많이 하고 있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사법계, 결국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

편집부 :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불멸의 신성가족>이 워낙 고발성이 짙은 책이다보니, 선생님께서 우리 사법계를 보며 느끼는 긍정적인 측면은 많이 담길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책의 공동연구자로 참여하신 김종철 변호사님만 해도 난민 구호활동 같은 참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잖아요? 혹시 우리 사법계에서 선생님께서 진짜 ‘법조인’이라고 생각하시는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있으신가요?

김두식 : 김종철 변호사는 처음부터 돈 많이 버는 걸 포기하고 난민을 비롯한 소수자를 돕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 아내도 김 변호사처럼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그런지, 그렇게 살면서도 그 부부는 자기들이 뭘 손해보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고요. 그런 훌륭한 사람들이 법조계에 물론 많이 있습니다. 이 책이 법조계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담지는 못했는데, 미래를 향한 밑거름을 만든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 주변의 판검사들 대부분은 굉장히 조심스런 삶을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입니다. 거의 수도사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판사들도 많고, 검사들도 권위적인 모습을 탈피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책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좋은 판검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합니다. 사람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차근차근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업무량이 이미 인간이 감당할 수준을 오래전에 넘어섰기 때문에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현실이지요.

제 책이 법조계를 심하게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신 분이라면 제가 가진 신뢰와 애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좋은 품성을 가진 사람조차 판검사의 자리에서 늘 뭔가를 경계하고 의심하고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문제인데요, 자기 사건을 숙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신감을 회복하여 좀더 따뜻한 법원, 검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판검사의 대폭 증원을 주장한 건데, 예산문제 때문에 단기간 내에 개선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뜻을 품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는 변호사가 되려고 해도 지금처럼 사무실 운영비용이 많이 들고, 브로커 없이는 아예 사건이 안 오는 현실에서는 처음의 뜻을 유지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쉬쉬했던 게 상황을 더 악화시켰는데, 제 책이 그런 논의를 시작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부 : 선생님께서도 보도를 통해 알고 계시겠지만, 정권이 바뀌고 나서 우리 사법계의 보수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시위 관련 이메일 사건, 용산사건, 장자연사건 등이 그 단적인 예가 되겠는데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최근 우리 법조계에서 내려진 판결 중에서 참 잘됐다, 혹은 참 아니다 하는 사례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두식 : 대부분 아직 진행중인 사건들이라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법원이 최근 들어 보수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법원.검찰은 보수적인 곳입니다. 그건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이고요. 저는 오히려 법원에서 진행중인 각종 논란들이 좋은 변화의 조짐이라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던 것들이 지금 공개적으로 이야기되고 있고, 판사들의 의견개진도 활발한 편입니다. 미네르바 무죄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법원에서 그런 상식적인 판결이 많이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정부 초기에 검찰이 밀어붙인 사건들 중 상당수는 아마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게 될 거고, 이를 통해 시민들도 이 정부의 실체랄까 그런 걸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저의 희망 섞인 관측이기는 합니다만……

편집부 : 이런저런 질문을 드리리다보니 마치 저희가 무릎팍도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다보면 선생님 검사 시절 이야기가 간간히 나오는데요. 특히 사법계 술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기억도 함께 말씀해주셨는데, 검사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선생님은 어떤 법조인이셨나요?

김두식 : 짧은 검사 생활이었지만 그게 워낙 문화적 쇼크여서 가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멋진 검사들도 많이 보았고, 제가 검찰 비판을 그렇게 많이 하고 다녀도 그분들과는 여전히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검찰을 보는 시각은 달라도 피차 인간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연수원 마치고 검찰에 갈까 말까 고민할 때 어느 선배로부터 “이제는 검찰도 많이 변해서 너 같은 스타일도 충분히 좋은 검사가 될 수 있다. 검찰은 늘 여러 종류의 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외로 네가 남들보다 더 좋은 검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검찰에 갔던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칼’ ‘나쁜 칼’을 떠나서 저는 아예 ‘칼’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떠난 아내 덕분에 빨리 검사 생활을 접을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예 칼이 아닌 사람이 칼부림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 고단하게 했을 테니까요.

우리 드라마나 영화 속의 검사들은 그저 ‘젊은 권력’을 상징할 뿐

편집부 : 유독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법정을 소재로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물론 범죄수사물의 성격도 강하지만요. 예를 들어서 「C.S.I.」나 「Law&Order」「에린 브론코비치」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데요. 약자의 편에선 정의롭고 지혜로운 판결이 이뤄지는 걸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법정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현실의 한국 사법계와 비교해서 말씀해주신다면? 혹은 가장 재밌게 본 법정 관련 영화가 있으시다면?

김두식 : 저는 원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와 법률을 배워온 사람입니다. 그만큼 영화, 드라마를 사랑하고요. 법정 영화를 보면 그와 관련된 법률 이론을 찾아 공부하고,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 그 시대를 소재로 한 역사책들을 끌어 모아 읽는 식으로 지식을 확장해왔습니다. 과장과 왜곡이 있기는 하지만, 「웨스트 윙」을 보면 미국 상하원과 백악관이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고, 「보스턴 리갈」을 보면 미국 로펌들의 생리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지요.

법정 영화로는 흑백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배심재판이 무엇인지 10시간 설명하는 것보다 2시간짜리 이 영화 한편이 더 효과적이거든요. 형사소송법이나 형사정책을 가르칠 때는 정규수업과 별도로 저녁 시간에 이런 영화를 함께 보면서 학생들과 토론을 하곤 했는데, 수업 효과도 아주 좋았습니다. 로스쿨로 바뀐 다음에는 학생들이 진로와 성적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아, 과연 이런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정영화다운 법정영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 가장 자주 나오는 직업이 검사인데, 그 검사들은 사건 처리는 안하고 매일 연애만 합니다. 기껏 강도를 제 손으로 잡거나 권총을 쏘는 황당한 검사의 모습이 잠깐씩 스쳐 지나갈 뿐이지요. 검사는 권총 쏠 일이 전혀 없고, 쏘는 법을 배우지도 않습니다. 격투기를 할 일도 전혀 없습니다. 우리 드라마나 영화 속의 검사들은 그저 ‘젊은 권력’을 상징할 뿐입니다. 예쁜 여배우와 연애를 하려면 젊은 사람이어야 하고, 가난을 딛고 일어난 극적인 전력이 있어야 하며, 지금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직업이 검사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이 도령이 암행어사가 되는 것과 똑같은 구조라 할 수 있지요. 가끔 형사 사건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나와도 철저하게 검사나 형사의 시각입니다. 범죄자를 두드려 패서라도 자백을 받는 터프한 모습이 각광을 받지요. 서글픈 현실입니다.

편집부 : 우리나라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 조직문화를 풍자하는 데도 많이 쓰이는 말이기도 한데요. 책을 읽다보면 선생님께서는 진정한 ‘모난 돌’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안전하고 평탄한 길을 걷기를 포기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서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그러한데요. 어떠신가요, 이런 선택에서 느끼는 갈등이나 불편함 같은 게 있으신지요?

김두식 : 제가 이 책에서 원만함 이데올로기를 법원과 검찰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지만, 저야말로 전형적으로 원만한 사람입니다. 직장에서 누구하고도 다퉈본 기억이 없고, 집에서도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 ‘모난 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요. 안전하고 평탄한 길을 포기한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오히려 안전하고 평탄한 길만 택해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법시험을, 제 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일상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순전히 운으로 합격했기 때문에, 법조계를 떠날 때도 별 미련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깊이 해서 특정한 법률 분야에 최고 전문가가 된 것도 아니고, 검사 생활을 오래 해서 실무를 완벽하게 지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변호사로 실력을 쌓아 학생들에게 생존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늘 학생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매번 열심히 책을 읽고 참고자료를 찾아 수업준비를 하기는 하지만, 내가 과연 월급에 맞는 가치를 다하고 있나 고민이 많고요. 내년에 귀국해서 우리 학교의 똑똑한 로스쿨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을 하면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저의 갈등과 불편함은 이런 실력 없음에 대한 뼈아픈 자각에서 오는 것이지, 모난 돌로 법조계를 떠났다고 해서 생긴 것은 아닙니다.

“애 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지요.”

편집부 : 선생님께서는 공부하시는 아내를 뒷바라지하겠다고 검사직을 그만두고 2년간 육아 및 가사에 전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남성이 있다니,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남다른 소신이 있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거라고 짐작하는데, 평소 가정이나 가족을 생각하는 선생님의 철학을 이 기회에 좀 소개해주시죠.

김두식 : 제가 검사를 그만두던 10여년 전에는 그나마 화제가 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그런 남성들이 하도 많아서 이야깃거리도 못될 것 같습니다. 제 처가 저보다 더 똑똑하고 가능성 있고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품은 사람인 것은 하늘, 땅,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혼 전부터 그런 아내를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2년 동안 미국에서 애 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시장 보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저는 아저씨들하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아줌마들하고 노는 게 훨씬 즐겁습니다. 아저씨들은 자꾸 정치 이야기하고 재미없는 거대담론으로 방향을 몰아가잖아요. 반면에 아줌마들하고는 물론 정치 이야기도 하지만, 애들 키우는 이야기하고, 드라마 이야기하며, 한단계 더 깊은 내면을 나눌 수가 있거든요. 제가 책머리에서 희망제작소의 유시주, 이희영, 강현선 선생님을 ‘언니들’로 표현했는데, 그분들하고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친구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거꾸로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저자이기도 한 유시주 선생님(희망제작소 부소장)은 진짜로 언니 같아서 제가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해도 그냥 잘 들어주시거든요. 남자들하고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성을 특별히 잘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 가끔 남성 작가들이 여성의 시각으로 썼다는 소설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많아요. 제가 그 정도이니 진짜 여성들 입장에서는 어떻겠어요. 남성인 제가 여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일종의 미스테리죠. 남성으로서 여성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요 뭐 그런 겁니다.

편집부 : 얼마 전 김연아 선수가 모 예능프로에 출연하여 “내게 아이가 있다면 내 아이에게는 피겨스케이팅을 시키지 않고 싶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마찬가지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는 자녀분이 판검사, 변호사가 되겠다고 한다면(물론 자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찬성하고 싶으신지, 말리고 싶으신지요? 이유도 간단히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김두식 : 미국에서 와서 뒤늦게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보았습니다. 완전히 ‘감동 물결’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부모란 자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냥 묵묵히 지원하며 사랑하는 존재이지 뭘 기대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드라마 내용과 직접 상관없는 엉뚱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거나 학원을 억지로 보내거나 한 적은 없지만, 안 그런 척하면서도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얘가 공부를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더라고요. 드라마를 보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딸에게 그 드라마 DVD를 선물하면서 “좀더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했더니, 딸아이가 “드라마 제목 보고 아빠의 그런 뜻을 이미 다 알았어”라고 하더군요. ‘우리 애가 공부를 잘해줬으면’ 하는 기대만 버려도 가정에서 생기는 문제의 절반 이상은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은 벌써 오래전에 자기 인생을 시작한 아이라서 제가 진로 관련해서 해줄 이야기도 없고, 그냥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로서 저는 자꾸 ‘애가 험한 일은 겪지 않으면서도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 같아요. 험한 일 없이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건데도 말이지요. 그래서 자꾸 애한테 험한 길을 피하라고 조언하게 되는데요. 「네 멋대로 해라」를 선물하면서 그런 조언도 그만 하기로 했습니다. 험한 길을 선택하면 그만큼 이웃을 이해하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고, 편한 길은 편한 길대로의 행복이 있는 법이기 때문에, 딱히 어느 쪽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만, 사실은 딸도 여자라서 그런지 제게는 역시 미스테리입니다. 아내사랑이 되면 자식 사랑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는데 사춘기 딸을 키우다보니 좋은 아빠 되는 게 좋은 남편 되는 것보다 더 어려워서 매일 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중이랍니다.

로스쿨 제도의 승패는 지금 학생들의 개척에 달려 있다

편집부 : 선생님께서 대학시절 전공과 무관한 인문사회서를 탐독하셨다고 쓰셨는데요. ‘신성가족’에 편입되어 안락한 삶을 즐길 수 있음에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하는 용기도 어쩌면 그런 책의 힘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선생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책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두식 : 이런 때 <성경>이라고 이야기해서 분위기를 썰렁하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저는 성경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제 삶을 이끄는 모든 원동력을 얻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 이야기를 읽다보면 커다란 예배당의 고상한 목사님 설교에 나오는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어떤 분을 만날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성경의 예수님은 늘 돈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데 반해서, 요즘 교회들은 섹스의 위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식이지요. 진짜 예수를 만나고 나면 새로운 인생이 열립니다.

예수를 이해하는 데 안병무, 서남동 선생님이나 구티에레즈 같은 해방신학자들의 영향도 받았지만, 독자들에게는 로버트 M. 브라운이 쓴 <뜻밖의 소식>이나 헨리 나우엔이 쓴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같은 소책자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읽는 데 한시간도 안 걸릴 짧은 책들이니까 꼭 사보셨으면 좋겠네요. 소년시절에 읽은 <천국의 열쇠>, <톨스토이 민화집>도 그 예수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끼쳤고요. 미국 신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Resident Aliens나 존 하워드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 같은 책도 제 생각의 기초를 잡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책에서 모방욕망이나 희생양 같은 재미있는 관점을 배운 것도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신학과 인문학 지식들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게 없다고 해서 성경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복음서를 읽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으니까요.

젊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같은 책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전도할 때 써먹는 거의 모든 논증의 허점을 멋지게 드러낸 책들인데요.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자기 신앙을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그냥 맹목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방에 신앙을 잃게 될 수 있거든요. 김준우 박사라는 탁월한 번역자가 번역해 내고 있는 월터 윙크, 마커스 보그, 존 쉘비 스퐁, 리차드 호슬리, 존 도미닉 크로산 같은 논쟁적인 신학자들의 책도 좋습니다. 그런 책들의 내용에 동의할 필요는 없어도, 한번쯤은 고민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편집부 : 이 책을 읽다보면 사법비리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사법권력에 억눌려온 시민들 입장에서는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그러겠지만, 이제 막 법을 공부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기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도 현직 로스쿨 교수로서,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해주실 말씀 혹시 없을까요?

김두식 : 로스쿨 첫해에 학교를 떠나 장기해외출장을 나온 것 때문에 ‘간 큰 교수’라는 놀림을 많이 받았는데요. 동료 교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가 엄청나게 똑똑하고 열정이 있는 학생들로 넘쳐난다고 하더군요. 로스쿨 제도의 승패는 바로 이 학생들이 어떤 미래를 개척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법조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잘못된 관행들을 바꿀 수 있는 중심세력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기존 질서에 끼어들어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의 로스쿨 학생들이 연대해서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편집부 : 이 책의 결론에서 선생님께서는 무엇보다 판검사, 변호사와 시민 사이의 의사소통을 강조하셨습니다. 저희에게 흥미로운 것은, 판검사 변호사와의 ‘직접 대화’가 청탁이나 뇌물보다 훨씬 소송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었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 우리 시민들이 소송에서 참고할 만한 힌트랄까, 직접 대화의 좀더 구체적인 전략 같은 것 한두가지만 더 소개해주시면 어떨까요?

김두식 : 제가 책에 적은 것처럼 판검사들에게 진심을 담은 탄원서나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의사소통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변호사, 법무사 등이 천편일률적으로 적어놓은 내용보다 오히려 판검사들에게 감동을 줄 수가 있지요.

대부분의 판검사들은 뇌물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어느 한쪽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기 때문에 그쪽 이야기를 중심으로 틀을 짜게 되기가 쉽고, 과도한 업무 때문에 늘 시간에 쫓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당사자들이 그런 판검사의 입장에 서서 자기 사건을 객관적으로 한번 생각해보고, 간결하고 정직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편집부 : 지금까지 선생님의 답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도 좀 듣고 싶습니다. 현재 안식년으로 미국에 체류하시면서 연구와 집필에 여념이 없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멸의 신성가족>을 계기로 이제 좀더 자주 선생님을 뵐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지금 쓰시는 책이나 기타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좀 들려주세요.

김두식 : 지금은 영화와 인권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즐거운 작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뭐든지 일이 되면 즐거움보다는 부담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오래 미뤄두었던 국가와 교회에 관한 책을 손보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두 권을 다 끝내야 할 텐데 큰일은 큰일이네요. 미국 와서 연구실, 도서관, 체육관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생각보다 진도가 느려서 걱정입니다. <불멸의 신성가족>이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어요.

편집부 : 그만큼 <불멸의 신성가족>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셨죠. 이번 책이 선생님 개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매우 의미있는 저작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올해 쓰게 되실 두 책도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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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군법무관과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를 지냈다. 미국 Cornell Law School을 졸업하고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9년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평화의 얼굴>, <헌법의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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